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 있는 길에선 달리기만 잘하면 된다. 길이 없다면, 쟁기와 삽부터 구해서 길을 내 가야 한다. illust by polonius park
“되고 싶은 건 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파티플래너를 꿈꾸고 있던 한 학생이 이야기했습니다. “늘 시키는 대로 잘 하는 법만 배웠으니까요.”
지난해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파티플래너를, 또다른 두 명의 친구는 아직 꿈이 없다고 했습니다. 학교의 다른 친구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상당수의 친구들이 공무원이나 교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극과 극으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아예 공무원, 아니면 아주 독창적인 친구들이요. 괴짜 친구들은 스스로 뭔가 계속 잘 해 나가요. 그런데 대부분의 다른 친구들은 굉장히 불안해 해요. 그래서 대부분 시험을 선택해요.”
줄곧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프리랜서의 길만 걸어온 저는
그 친구들에게 ‘자유롭게 살려면 뭔가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 수많은 친구들이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는지, 왜 작가를 꿈꾸는 이들도 대기업에 지원하는지,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던 이들도 왜 공시를 선택하는지, 왠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린 친구들 앞에는 지금 두 가지의 다른 길이 있는 듯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가 걸어왔던 길입니다. 당시엔 대부분 조금 열심히 살기만 하면 중산층의 티켓을 얻었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구조가 이미 짜여진 조직이 만들어 놓은 검증을 통과하면 나를 적절한 곳으로 배치해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열심히, 성실히, 실력을 키우기만 하면 되는 그런 길, 이것을 ‘아카데믹한 길’ 이라고 해 보겠습니다.
Academic Way. illust by polonius park
그런데 또다른 길은, ‘내가 나를 써줄 사람’을 스스로 찾아나서야 하는 세계입니다. 안개로 가득한 것 같은 이 길은, 유튜브와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이나, 킥스타터, 텀블벅, 카카오스토리펀딩 같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있는 세계이기도 합니다. (아마 스팀잇도 그런 세계일지도 모릅니다.) 지원금, 공모, 오디션, 해커톤, 스타트업과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괴상하고 재미있고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하거나, 사회적 기업이나 공동체를 꾸려볼 수도 있습니다.
Creative Way, No, Unstable Way. illust by polonius park
그런데 대학생들이 이 길을 많이 어려워하는 이유는, 실력이 없어서 가 아니라
실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 있는 길에서는, 달리기만 잘 하면 되었는데, 여기서는 쟁기와 삽부터 구해서 길을 내 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많은 대학생들이 솔직히 개성있고 독특한 직업을 갖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돈을 벌 수 있는건지
아니, 먹고 살 수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여행 블로거, 영화감독, 유튜버, 푸드 스타일리스트, 1인 미디어, 게임 디자이너, 스타트업 개발자 같은
창의적인 직업들을 꿈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꿈꾸는 일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을 시켜달라며 그 판에 뛰어들어
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른 세상에 자기 콘텐츠를 알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 지 모를 기회를 기다려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씨실과 날실의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우연을 포착해야 하고,
수없이 명함을 돌리고 투자자들을 설득하며, 월급 없이 생활을 버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는 커녕 밤새 수익모델만 고민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취미로 아이콘을 그려 블로그에 올렸다가 애플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디자이너나+
길거리 패션을 촬영해 올렸다가 패션지로부터 제의를 받은 사진작가처럼 멋진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보통은 언제 어디서 어떤 기회가 올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반드시 유튜브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반드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스타트업을 만들어도 반드시 수익이 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크라우드펀딩이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적어도 우리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공무원이 되고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월급을 받고 열심히 하면 승진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토록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이유는
그것이 이 사회에 얼마 남지 않은 아카데믹한 길 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학교에서 배워 온 문법이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기회를 만나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회 안전망은 오로지’정규직 직장인’을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청년들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창의적인 일을 꿈꿔 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창의적인 일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고 정직하게 이야기해야만 했습니다. 아니, 조금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행운이 따를 경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웹디자이너로, 영상편집자로, 작가로, 강사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남들이 시키는 재주를 부려야, 돈이 시키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팀잇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어린 친구들에게 달리 이야기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의적인 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말을 저는 수정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유’ 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자유, 돈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해 주는 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광고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유료로 접근을 제한하지도 않고, 모두와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스팀잇과 같은 플랫폼이 주는 자유도 이리 큰데, 어린 친구들에게 조금의 여유를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사회 안전망이 존재한다면, 많은 선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라는 말이 더 이상 공허한 주문이 아니게 될 때를 기다립니다.
+디자인사이트에 자신의 아이콘 포트폴리오를 올리고 애플에 취직하게 된 김윤재씨. http://www.theart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7
++길거리 패션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패션지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남현범 포토그래퍼
http://news.joins.com/article/606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