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의 노래
항상 년도를 붙이는데 오늘은 파격적으로 붙이지 않는다. 아니 붙일 수가 없다. 10월의 마지막 밤. 가수 이용이 가장 바쁜 날이다. 미파솔 미도 시도 라시솔..... 사람의 심장을 솔솔 감아드는 멜로디의 전주와 더불어 이용 특유의 절절한 목소리로 웅숭깊게 시작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의 이 노래를 40대 이상이라면 오늘 한 번쯤 흥얼거려 봤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가수 이용을 지척에서 봤었다. 동네 아저씨들끼리 한 잔 하는 김에 새로이 개장한 7080 까페에 가게 됐는데 아 글쎄 그날의 초대 손님이 이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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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많이 늙어 있었다. 음색도 꽤 갈라지고 탁해졌지만 관록이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잊혀진 계절”을 부를 때 나는 자연스럽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쥐어짜듯이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를 부르짖을 때 레코드방 스피커 앞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그 막대한 고음에 꽥꽥거리면서 따라 부르던 어린아이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를 처음 봤던 건 박정희 대통령이 총 맞고 전두환이 들어선 후였다.
빈약한 정통성을 지닌 정권은 대개 색다르고 거창한 이벤트를 기획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려서 자신의 구린 데를 감추고자 하기 마련이다. 5공화국 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른바 '3허'라고 하여 실세 중의 실세라고 불리우는 세 명의 허씨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인 허문도는 자신들이 언론 통폐합으로 문을 강제로 닫게 했던 민영방송사 TBC가 만들었던 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다. TBC는 제 1회 "전국 대학생 축제 경연대회"를 연 바 있었는데, 허문도는 이 소박한 규모의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뻥튀기하고 제 5공화국 헌법에 새로이 삽입된 '민족 문화 창달' 조항에 부응하는 어마어마한 관제 축제로 만든다. 이것이 그 이름도 고풍스런 '국풍 81'이었다.
하늘을 나는 로케트도 떨어뜨리는 세도가의 기획이었다. 자그마치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하고 KBS가 주관하는 가운데 "'새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청년의 열과 의지의 힘이다"라는 가슴 벅찬 슬로건을 내건 국풍 81은 1981년 5월 대단원의 막을 올린다.
198개 대학의 수천 명의 학생들과 그만큼의 일반인들이 행사에 참여하여 벌이는 온갖 민속놀이와 흐드러진 술판으로 온 여의도가 흥청거렸고 정권은 통행금지를 일시 해제하는 파격까지 베풀어 주었다. 그런데 정작 허문도로서는 아쉬운 것이 있었다, '민족 문화 창달'의 취지에 걸맞는 대학생 탈춤반들의 참여가 전무했던 것이다. 섭외는 물론 해 보았지만 정권의 속이 뻔히 들여다보는 국풍 81에 참여하겠다는 탈춤반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허문도는 졸업생이나 군대에 있던 사람들까지 총동원하여 '서울대 탈춤반'을 급조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국풍 81에서 민족 문화 창달을 위한 차전놀이나 풍물이나 고싸움 등등보다 월등 인기를 누린 것은 역시 대학생들의 가요제였다. 여기서 서울예전에 다니던 이용은 <바람이려오>라는 곡으로 누가 봐도 압도적인 가창력을 선보인다.
누구나 대상은 이용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대상은 서울대 그룹사운드에게로 돌아갔다. 정권의 실세께서 기획하신 행사 수상자의 '네임밸류' 도 고려해야 하는 정치적 이유로, 이용이 타야 할 상이 엉뚱한 곳으로 갔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역시 개운찮은 1등을 한 서울대팀은 잠깐 사이에 사라졌지만 이용은 곧 조용필의 도전에 아성하는 가수로 우뚝 서게 된다. 그 기폭제이자 대표작이 <잊혀진 계절>이었다.
원래 이 노래는 이용이 아니라 조영남을 겨냥해 지어진 것이라고 하며 가사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9월의 마지막 밤을....’이었다고 하는데 어쩌다보니 이용이 부르게 됐고 발표 시기가 늦춰지는 바람에 10월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곡도 곡이지만 사실 이 노래는 가사에 더 큰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자 앞에서는 돌이 되어 버리는 성향을 지닌 수많은 남자들이 공감할 사연이 얽혀 있기도 하다.
작사가 박건호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박인희의 <모닥불> 조용필의 <모나리자> 등 수천 곡의 노래 가사를 써낸 분인데 이분이 무명 시절, 한 여자를 만났다. 마음 속으로 좋아는 했지만 사랑한다는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끙끙 앓다가 지레 포기하기로 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여자 앞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술만 퍼마시던 박건호씨. 그날 따라 부슬부슬 비가 왔다던가.
남자가 무슨 말인지 말하지도 않고 술만 들이키는 것에 의아했던 여자는 술값을 치르고 버스에 태우고 안내양에게 저 오발탄 어디에 내려 달라고 당부까지 하고 돌아섰다. 그때 박건호씨는 뭐에 맞은 듯이 다음 정거장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득달같이 달려가서는 아직까지 주변을 떠나지 않았던 그녀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단다. “정아씨 사랑합니다!!!!!”
아 그러고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들입다 끌어안고 키스를 하거나 최소한 안아 주거나 촌스럽지만 진정성있게 무릎이라도 꿇으면 뭐라도 됐을 텐데 이 박건호씨 사랑합니다 부르짖은 뒤에 뒤로 돌아 해서는 또 한 번 100미터 달리기로 현장을 벗어났단다. 그때 여자의 얼굴에는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황당함과 웃기는 놈이군 하는 싸늘함이 번지고 있었을 것이고.
도망가면서 박건호씨 자신도 자신이 미치게 싫었다고 한다. 배경음악을 넣자면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나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아니면 요즘 식으로 하면 “오빤 찐따 스따일~~~”
이 황망하고 비겁하고 소득 없고 찝찝한 사랑 고백의 기억은 그에게 필생의 아쉬움으로 남았고 그 아쉬움의 에너지는 <잊혀진 계절>에 그대로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잊혀진 계절>의 10월의 마지막 밤이 뭇 중년 남녀 (젊은 애들은 이거 별로 신경쓰지 않더라)들을 몸살나게 만드는 이유는 그 노래 가사가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허수아비처럼 두 팔 벌린 채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근접하지도 못했던 안타까움이 녹아들어 있고 유사한 추억을 가진 이들의 추억 회로를 맹렬한 반복 모드로 고장내 놓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