올해 크리스마스는 특별하다.
나의 천사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홍콩은 눈도 안 오고 그닥 춥지도 않아서
딱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지만
그래도 올해 우리 딸과 함께 즐겼다는 것에
마음이 따뜻한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홍콩 센트럴에서 하는 북극곰 공연을 봤는데
별건 없고 북극곰 분장을 한 여러 북극곰들이
같이 춤을 추는 것이었는데 아이들이 많이
보러 왔다.
체력이 안 좋은 우리 신랑은
오분인가 아기를 목마를 태우고
공연을 같이 보더니 이내 땀을 흘려
내가 아기 목마를 태우고 공연을 보았다.
(신랑보다는 내가 체력이 좋다)
아기가 벌써 10키로니
목마를 하고 공연을 보는데
꽤나 나도 땀이 나더라.
그래도 북극곰이 춤 출때
나도 목마를 한 아기를 목에
꽉 잡고 나도 흔들흔들 리듬을 탔는데
꽤나 흥겹더라.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오늘도 홍콩은 성탄절 연휴였는데
침사츄이 스타의 거리에서 하는
3D 라이트 쇼를 봤는데
역시나 별건 없고 큰 화면에 산타복을 입은
캐릭터가 나오고 음악과 함께
레이져를 쏘는 것이었다.
불빛이 엄청 강렬하더라.
아기 눈에 안 좋겠다며
다음에는 오면 안 되겠다고
신랑은 옆에서 투덜투덜.
체력이 안 좋은 신랑을 대신해
내가 목마를 태우고 아기와 쇼를 봤는데
역시나 별건 없었지만
나름 흥겨운 기분에 취했다.
셀프봉으로 시부모님과 아기와
온가족이 바닷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뭐 생각해보면 이틀 내내
딱히 별거 없는걸 했는데 기분은 나름 흥겨움.
왜인지 생각해보니
크리스마스란 분위기 자체가
나를 흥겹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었지만
아마도 아기를 목마를 태우고
아기를 계속 안고 다니고
아기의 웃음을 보고
가족의 웃음을 보고
사람들의 웃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0키로인 아기를 목마를 태울 때
왜 나는 행복했을까.
왜냐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땀이
헛된 것이 아니고
나의 땀으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찬란한 웃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두 가지를 강력하게 원하는 것 같다.
한 가지는
행복.
또 한 가지는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우리는 언뜻 생각하면
고생하길 싫어하고
편한 길만 찾아 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 하는 것은
고생이 아니라
쓸모없는 고생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고생이라면,
특히 그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그 고생은
오히려 우리에게
깊은 만족을 가져다 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는 것.
그리고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행복은 배가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떠한 두려움도
직면할 용기가 생기며
우리의 힘은 더더욱 커진다.
두렵지만
두려워할 것이 없게 된다.
김형석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 라는 책에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네'
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더더욱 행복해지려면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만 우리는
더 많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바칠 수 있을테니까.
상대방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내 자신을 위해서이다.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의 열쇠는
아마도,
이해일 것이다.
행복의 열쇠는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 속으로는
깊은 연결을 원한다.
마음이 이토록
공허한 것은
내가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고 싶다면,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둘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