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전도사 박원장입니다.
오늘은 조선시대의 바둑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바둑은 이미 많은사람들에게 보급이 되었고 자료또한 방대한양으로 잘 보존되어있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직업기사(현재의 프로기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프로기사는 당시에 '기객'이라고 불리웠으며 최고수들은 '국수' 혹은 '국기'로 불리웠답니다.
당시 기객중에서도 최고수인 국수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전라도에서 사는 정운찬이라는 사람은 굉장한 바둑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촌형에게 바둑을 배운 정운찬은 그 매력에 푹 빠져서 6년간 문밖에 나가지도 않으며 먹고 자는것조차도 잊은채 바둑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10년을 매진한 끝에 바둑에 이치를 터득했다고 판단한 정운찬은 바둑을 잘 두기로 소문난 사람을 찾아다니며 일명 도장깨기 비슷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계속 이겨 한양에 바둑스타로 거듭나게 됩니다.
정운찬은 이제 조선에 남은 최고의 고수인 국수 김종귀와의 대국을 위해 평양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김종귀는 당시에 평양감사였기 떄문에 대국은 평양에서 진행이 됩니다.
(감사면 오늘날 도지사정도의 벼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예 정운찬과의 국수 김종귀와의 대국이 진행되었고 신예 정운찬의 승리로 조선바둑계의 큰 획을 긋는 승부가 되었습니다.
대국에서 이긴 정운찬은 김종귀로부터 집한채가격인 거금 20냥을 받고 김종귀와 함께 평양에서 기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자주 바둑을 두었지만 센스있는 정운찬은 김종귀와 대국할떄는 가끔 져주기도 하면서 체면을세워주었다고 합니다 ^^
그 이외에도 이약사라는 바둑고수, 김옥균, 세조, 선조, 유성룡, 이순신, 정조등이 바둑을 즐겼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상류층이 즐기기에는 가장 무난한것중 하나가 바둑이였답니다.
이렇다보니 조선시대때부터는 직업으로 바둑을 두는 기객(프로기사)들이 생겨난 것 같네요^^
중국에서는 ‘기대조’라는 황제와 바둑을 두는 것이 일인 벼슬도 있었답니다.
(기대조라는 벼슬을 보니 군대에서 간부들한테 바둑두러 끌려다닌 일이 문득 생각나네요)
조선시대 바둑대중화의 폭은 상류계층에게만 유행을 했던 것 같네요 ^^;
또한 조선시대대에는 여성들도 바둑을 즐겼답니다. (주로 지식인층 혹은 지식인을 상대하는 기녀등)
물론 바둑에 중독성이 높았기 때문에 조선조 중기의
대 성리학자인 율곡 이이(李珥)는 제자들을 가르칠 때 사용한 교재인
격몽요결 [擊蒙要訣] 에서는 성리학자로써 멀리해야하는
나쁜습관8계가 있는데 그중 여섯 번째에서는 바둑두고 장기두는 것을 일삼는 것을 주의해야한다고 적혀있답니다. 그 이외에도 이덕무(李德懋) 혁기론(奕棋論), 다산 정약용 [茶山 丁若鏞] 등이 바둑을 비판하였습니다.
바둑의 순기능을 보지 못하고 바둑을 통한 인맥관리나, 지나친 바둑중독으로 인해 본인의 생활을 놓치는 것을 염려하지 않았나 싶네요 ^^
물론 이러한 염려는 그만큼 바둑이 대대적인 유행을 타는 반증의 의미도 되겠지요?
바둑이야기가 어느덧 삼국시대를 넘어 조선시대까지 왔군요. 근대사까지 한번 달려보겠습니다!
최근에 스팀하면서 여행스팀에 너무 자극을 받아 결혼하고 처음으로 와이프와 소소하게 부산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잘다녀와서 후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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