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가 지나온 10대의 서글픈 자화상
- 줄거리 -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지만 대회만 나갔다 하면 4등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영 선수 '준호' . 하지만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의 닦달에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를 만난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회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 가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광수는 ‘엄마’에게 연습 기간 동안 수영장 출입금지 명령까지 내린다.
대회를 코앞에 두고도 연습은 커녕 항상 PC방 마우스나 소주잔을 손에 쥔 못 미더운 모습의 광수. 이래봬도 16년 전 아시아 신기록까지 달성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의심 반, 기대 반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수영 대회에 출전한 ‘준호’의 기록은 '거의' 1등! 1등과 0.02초 차이로 생에 첫 은메달을 목에 건다.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준호’네 집. 그런데 그때, 신이 난 동생 ‘기호’가 해맑게 질문을 던지는데...!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 했던 거야, 형?”
동생의 말에 시퍼렇게 질린 얼굴처럼 멍투성이인 열두 살 ‘준호’의 몸.
‘준호’는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영화 '4등' 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팽배한 1등에 대한 욕망을 읽었다.
- 김광수 코치의 과거 자신이 했던 실수를 준호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호를 체벌하는 모습.
- 준호 엄마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준호의 1등을 위해서는 "사소한" 체벌정도는 눈감는 모습.
- 준호 아빠의 자기 자식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모습.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누구 하나 준호의 성공을 바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준호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김광수 코치의 방식처럼 성공을 위해 채찍질하는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중반부에서는 아무리 성공을 위한다고해도 폭력은 안된다고 생각했고, 후반부에서는 마냥 혼란스러웠다.
누구의 방식을 응원하고 따라야 준호가 1등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준호가 결국 1등 한번 못해보고 '만년 4등'에 그치는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
결국 나도 똑같았다.
준호의 4등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1등을 해야한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A 라는 output 을 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B 라는 input 을 넣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있다. '1등' 이라는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사소한 '희생' 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희생이 폭력으로 인한 상처든, 부모자식간의 멀어짐이든, 지나친 수면부족으로 인한 건강악화든, 무언가는 희생해야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1등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1등' 을 도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교육에 몰빵해서 만든 헬리콥터맘형 학생이 명문대에 간 성공사례만 보고, 그 방법만 우르르 쫓는다. 부모의 돈과 학생의 건강을 ‘희생’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만 공부했어요.”라는 말은 신빙성이 없다고 치부한다. '분명히 몰래 고액 과외선생님한테 배웠을거야.' 라고 쑥덕거린다.
그래서 오늘도 10대 학생들은 쉬는 시간도 없이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고 있다.
'1등' 하고 나서, 그 다음은?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있는 10대 학생들의 목표는 공통적으로 딱 하나다.
1등 대학교.
그 1등 대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학부모는 어릴때부터 애한테 과외도 시키고 학원뺑뺑이도 돌린다.
그런데 말이다.
목표하던 1등 대학교에 간 다음은 어떻게 될까?
“1등 대학교 갔으니, 이제 난 공부 끝! 고생 끝! 인생 끝! 난 자유인으로 맘껏 놀꺼야!”
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다음 '1등' 은 없을까?
우리의 대학교 입학 때를 생각해보자. 어떻게든 노력해서 명문대에 갔다. 장미꽃 가득한 교정에서 원빈 같은 선배들과 함께 푸른 잔디밭에서 청춘드라마 찍을 줄 알았다. 현실은 아침 수업에 늦지 않으려 눈썹 휘날리게 뛰고, 과제에 치이고, 팀플과 조모임의 무임승차자와 싸우고, 도서관에서 밤새가며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준비한다.
우리가 저렇게 바삐 지내는 이유는 뭘까?
1등 회사에 들어가는 목표가 눈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졸업해서 1등 회사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 다음 목표는 업무평가 1등이 된다.
그 다음은?
동기 중 1등 승진.
친구들 중 1등 연봉.
등등등.
분명 우리의 목표는 '1등 대학교' 였는데, 그 뒤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1등' 이 너무 많이 나온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목표가 과연 '1등' 인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1등 말고 무엇이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준호는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수영대회에 나갔을 때는 항상 4등을 했다. 그러다가 김광수 코치의 체벌이 싫어서 수영을 때려치고 난 후 깨닫는다. 자신이 수영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어떻게든 수영을 계속 하고 싶다는 걸. 그후로 준호의 눈빛이 달라진다. 이전에는 김광수 코치가 옆에 딱 달라붙어서 가르칠 때에도 수영에 집중을 하지 못하다가, 자신이 수영을 좋아하고 계속 하고 싶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혼자서 훈련할때도 무섭게 집중한다. 그리고 절대 받지 못할것 같았던 금메달을 목에 건다.
우리 중 꽤 많은 사람은 영화 '4등' 은 나와는 관련없는 영화여서 편하게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얼핏 줄거리만 봤을때는 만년 4등을 하는 애가 1등을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꽤 좋은 성과를 냈거나 큰 업다운없이 무난하게 살아왔던 분들은 더더욱 준호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거다. 그러한 분들은 남들이 봤을 때 영화 초반부에 준호가 부러워하던 1등 하는 수영선수일 것 같다. 살면서 나름대로 성취를 맛보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면서 큰 걱정이 없어보이는 1등 선수.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만이 아는 나름대로의 슬럼프와 고비가 있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꽃길만 걸어온 것처럼 보이니, 영화 속 주인공인 준호의 눈에 비친 그들은 1등 선수일 게 틀림없다.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교에 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그들은 누가봐도 1등의 길을 계속 걸었다.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만 왔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강요 없이, 그들이 원하는 길로 나아가는 길이 우연찮게 남들이 말하는 '1등' 과 겹쳤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들은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다. 지금 현재 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느끼는 이 불만족은 그들도 결국 남들과 다를바없이 눈 앞에 보이는 ‘1등’만을 추구해왔음을 실토하게 만든다. 1등 같았던 그들이 사실은 영화 속에 나오는 '만년 4등' 이었던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한때 나는 “내가 잘하는 것 = 내가 좋아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 주위에서 칭찬을 해주니, 나는 기뻐서 더 그 일을 했고 결과도 좋았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들에게 지금 삶에 만족하냐고 물으면, 지금은 모든 일에 무감각해졌다고 답한다. 또래의 몇배의 연봉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좋았는데, 이제는 아무 느낌도 없다고들 한다. 자신이 누리는 것들이 전부 당연하게 느껴진단다. 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나는 요새 자꾸만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선택지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 선택지를 택했다면, 지금보다 수입은 훨씬 줄겠지만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결국, 난 그동안 내가 좋아한다고 믿어의심치 않았던 일을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내가 잘하는 일이었고, 그로 인해 칭찬받는 게 좋았을 뿐.
그런데 또 내가 그 선택지를 잘할거란 보장도 없다. 내가 지금 하고있는 이 일은 내가 잘하는 게 확실하지만, 내가 다른 일도 지금처럼 잘할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리스크가 있다.
아니면 흔히들 쉽게 말하는 것처럼 난 그냥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걸수도 있다. 뭐든 기브앤테이크가 있는데, 난 받기만하고 내 시간/청춘을 바치는 건 아까워하는 걸 수 있다. 어차피 시간과 노력을 바칠거면 기왕이면 보상이 좀더 높은 일을 선택하는게 좋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나도 항상 불만인 건 아니고, 가끔씩 너무 일이 벅차고 힘들때만 불만을 토로하니까… 평소에는 나도 나름 만족하면서 일한다는 뜻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
딜레마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남들처럼 1등을 쫓기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다.
1등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1등’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선물' 이다.
선물은 받으면 좋지만, 안 받아도 되는 무의미한 것이다.
절대로 선물 받는 것 자체가 누군가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영화 '4등' 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게 아닐까?
영화 마지막에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찾고, 앞으로 나아가는 준호의 편안한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