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우리의 조상들은 항상 중국 대륙의 정세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무릇 천하대세는 나누어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는 삼국지연의의 첫 구절처럼 어느 나라가 또는 민족이 갑자기 흥성하여 대륙을 차지하고 호령할지, 또 어떻게 갈라지고 어느 쪽이 우리와 맞닿는가의 문제는 작게는 이익의 대소를, 크게는 나라의 존망을 결정하는 문제가 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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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국제 정세 속에서 살 길을 찾아야 했던 조상님들 중 탁월했던 몇 분을 모시고 가상 좌담회를 열어 볼까 합니다. 주제는 “우리는 이렇게 외교를 펼쳤다.” 나와 주신 분들 일일이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뭐 먼저 고구려 장수왕께서 말문을 틔워 주시도록 하겠습니다.
<장수왕>
어흠. 뭐 비단 왕이 아니더라도 여기서 필시 내가 가장 연장자일 테니 (내가 아흔 일곱까지 살아서 장수왕 아니오) 먼저 말을 하도록 하지요. 내가 즉위하던 무렵은 국제 정세가 급변하던 시기였소. 중국이 5호 16국 시대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대충 북쪽의 북위와 남의 송나라로 정리되던 때였지. 일종의 양강체제(兩强體制)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요. 아버지 광개토왕은 대륙의 혼란을 틈타 동서남북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가셨지만 나는 그럴 수만은 없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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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보면 알겠지만 내 기록의 태반은 북위와 송에 조공한 일로 채워져 있다오. 나는 그 두 나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지. 국경을 맞댄 북위와 교류가 잦았지만 결코 남쪽 왕조 송에게도 소홀하지 않았다오. 그 한 예로 439년 송나라가 말 8백 필을 요구해 왔을 때 나는 바다 건너 말들을 보내 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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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8백 필이란 무슨 의미인지 아시오? 유목 민족인 선비족이 세운 북위는 기병이 주력이었지만 한족이 중심이었던 송은 그렇지 못했거든. 그들에게 말(馬)을 보낸 것이란 요즘으로 말하면 탱크 8백 대나 미사일 8백 기를 보낸 것과 같다고 보면 될 거요. 말 8백 필이 가면 그 말을 돌보는 사람은 얼마나 가야 하고, 그 말들이 먹을 건초는 얼마였겠소. 국력을 기울인 수송 작전이었고 말만 보낸 게 아니라 우리 고구려가 쓰던 기병 전술까지 수출했다고 보면 될 거요.
439년이 무슨 해인지 아시오? 바로 북위가 화북을 통일했던 해요. 그리고 나는 그 해에도 어김없이 북위에 사신을 보냈소. 심지어 11월,12월 한 달이 멀다하고 보내서 친한 체를 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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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장수왕께서는 북위와 송의 욕심과 약점을 동시에 이용하신 겁니다. 북위는 송나라와 맞서기 위해서 고구려와 무탈하게 지내야 했고 송나라는 북위를 견제하기 위해서 고구려를 끌어들여야 했던 거죠. 요즘 청춘 남녀들의 연애 격언 중에 “잡힌 고기에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지요? 장수왕의 외교의 비결은 바로 ‘잡힌 고기’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대국이 낚시꾼이라면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낚시 바늘을 피해 미끼만 잘라 먹는 얄미운 물고기였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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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어헛.. 어흠. 좀 무엄하시군 서희 공. 나를 물고기에 비하다니. 북위의 공격을 받은 북연이 멸망할 때 나는 북위의 요구를 거부하고 북연의 왕 풍홍을 받아들였소. 또 풍홍이 송나라를 끌어들여 우습게 놀자 그를 가차없이 죽여 버리기도 했소. 미끼나 잘라먹는 물고기는 아니었단 말이오. 오히려 미끼를 준 건 우리였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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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비유가 불쾌했다면 용서하소서 대왕. 그러나 대왕은 또 하나의 외교의 기본을 보여 주신 겁니다. 강대국의 욕심을 타고 넘고 약점을 찌를 수 있는 외교의 핵심은 곧 주체적인 자기 역랑입니다. 스스로 지킬 힘과 방책이 없는 이라면 밖으로 누구와도 사귈 수가 없고 싫어도 미끼를 물어야 굶주림을 면하는 물고기가 될 뿐인 것이지요. 소인이 활약했던 거란의 1차 침입 때 얘길 해 볼까요.
<장수왕> 그때도 송나라 (장수왕이 다스리던 무렵의 남조 송나라와는 다른)와 거란, 즉 요나라와 다툼이 치열할 때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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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그렇습니다. 요나라는 송나라는 오늘날 북경 지역인 연운 16주를 두고 다투고 있었고 본격적인 전쟁 전에 배후의 위협이 될 수 있는 고려를 꺾어 두려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허장성세가 심했지요. 80만 대군이 왔다고. 그런데 80만 대군이라면 왜 구태여 항복하라고 큰소리를 칩니까. 그냥 점령해 버리면 되는데...... 허세였죠. 물론 만약 안융진 전투마저도 고려군이 패했다면 그 허세는 실세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소손녕은 그 작은 성을 빼앗지도 못하면서 계속 폼만 잡았죠. 이거 뻥이다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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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그때 서경(평양) 이북은 떼 주자는 사람도 많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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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예. 지렁이면 감지덕지인 물고기에게 좋은 떡밥을 미끼로 쓰면 안 되지요. 언감생심 그들은 땅 욕심은 없었는데 땅을 떼 주다니오. 회담 중에 소손녕이 이 말을 했을 때 저는 춤을 출 뻔 했습니다.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바다 건너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까닭은 무엇이오?” 결국 이게 거란의 속내고 욕심이었지요. 후손들이 만든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명대사던가요. “상대방이 뭘 원하는 지 알면 게임 끝이다.” 쾌재를 부르며 제가 소손녕에게 날린 대사가 이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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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때문에 길이 막혀서 압록강 건너기가 바다 건너기보다 힘든데 어떡합니까. 우리가 여진족 몰아내고 옛 땅을 찾아 요새를 만들고 길을 열면 안 친할래야 안 친할 수 없지 않을까요.” 소손녕은 길게 생각하는 친구가 아니더군요. 자기네 왕에게 잽싸게 허락을 득하고는 제게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 천 필에 비단까지 얹어 선물을 주고 철군해 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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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하하하. 그래서 고려는 요나라에게 뭘 해 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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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자그마치 송나라와 단교하고 요나라 연호를 사용하기로 하였답니다. 압록강변 280리를 우리 땅으로 공인받고 성 쌓고 길 닦는 댓가로 말입니다. 하지만 요나라에는 그게 중요했던 겁니다. 얼마나 바보 짓을 한 건지는 수만 목숨을 바치고야 알게 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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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 번 정리해 볼까요. 두 분이 살던 시대와 오늘날이 물론 같을 수는 없지만 양강구도의 틈새를 경험하신 분들로서 후손들의 외교에 도움말을 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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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우선 섣불리 한 편에 서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겠지요. 결단할 때는 분명히 있겠으나 드물 것이고, 섣불리 결단하여 한쪽의 적이 되는 일은 금기 중의 금기요. 그리고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빼낼 수 있는 패는 소매 속에 감춰 둬야 하오. 고구려에 상륙하여 내 부하들을 죽인 송나라 장수를 내가 요절내 버리지 않은 이유고, 혼인을 요구하여 고구려와 굳은 결속을 하려는 북위의 요구를 애써 거절한 까닭입니다. 또한 중심을 잡아야하지요. “판단은 강대국이 하고 우리는 수용할 뿐”이라는 이들에게는 외교고 국방이고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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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80만 대군을 떠벌이면서 협상하자고 으르댄 소손녕에게 속내가 있었던 것처럼 툭하면 미사일을 쏘아대는 이들에게도 원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들을 감싸는 이들도 똑같을 겁니다. 그럼 우리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어느 정도 (또는 최소한으로) 배려해 주는 것이 외교고 협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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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민 없이 “적이 쳐들어왔다 싸우자”고 부르짖거나 “80만 대군이란다 항복하자.”고 외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다르나 종국에는 멍청함으로 합쳐질 뿐입니다. 고민이 부족했던 양반 한 명 불러 보지요. 어서 오시오 대막리지. 아직 칼 여섯 개는 차고 다니시는구만. 연개소문의 파트너였던 김춘추 무열왕도 모셔야겠지만 좀 바쁘시다 해서 그 아드님 김법민 문무왕을 함께 모셔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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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여섯 개의 칼 쩔그렁거리며 등장)
그런데 앞서 나더러 고민이 부족했다는 게 무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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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민 문무왕> 피식 천 오백년이 지나고도 모른다면 그건 병이요 병.
(내키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