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소외현상을 불러온다고 하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면도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핸드폰이 없어서 무슨 일이 있으면 친구 집에 직접 찾아가거나 유선으로 전화를 걸어야 했다. 나보다 더 윗 세대분들은 이마저도 없어서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모두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게 되었고 핸드폰 번호를 한번 정하면 쉽게 바꾸지 않는 평생 번호 시대가 됐다. 더군다나 요새는 카카오톡의 보급으로 여기저기 단체방에 초대를 받고 간간히 근황을 주고받기에 한번 맺어진 인연은 쉽사리 끊기지 않게 됐다. 카톡 지옥 때문에 단체방이 짜증 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사이에 인연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실 역할을 하고 있어 고맙기도 하다.
가끔은 즉흥적인 친구의 주도로 모임을 갖기도 한다. 만나도 별다른 얘기도 없고 매번 레퍼토리도 같지만 뭐가 그리좋은지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 하하호호 떠들며 끊임없이 소주를 들이킨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는 별 의미도 없이 사소한 것 하나에도 그렇게 깔깔대며 웃고 재미있어했다. 작은 것에 감동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고 우격다짐을 해도 곧장 화해하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작은 것에 감동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 나이가 됐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감정이 메마른 나도 다시 친구들은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되돌아 간다. 평소에 과묵한 성격도 버리고 하루 종일 시끄럽게 떠들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천방지축이 된다. 이런 걸 보면 친구라는 존재는 참 묘한 거 같다.
시간이 흘러 보고 싶어도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이민이라도 간 건지 보고 싶은 친구를 여러 번 찾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주변을 통해서 수소문해도 연락이 통 안 된다.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늘 그 친구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