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파생한다. 비교적 소집단에서의 이벤트, 그러니까 학교에서 치르는 체육대회에서만도 갖은 스토리가 탄생함을 우리는 안다. 하물며 국가 간 경계를 넘는 아시안게임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부상할까. 그중 유독 글쓴이 눈에 든 화젯거리는 이른바 병역특례에 관한 것이다. 한국 야구팀은 금메달을 득하고도 고개를 숙여야 했고 그 중심엔 오지환, 박해민 선수가 있었다. 이 두 선수는 병역을 유예하고 있었고 이번에 한국팀이 1위에 오른 결과 병역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국민이 이들을 고깝게 보는 까닭은 해당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기엔 실력이 한참 모자르다고 판단해서일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이들이 욕을 먹는 실상이 글쓴이로선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이들이 욕을 먹어야 한다면 이러한 전제가 세워져야 한다. ①선동열 감독을 회유‧협박하여 국가대표에 선발되었거나 ②다른 선수에게 린치를 가하고 빈자리를 본인들이 차지했거나 ③국가대항전에서 최악의 플레이를 펼침으로써 대표팀에게 치명적 위기를 제공했거나. 기실, 이들에게 뿔난 국민이 정작 못마땅했던 대상은 병역특례 자체였고 그보다 만만한 대상을 뭇매질함으로써 자신의 성난 심정을 해소하진 않았을까. 요컨대 엉뚱한 곳에 줄포탄을 쏘아 댄 건 아닌가, 그 말이다.
여기까지 쓰면 글쓴이가 현 병역특례제도의 찬성론자로 비쳐지기 십상일 터이나 꼭 그렇진 않다. 권위 있는 클래식 콩쿠르 대회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특혜가 대중음악인에겐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하태경 의원의 지적은 귓등으로 흘릴 만큼 가볍지 않다. 터놓고 말해 국가가 가리키는 병역특례 대상의 범주는 매우 자의적이다. 그러나 자의적이면서도 아예 무분별하진 않으며 제 나름의 기준으로 체계가 서 있긴 하다. 운동에 한정하여 말하자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혹은 중요 국가대항전의 종목이라야 특례 대상 후보자의 자격이나마 부여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까.
세상엔 여러 직업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꼭대기엔 성취자가 앉아 있다. 중언하는바 모든 직업의 성취자가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그 대상에는 상시적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는 동시에 혜택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혜택의 범주에 들어 있으므로 한시적 환호를 얻는 것도 있다. 덧붙여 대중의 환호와는 요원하나 어느 시기에 국가의 눈에 띈 덕분에 관습적으로 혜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있다. 국가의 간택이 자못 자의적임을 보여주는 문장을 나열했다. 글쓴이는 이 자의성의 내부에 직업에 대한 구별이 도사린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윤색을 거쳤다. 인간은 직업의 귀천을 줄곧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