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전도사 박원장입니다.
시간제한에 대한 포스팅을 적면서 독과점 기업에 이야기를 아주 살짝 했는데요
초시계 하나가 10만 원씩 한다는 것에 경악하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업체의 폭리도 폭리지만
한국기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https://steemkr.com/kr/@mooyeobpark/2xtvqd - 한국기원을 아시나요?
이전 포스팅이 한국기원에 대한 소개였다면 오늘은 한국기원에 불편함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물론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이런 거 적는다고 잡혀가진 않겠지요?)
한국기원에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몇 개 있었답니다.
유명한 사건중 첫 번째는 조상연 프로의 영구제명 사건입니다.
조상연 프로는 1986년 한국기원 측에서 영구제명당했습니다.
사유는
“한국기원의 수입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자 하는 행위를 하였고 이를 묵과할 수 없어
만장일치로 제명한다 “
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바로 바둑 세계라는 잡지를 발행했기 때문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월간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죠?
한국기원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하는데 조상연 프로가 경쟁 잡지를 발행하니 더 이상 잡지를
발행하지 못하게 프로기사 제명을 한 것이지요.
도대체 조상연은 누구일까요? 그는 조치훈의 친형입니다.
조치훈은 한국바둑에 조훈현과 함께 첫 번째 황금기를 가져다준 위대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조치훈은 나중에 포스팅으로 다룰예정이지만 한국바둑에 위상을 세우고 세계적으로 알린 사람이지만 경쟁 잡지를 발행하여 한국기원에 수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협감에 그를 제명시켜버린 것이지요.
또한 그의 동생 조치훈은 일본에서 한국바둑의 위상을 떨치는데 형이라는 사람은 그 후광을 이용해서 잡지를 만들고 일본과 한국을 왕래하면서 국제상인같은 행동으로 장사를하며 돈을 번다는 누명까지 씌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상연 프로는 24년 후에 70세가 다되어가서 한국기원에 복직을 신청합니다.
한국에서 바둑 보급하면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에서였지요
2010년 5월 19일 한국기원 대회장에서 154명에 프로기사들이 투표를 하였지만
찬성이 전체 투표자수의 2/3를 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명당했습니다.
본인들의 수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한국바둑에 번영을 이루었던 주요 멤버도 쳐내는 잔인함이 엿보입니다.
여기서 이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 중 하나는 CJ 회사에서 한국기원이 바둑 TV를 인수할 때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과 김효정 한국기원 홍보이사가 팔 걷고 노력하여 인수를 해냅니다.
그런데 돌연 바둑 TV 경쟁사인 K바둑으로 이직을 하게 되지요.
한국기원에서는 이전 조상연 씨처럼 프로 영구제명이나 사업운영에 대한 권한을 제거했을까요?
양재호 K바둑 대표는 여전히 대회에 잘 나오고 김효정 씨는 한국 여자바둑리그에 감독입니다.
(오잉?)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1974년 한국 바둑계에서 유명한 '기계 파동’이라는 사태가 발생됩니다.
한국기원이 프로기사들에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자 일부 기사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기원과 충돌하고 이 과정에서 한국기원은 우리의 한국바둑 아버지 조남철 선생님부터 윤기현, 김수영, 홍종현, 노영하 등 5명을 주동자로 몰아 제명시키며 배짱을 부립니다.
당시 조훈현, 서봉수를 포함하여 프로기사 중 2/3이 넘는 46명이 한국기원을 탈퇴하여
‘대한 기원’을 창립 한국기원과 대립하게 됩니다.
프로 없는 한국기원이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결국 1976년 다시 한국기원으로 재통합하게 되고 이로써 프로기사들이 권위가 향상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때 한국기원이 아닌 아예 새로운 단체로 발돋움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 아닐까요?
이후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이세돌 등의 큰 활약으로 한국에 바둑은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큰 문제없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모든 연맹이 그렇듯이 한국기원도 내부적으로 점점 썩어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는 많은 몇몇 일들이 있지만 비공개된 내용이 많아서 함부로 떠들 수가 없군요
중간에 자잘한 부분은 건너띠고
대부분 국민들이 아는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이세돌 휴직 사건’이지요
한국기원에게 항상 날카롭게 대하는 이세돌이 선배들에게 싹수없게 대하는 행동으로 인해
강제 휴직에 처해지다가 처음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원론적으로 파헤쳐보면 예전 조남철 시절부터 다음 1인자인 김인 국수까지 바둑대회에서 우승하면 당시 바둑을 직업으로 생계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녔기에 술 한잔 사주거나 약간의 금전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조훈현 국수는 다른 기사들에게 딱히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낙수효과가 조훈현 시절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우승상금에서 일정 %를 떼어서 한국기원이 가져가고 추가로 일정%를 떼어서 ‘기사회’에서 가져가게 됩니다.
기사회는 기사들의 복지 모임인데 이미 늙고 새로운 바둑을 익히지 못한 노기사들이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성적 내는 기사들에게 돈을 착취하여 자기들끼리 술사 먹고 밥사먹는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이 기사회는 한국기원에 중요 자리에 있거나 발언권이 강해서 프로기사들도 함부로 건들 수가 없다 보니, 조훈현 때부터 이창호까지 계속 그러려니.. 하고 내려옵니다.
또한 기사회에서는 프로기사들이 둔 대국 기보에 대한 저작권료 또한 자기들이 맘대로 가져갑니다.
비교하자면 GD가 앨범을 냈는데 한국음악협회에서 음원저작수입을 다 가져가는꼴입니다.
결국 이러한 악행에 뿔난 이세돌이 한국기원에 정식 항의를 시작합니다.
이미 기계 파동 이후에 보수적인 바둑인들 사이에서 이세돌에 행동은 파격그자체였지요
이사태를 계기로 이세돌은 2009년 한국바둑리그에 불참하게 됩니다.
한국바둑리그는 다른 리그와 다르게 한국 상위 랭커들이 희생하여 전체를 유지하는 독특한 방식에 또 다른 착취였던 것이지요
이세돌은 기보저작권에 대한 항의, 시상식 불참, 중국리그에서 받은 우승상금에 일부%를 기사회에 납부하지 않은 것 등을 한국바둑리그 불참을 이용해 표출하게 됩니다.
이일로 결국 이세돌은 휴직을 선언하게 되고 세계 1위에 프로기사를 바둑도장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변신시키게 됩니다.
그 이후 한국의 바둑은 제도화가 잘되어있고 대국하기 좋은 환경인 중국에게 추월을 당하게 되지요.
이세돌은 이후 설득을 통해 복직하게 되지만 2016년 최고의 인기로 대중에게 알려질때 프로기사회를 탈퇴하게 됩니다. 이 내용은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한국기원의 폐단은 워낙 많지만 내부적으로 알고 있는걸 막 적었다가는
소송을 당할까 두려워서... 허헛..
한국기원은 본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프로기사를 강경하게 내치는 행동을 참 잘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한국기원에 본심은 ‘대한바둑협회’의 창설로 인해 숨겨두었던 본심이 뻗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2부로 끝내려고 하였는데 글이 조금 길어졌지요?
다음 시간에는 한국기원 vs 대한바둑협회로 3부까지 적어봐야 하겠네요 ^^;
https://steemkr.com/kr/@mooyeobpark/7n6ht7-2> 일본의바둑역사2
이전에 소개시켜드렸던 일본의바둑역사편에서 일본바둑에 몰락이 형태가 왜 우리나라 현재 모습과 비슷하게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헛..
전쟁은 노인들이 결정하고 청년들이 죽는다.
우리 한국기원에 실태를 보여주는 문장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본 내용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적어서 사실적 내용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한주의 시작이네요 본의아니게 부정적인 글을 적게 되었지만 한주의 시작은 부디 상쾌하게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