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판문점 귀순 사건 당시 쓴 글로 내용이 현재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증외상환자의 대부분이 노동자라고 말하는 이국종 교수. *사진 :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
최근 목숨을 걸고 월남한 북한 병사를 살려낸 이국종 교수가 연일 화제다. 하지만 늘 좋은 소식만 들려오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간신들의 모함에 끝내 백의종군을 해야 했던 것처럼, 영웅의 길에는 험난한 운명과 순탄치 않은 여정이 기다리는 듯하다.
이국종 교수는 국내 중증외상팀의 최고 권위자다. 중증외상이란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심각한 장기 손상 및 대량 출혈, 다발성 골절 등의 피해를 입은 환자들의 상태를 일컫는다. 쉽게 말해서 이들을 치료한다는 것은 교통사고나 낙상사고 등의 사고를 당해서 몸이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을 살려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곳이 중증외상센터다.
중증외상을 다루는 이국종 교수팀이 처한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제대로 끼니를 해결할 시간도 없이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온다. 전국에서 몰려오기 때문에 헬기 출동은 일상이다. 그나마 환자가 제때 오면 다행이다. ‘골든타임’을 놓쳐 사실상 가망이 없는 환자들까지 몰려온다. 생명에 경중이 어디 있겠는가. 일단 들어온 환자는 모두 살려야한다. 그러나 이국종 교수의 몸은 하나뿐이다. 구조작업중 골절상을 입어도, 왼쪽 눈이 실명에 가까워져도, 수술하고 또 수술한다. 게다가 들어온 환자의 상태는 안정된 상태에서 마취를 받은 환자가 아니다. 바이탈 사인*이 수시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혼수상태에 빠진 위험한 환자들이 태반이다. 눈이면 눈, 코면 코, 환자의 데미지가 정해져서 오는 것도 아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문제가 되어 온다. 그러니 수술의 난이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골든 타임 : 일반적으로 중증외상환자가 소생할 확률이 최고인 사고 직후 3시간 이내를 일컫는다.
*바이탈 사인 : 환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핵심적인 신체의 주요 지표
수술받은 중환자를 놓을 중환자실조차 부족해 다른 과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중증외상 팀의 현실. *사진 :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
이처럼 업무의 강도도 살인적이지만 중증외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도 위험하기 짝이 없고 일반적인 정신력으로 감내하기 어렵다. 최근 이국종 교수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듯이, 환자의 감염 여부도 모른 채 환자의 피를 뒤집어써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엔 목숨을 걸어야한다. 거의 모든 환자가 촌각을 다투기 때문에 여유부릴 틈도 없다. 모든 행동은 신속하고 정확해야하지만, 수술을 집도하는 팀도 모두 사람이다. 꾸준한 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결국 ‘피로파괴’된다. 관두는 간호사가 수두룩하고 외상외과 지원율은 60%를 넘기지 않는다.
그나마도 수련의 생활이 끝나면 떠난다. 사람의 생사를 수시로 지켜보는 직업이어도 차마 보기 힘든 장면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노인에서부터 어린아이까지 처참한 모습으로 수술실에 들어온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괴로운데, 환자의 상태가 대부분 심각하므로 보호자들의 예민함도 극을 달린다. 이들을 달래고 설득하는 일도 정신적인 데미지를 가중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증외상팀의 환자는 자주 죽는다. 한두 고비를 넘겨도 ‘서드 피크*’에서 느닷없이 죽는 사람도 많다. 사람을 살려야하는 사람이 사람을 살리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만큼 더 큰 고뇌가 있을까. 죽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도 미안함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용을 떠안은 가족들에게도 괜히 죄인이 된 기분이 든다.
*서드 피크 : 중증외상환자의 사망 곡선 중 세번째로 많은 사망률을 기록하는 기간. 약 사고후 2~3주 후가 해당된다.
산업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그곳이 위험한지. 보도되지 않은 죽음이 얼마나 많은지.
중중외상센터란 이런 곳이다. 하지만 그 필요성에 비해서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 그건 의료진이나 환자에게 모두 해당된다. 법적 물리적 환경이 모두 열악한 실정인데, 총상까지 다루므로 설상가상으로 정치적인 문제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중증외상센터는 과연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이 질문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래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의 산업 대부분은 중화학 공업과 자동차, 조선, 철강 산업 등이 차지한다. 그 중심엔 굵직한 대기업이 있고, 그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업체들이 아직까진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있다. 필자도 수년 전에 아르바이트로 S 기업의 석유화학단지 내부에서 일한 적이 있다. 환경이 좋다는 대기업에서도 작업환경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안전띠 하나에 의존해 수십 미터의 ‘타워’를 오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쇳덩어리로 이루어진 공장에서 안전모를 쓰지 않으면 작은 낙하물에도 치명적인 외상을 입는다. 실제로 아르바이트 기간 중 발을 헛디뎌 크게 다친 정직원을 보기도 했다.
하청업체로 내려갈수록 작업환경은 더 열악해진다. 노동 강도는 높아지는데 안전성은 더 떨어진다. 하물며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일용직 근무자들의 안전은 더 살펴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멀리 볼 곳도 없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근무행태를 보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중공업, 조선업, 많은 근로자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또 많은 산업재해가 발생하지만 이들을 적절히 치료할 기관이 많지는 않다. 마치 소방관이 화상에 관련된 위험한 일을 하는데 ‘화상 전문 소방 병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다.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운송업자들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많은 부분을 ‘트럭’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운송업자들은 곡예운전과 피로운전을 해야 하는 현실에 내몰린다. 문제는 사고는 대개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증외상센터에는 현장에서 다친 사람도 많지만 이처럼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오는 사람들도 많다. 노동자 본인이 오기도 하지만, 그들이 때로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와 함께 피범벅이 된 채로 올 때도 있다.
중증외상센터에 들어오는 환자들 중에 편안히 앉아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맞고 들어오는 경우는 없다. 모두 스스로 위험한 현장에 뛰어들다 큰 피해를 입고 들어온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이유는 가난해서, 굶지 않기 위해서, 혹은 삶의 희망을 놓아 마침내 자해를 시도한 경우 등, 힘없기 때문이다. 일전에 <12. 위험한 공격>에서 언급했듯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영향력과 발언력이 없다. 그래서 이들이 처한 위험은 크게 문제로 번지지 않는다. 사회의 보장 영역 바깥에서 목숨을 건 삶의 사투를 벌이고, 다치면 죽거나 죽음에 비견하는 암담한 내일을 기다려야한다.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들을 아쉬워하는 이국종 교수. *사진 :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
이국종 교수는 이런 중증외과의 현실을 알고 부단히 이를 개선하고자 애썼다. 국가가 운영하고 책임지는 권역별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해 보다 많은 ‘힘없는 사람들’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끔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는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증외상은 의료수가가 낮기 때문에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국가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고, 쉽게 결정 나지 않는다. 수혜받는 이들에 비해 예산은 터무니없이 잡아먹는, 한 마디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국종 교수가 ‘문재인 케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지금도 가뜩이나 한정된 예산 속에서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곳이 있는데, 이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문제점에 문제점을 더 가중시키는 꼴이 된다. 예산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면 정책은 ‘효율성’을 위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이런 기조가 유지된다면 자칫 ‘더 많은 이들의 혜택을 위해 어차피 죽을 사람은 죽이는 게 효율적이지 않은가’와 같은 끔찍한 논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도 있다.
음주운전, 무면허, 중앙선 침범의 가해자는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 보험금은 이미 초과되고, 나날이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용이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지워진다. 사고를 당한 택배기사에게 '죄'가 있다면 '비오는 날 쉬지 않고 택배일을 나간 것'이다. *사진 :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
가장 위험하고 가장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수술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보험금이 최대한도까지 지급되어도 전체 의료비용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국가가 비용부담을 거부할수록 이 천문학적인 비용은 병원의 부담으로 넘어가고, 병원은 적자를 면하기 위해 중증외상환자 받기를 꺼리게 된다. 병원이 꺼리는 환자는 의사도 받기 어렵다. 병원이 꺼리는 환자를 받는 행위는 결국 치료자인 의사의 부담이 되니까. 의사도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인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소모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심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한다. 하지만 늘 병원에 적자만 안기는 ‘골칫덩이’ 이므로 적절한 보상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외상외과를 기피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권준식 외상외과 전문의. *사진 : MBC 스페셜 <'골든타임'은 있다>
결국 모든 병원과 예비 전문의, 관련인력들 모두가 중증외상환자를 '돌보지 않으려 노력’하기 때문에, 중증외상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 골든타임은 길어지고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인력도 양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증외상환자는 산업구조상 꾸준히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때 처치할 수 있는 병원은 얼마 되지 않고, 그 얼마 되지 않는 병원으로 골든타임까지 놓쳐가며 모든 환자가 집중된다. 당연히 해당 병원의 종사자는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했듯이 간호사 등의 간병 인력도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다. 그럼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을까.
말할 것도 없이 생계의 최전선에 뛰고 있는, 가난하지만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이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일 수밖에 없다. 설령 대형사고가 나서 천운이 도와 목숨을 부지했다고, 적절히 치료를 받아서 살아남았다고 한들, 살아남은 게 아니게 된다. 의료비용에 재산을 탕진하고 남은여생을 그에 관련된 빚으로 허덕여야할지 모른다. 다시 돈을 모으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야만하고, 위험한 현장으로 다시 나가야한다.
누가 이들을 돌보는가? 누가 이들을 위해 말하는가? 가난한 사람이 더 잘 죽는다. 이국종 교수는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사회라는 큰 틀을 이끌기 위해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해야한다면, 적어도 그 사람들이 그 위험으로부터, 어떤 위해를 입었을 때 구조될 수 있다는 ‘믿음’은 줘야한다. 한 인간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를 대비해 추락지점에 그물망을 쳐두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화재로 인한 손실이 소방서를 운영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지만 소방서를 운영하지 않을 수는 없듯이. 누군가 치명적인 파멸을 맞이할 때 이를 막아주는 것, 이런 일이야말로 진정 인권을 살리는 길 아닐까?
산업 현장에서 삶을 일구는 누구든, 생계의 최전선에 내몰린 가난한 이들 모두는 언제든 중증외상환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중증외상환자가 된다는 건 단순히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한 사람 인생의 파멸, 더 나아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파멸을 부르는 비극이 될 수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을 살피는 의료진들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사명감만으로 지탱하기엔 그들이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이는 비단 중증외상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비자발적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모든 분야의 사회적 재앙에도 진지하게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존재 목적이며, 국가라는 합의체의 존재 목적이다. 능력껏 살아남는 것은 그야말로 ‘야생의 세계’니까.
*이 작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연재합니다.
- <이 하나의 장면, 명장면 철학 읽기>
*지나간 영화의 좋은 장면을 골라 집중적으로 리뷰합니다. - <필룸>
*현재 개봉중인, 개봉 예정인 작품들을 리뷰하며, '당신을 영화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때로 과거의 영화도 리뷰합니다. - <생각중독>
*세상의 모든 분야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에세이입니다. - <시작, 詩作>
*작가의 자작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