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에게 내 최고의 악연을 꼽아보라면 백이면 백 사수였던 C씨를 꼽는다. 소대 전입 당시 그는 상병 말호봉인 부분대장이었고 참 오랜 기간 부사수 없이 군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는 병장이 다 돼서 자기 일을 이어 할 부사수를 받은 거고, 나는 그가 제대하고 나면 일병 나부랭이가 분대를 이끌 판이었다. 빡세게 가르쳐야 다른 분대에 무시 안 당하고 본부분대를 이끌 수 있으니 "너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배우라"고는 했지만...
그는 참 지독하게 괴롭혔다. 너무 완벽한 그의 눈 높이에 맞춰 일을 해 내기가 버거웠다. 주된 업무가 서무이니, 그래봐야 종이쪼가리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천성이 덜렁이였다. 그의 눈은 내가 틀린 자간 1%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입대 전까지 '독수리 타법'의 사실상 컴맹이었는데, 그는 띄어쓰기 하나에도 눈이 뒤집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워드프로세서에 선 굵기 조절이 있는줄도 몰랐는데, 그는 선굵기가 0.01포인트만 틀려도 일일보고서를 하늘로 집어던졌다.
C씨는 무려 S대를 다니다,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자원입대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군대를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 그는 미국 시민권자였지만 굳이 군대에 와서 나를 괴롭혔다.
그는 피지컬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가 없는 인재였다. 부대의 모든 업무를 꿰고 있었다. 영어도 탁월했다. 미군과 같이 생활하는 부대라, 동시통역이 필요할 때가 많았는데 미군 부대대장의 말을 자연스럽게 동시통역했다. 제대할 때가 다가오자 한 3일 영어 책을 들여다보더니 토플을 거의 만점을 받아 왔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1등대학 교수, 어머니는 2등대학 교수란다. 누나는 사시를 패스한 법조인이었다.
C는 완벽주의자로서 업무적으로도 나를 자주 나무랐지만 인격적으로도 힘들게 했다. 일전에 적은 '계급장 사건' 당시 이마에 왕병장 계급장을 붙이고 생활하게 했고 매일 아침 30분 이상씩 갈궜다. 그럼에도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든 일이 있었다.
언제였던가 부대에 가족초청행사가 있었다. 장병들의 가족이나 애인, 친구 등이 부대를 방문해 판문점 투어 등을 한 뒤, 장병들은 초대한 친지들과 함께 외박을 나가는 행사였다. 당시 나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가족초청행사만 참석한 뒤 부대에 남게 됐고, C는 초청한 사람이 없어서 부대에 남았다.
당시 미군식이었던 부대 막사는 2인 1실이었다. 2층 침대에서 C는 1층, 나는 2층을 썼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가족들을 보내고 서운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밑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 C가 불렀다. "자냐." 안 잔다고 했더니 넋두리를 시작했다. 그의 말은 대강 이랬다.
오늘 너의 가족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다. 넌 가족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어릴 적부터 항상 집 열쇠를 갖고 학교에 다녔다. 너는 항상 집에 엄마가 있었지? 나에게 집은 항상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늘 집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많이 비뚤어졌고 노는 애들과 어울렸다.
어릴적부터 내가 하는 어떤 일에 부모님이 참여한 적이 없었다. 오늘 가족초청행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입대하고 행사를 몇 번 했는데 부모님은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내가 평소에 괴롭혀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냥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니가 너무 부럽다.
중간에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느 순간엔가 그는 말을 멈췄고 둘 다 잠이 들었다.
나는 항상 집에 엄마가 있어서 좋았다. 학교 끝나고 딴 데로 샐 일도 없었다. 조금만 늦으면 엄마가 걱정을 했다.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C에겐 그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밖에 나가면 요즘말로 '금수저'였다.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는 열등한 아들, 문제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름대로 엇나가고 어디서 좀 놀았나보다. 그래서 S대 1등학과에 들어가지 못했나보다.
그날 이후에도 많이 혼나고 갈굼을 당했다. 하지만 나도 이를 악물고 배웠고 타자도 검나 연습했다. 그러다 한 사이클 동안 업무적으로 한 번도 안 까이고, 그의 입에서 "완벽하다, 완벽해"라는 소리까지 나오게 될 즈음 그의 전역이 눈앞에 왔다.
그가 전역하면 일병임에도 소대본부 업무의 절반을 책임지는 부분대장, 그리고 2주 뒤 분대장이 되는 수순이었는데 그 사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 부대를 한국군 소속으로 다시 창설하는 바람에 다른 부대에 있던 인원들이 편입하면서 '다행히' 그런 영광은 누리지 못하게 됐다. 자신이 전역한 뒤 낮은 계급으로 중한 일을 맡게 될 테니 일을 철처하게 배워야 한다며 그 동안 나를 검나 굴렸던 C는, 타 부대에서 편입 온 인원이 내 위로 2~3명이나 들어오자 머쓱해졌다.
그는 제대하면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계속 했다. 나는 계속 괜찮다고 했다. 사실 그리 밉지 않았다.
그는 제대한 뒤 바로 하와이로 유학을 갔다. 다녀와서는 무슨 경영을 컨설팅하는 글로벌 회사에 들어갔다. 잘 나가는 것 같았다. 어리고 똑똑한 여성을 만나 결혼도 했다.
나중에 회사에 들어와서 보니 그의 아버지는 그냥 교수도 아니고 엄청 유명한 교수였다. 오피니언 필진으로 섭외하기 위해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승낙은 안 해줬지만, 아드님과 군대에 같이 있었다는 얘길 했더니 반가워 했다. 노교수는 아들 얘기를 한참 하셨다. 말에서 사랑과 인정이 느껴졌다.
당시 본인이 아무리 열등감을 갖고 살았어도, C 역시 아버지에겐 자랑하고 싶은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