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혹은 우울,
또는 침체 또는 무기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던 과거의 내가 왜 바뀌었을까.
우선 첫번째는, 상황이 바뀌었다.
마음만 바꾸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참 잔인하다.
마음이라도 바꾸어야 그나마 행복해진다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어느 정도, 아니 우리가 원하는 그 곳, 아니 그 비슷하게라도 도달해야 비로소 불행의 마음에서 벗어나 행복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황을 바꾸는 데에는 개인의 노력도 있을 것이나 운도 많이 작용할 것이고, 운은 타고난 건지는 알 수 없겠으나 그것 또한 어느 정도는 운도 불러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언제나 울상인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이 사람을 끌어들인다. 떡 하나라도 더 주고 싶다.
그러니 보기만 해도 기운 빠지는 표정을 하고 다니는 사람보다는 마음이야 둘째치고 얼굴의 근육을 자유자재로 입꼬리를 올리고 다니는 사람이 운도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억지로라도 웃고 다녀서 그런건지, 아니면 운이 좋은건지 혹은 내가 불행했던 과거에 비해 현재에 늘 만족하는지라 내 인생에 대한 기대가 낮아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상황이 좋아졌기에 인생에 대한 만족도, 즉, 행복감이 높아졌다.
행복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만족하여 흐뭇한 상태’ 라고 나오는데 나의 지금 상태가 그렇다.
‘만족하여 흐뭇한 상태’
두번째로 내가 행복해진(과거에 비해 행복을 자주 느끼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행복에 대한 환상을 ‘포기’ 했기 때문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확실히 정의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가 보통 말하는(원하는) 행복은 일종의 하나의 감정이다.
기분 좋은 상태(감정) 또는 만족하여 흐뭇한 상태(감정)가 우리가 보통 원하는 행복이다.
행복이란 것을 어릴 적에는 아마도 고통에서 잠시 벗어난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내 긴장했던 시험이 끝났을 때의 그 잠시동안의 후련함과 여유, 그리고 항상 불안했던 집에서 탈출해 모녀끼리 즐겼던 목욕탕 같은 것들. 고통에서 벗어난 잠시의 안도감, 해방감 같은 감정을 행복이라 여겼다.
머리가 좀 더 크고 방황의 시간을 좀 더 많이 보낸 후에는 행복이 그저 이런 잠시의 안도감은 아니라고(아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행복이란 무엇일까 좀 더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슬퍼졌다.
나의 몇십 년의 인생 경험으로 통틀어볼 때, 여러 심리 또는 철학 책들을 뒤적거린 결과, 나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미 행복수준이 낮게 정해져버린 사람인 것이다.
어릴 적에 유전적 혹은 환경적 요인으로 우리 개개인은 행복의 수준(행복을 느끼는 일정한 수준)이 정해졌는데 그 행복수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불행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크게 행복한 일이 생겨도 행복수준이 그다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그러한 나의 불행한 감정에서(상황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꾸 과거의 감정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한마디로 ‘절망’의 감정을 느꼈다.
나는 행복해질 수 없을거라는 느낌.. 정확히 말하면, 상황이 모두 좋아져도 나는 행복을 그다지 느낄 수 없을거라는 그 느낌.. 그것은 나에게 절망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절망으로, 나중에는 절망이 체념으로 되었고, 체념은 수용으로, 수용은 어느새 평온한 마음이 되었다..
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나란 사람은 언제나, 이러한 외로움과 약간의 슬픔을 늘 간직한 채 살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영원히 순수하게 행복을 누리지 못할 것임을.
나는, 나는 내가 가진 이 행복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나의 인생경험을 미루어보아 이제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절망이고 슬픔이었는데, 체념이 되고 체념이 수용으로 바뀌다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행복을 포기하니 행복이 찾아왔다..’ 라고 해야 할려나.
그냥, 예전엔 행복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행복해질거야’
‘이 목표에 도달하면 행복해지겠지’
‘이 사람하고 잘 지내면 난 행복해지겠지’
‘이렇게, 이렇게 되면 행복해지겠지...’ 라는 기대. 믿음. 희망.
그런데 어느 정도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많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아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그냥 어느 순간 내가 어떻게 되면 행복해질거라는 기대를 안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절대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행복을 포기했는데, 그러니까 마음에 평정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기대하지 않는 마음.
그저 ‘지금 이대로’ 를 바라보는 마음.
그것이 바로 평온한 마음을 가져다 주었던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많이 바뀌었다.
눈에 띄게 노력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운이 억세게 좋은 것도 아니지만, 남들이 보기에 행복할만한 조건을 다 갖춘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나는 어느새 행복해졌다.
왜일까.
나는 두번째 이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내가 행복을 포기했기에 도리어 행복이 나를 찾아왔다고.
너무 안달복달 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나 불안해하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지금 이대로, 여기’를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모습의 나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곳에, 행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