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쟁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제임스 하사다.
제임스는 폭발물 처리 전문가이자,'전쟁중독자'다.
마치 게임을 하듯 폭발물을 처리한다.
여느 중독자들이 그러하듯, 미션을 처리하면서 자신의 일에 엄청난 애책감이 생겨버린다.
제임스는 그동안 자신이 해체한 폭발물의 수량을 기억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중독되어 있다.
873..백단위가 넘어갈 때까지 정확하게 숫자를 기억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얼마나 자신의 일에 미쳐있어야 그게 가능할까?
제임스는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일까?
심지어 폭발물을 처리할 때, 미세한 움직임에 방해를 받는다며 방호복을 벗는 그의 모습은 이미 반쯤 미친 사람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는 죽음을 넘나드는 스릴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폭발물을 다룰때,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얼굴에는 생기까지 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마 처음부터 '미친 놈'은 아니었을 것이다.
영화 시작과 함께 나오는 문장이 있다.
"전쟁은 마약이다."
그렇다.
처음에 제임스는 그냥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군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일이은 전쟁지역에 가서 폭발물을 처리하는 일이다.
이런 군인이 자신의 일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전쟁이란 마약에 중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전쟁이 제임스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장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제임스이지만, 부대 안에서는 찌질하기 이를 데 없다.
내무반에서 제임스의 팀은 맨몸으로 서로의 몸에 폭력을 가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마치 WWE레슬링 흉내를 내는 것처럼 보인다.
샌본병장과 제임스는 군인다운 몸을 과시하면서 서로 원터치(??)하고 있지만, 전혀 강력한 군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찌질한 군인의 전형이었다.
이들은 부대 안에서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일 뿐이다.
참..신기한 일이다.
감독이 캐슬린 비글로우는 여자인데, 술과 포르노DVD에 의존하는 해외파견 미군의 불편한 진실을 너무 디테일하게 잘 그려냈다.
게다가 이들은 부대밖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기 힘들다.
왜냐하면 현지 주민들은 미군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군은 그저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정복자일 뿐이다.
그런 미군이 할 수 있는 것은 가는 곳마다 엄청난 무기로 협박하는 일밖에 없다.
또한 부대안에서 현지 어린아이들이 파는 포르노DVD를 구매해서 성욕을 달래거나, 독한 술에 의존하여 몸안에 축적된 폭력성을 서로에게 푸는 길밖에 없어보인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사람들은 착각하곤 한다.
마치 어벤져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영웅이 존재하면, 전쟁이 후딱(??) 끝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이렇게 지리멸렬하기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이런 피폐함이 일상이 되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으로 피폐함의 표면을 잠깐 색칠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색칠한 부분은 금방 벗겨져버린다.
문제는 전쟁의 피폐함조차 마약처럼 중독된다.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온 제임스는 영화 마지막 전쟁터로 다시 돌아가는 선택을 하고 만다.
전쟁터로 돌아온 그의 모습은 어느새 당당해져 있었다.
2.국가는 군인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나는 메이저리그와 NBA를 좋아한다.
사실 그냥 좋아하는 정도라고 보긴 힘들다.
한국에 NBA리그패스가 소개되기 전부터 NBA사이트를 통해 리그패스 결제해서 봤을 정도라면, 충분히 설명이 될 거라 생각한다.
아무튼 미국 프로스포츠를 보다보면,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WWE레슬링도 마찬가지인데, 각종 프로 스포츠에서 군인을 위한 행사를 잊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그것 또한 자본주의 마인드가 작용해서 유니폼을 팔아먹기 위한 수작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군인들 기를 살려주는 행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또한 미국은 군인을 멋진 사람으로 포장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해야 군대에 지원할테니까..
언론을 이용하여 애국심을 자극하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국가안보가 중요하다고 매번 주장하고 다니는 공화당의원들조차 군대는 구경
도 못해본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들의 가족을 군대에 보낼 생각따위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군대에 보내긴 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 까부는 나라를 혼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미국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현지에서 군인들이 이처럼 병들어 가는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아프다고 하면, 육체적인 마취제든 정신적인 마취제든 계속 투여하면 된다고 생각할 거다.
그러다가 군인들이 피폐해진다면?
훈장 하나 던져주면서, 다시 애국심이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언론을 이용하여 피폐해진 군인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면서 성대하게 추모행사 해주면 된다고 믿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속임수를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노출된 사람은 유색인종들과 경제적 하층민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현실에선 그런 거 없다.
3.살아남은 자의 슬픔-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전쟁의 상처를 가진 미군들이 PTSD에 시달린다.
아마 아군의 총에 다리를 맞은 알드리지 상병도 같은 아픔을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사실 알드리지 상병의 경우, 다리에 총을 맞은 일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왜냐하면 이미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알드리지 상병이 조금 더 전쟁터에 머물렀다면, 진짜로 미쳐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항상 자신을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던 군의관이 폭탄에 터져 죽는 모습을 본 알드리지는 이미 심리적으로 무너져가고 있었다.
물론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물리적인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쟁터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알드리지 상병에게 이로운 일이라 말할 수 있다.
PTSD가 얼마나 고약할까?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자.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 크리스카일은 울고 있는 자신의 아이를 먼저 돌봐주지 않는 간호사에게 갑자기 분노를 표출한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기본적인 분노조절 기능을 상실했다.
게다가 크리스카일은 전우라고 믿고 있었던 동료에게 죽임을 당한다.
카일을 죽인 범인도 전쟁PTSD환자였다.
PTSD는 군대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군인들이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자는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을까?
그건 '람보:퍼스트 블러드'라는 영화를 통해 확인해보자.
영화 마지막에 람보를 설득하러 들어간 트로트먼 대령에게 람보는 울부짓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전은 끝났지만, 나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싸우라고 명령한건 당신들(국가)이잖아!
나는 이기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지만, 누구도 이기지 못했어요.
미국으로 돌아오니, 미국을 위해 싸운 나는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나는 백만달러가 넘는 헬기와 탱크까지 조종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여기(미국)에서는 그 흔한 주차요원으로도 써주지 않았어요!
베트남에서 죽은 친구들이 아직도 꿈에 나타나 잠을 자지 못하겠어요.
7년째 매일 같은 꿈을 꿉니다.
나는 묻고 싶다.
미국은 정말 군인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 걸까?
'허트로커'에서 제임스는 이미 전쟁에 중독된 상태다.
그는 '인정'이라는 첫번째 단계도 통과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인정하는 단계가 필요한데, 그는 전쟁이라는 마약을 먹기위해 다시 '애국심'과 '전우애'를 꺼내들었고, 전쟁터로 돌아갔다.
결국 자신이 죽어야만 끝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보였다.
**minsky 블로그 영화리뷰
"[영화] '더 포스트'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의 프리퀄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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