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경험들이 다 깨달음을 주는 면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중요한 깨달음은, 내 세계와 다른 것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던 경험에서 얻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알던 세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은 어찌 보면 당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나와 다른 세계,생각들, 예상하거나 원하지 않았던 결과들은 그 범주 밖에있는 것이기 때문에, 닫혀있던 내 세계를 깨고 나를 확장시킨다.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 반경을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을 경험하는 것은 그 세계의 크기만큼 나를 더 다채롭게 만들고, 부딪히는 경험의 횟수만큼 더 열리게 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인생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원하는 대로만 되었다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도 적을테니. 좌절되는 경험들을 통해서 나와 세상을 더 알아가게 되는 것이니까. 내가 지금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 충분히 고민하고, 그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안다고 해서 원하는대로 되는 인생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알고 가는 자와 모르고 가는 자의 차이는 무척 클 것이며,노력에 의해 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하루 하루, 이해할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것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라고 생각하던 사람에 대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이 둘의 차이는 꽤 크다.
전자의 경우는 상대방의 생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도 못해서 자기 세계에 갇힐 우려가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상대방을 이해하기 때문에 나와 다르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토론이 가능한 사람들은 후자일 것이다.
모든 인생의 순간에서 필요한 진리가 역지사지라는 생각이 든다. 역지사지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고 그것이 공감으로 이어지며 이해의 단계에 이를 수 있는데, 이 공감이라는 부분이 모든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들조차 때론 공감의 실패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곤 한다.
흔히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 뭘 원하는지, 무슨 감정인지, 어떤 의도로 행동한건지 전혀 얘기하지도 않거나 돌려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왜 그런것도 몰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공감의 기본 원리를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생각하는게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상황에 함께 있다 해도 느끼는 것이 다르기 마련인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말이 안돼. 말을 안하는데 어떻게 알아. 왜 독심술을 당연한 것으로 요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