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에 혼자 가서 찾아 본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을 좇아가는 내용의 영화로서
100여명의 화가들이 10년간 직접 유화로 그린 6만여 장의 프레임을 이어 붙여
만든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해바라기』, 『아를르의 침실』, 『의사 가셰의 초상』 등
뛰어난 걸작을 남겨
미래세대의 찬사와 존경을 받고 있는 고흐이지만,
그의 생애는 무관심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붓을 잡은 9년간 그는 총 9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정작 팔린 작품은 단 한 점이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고흐는 살아있는 동안 철저히 외면받던 작가였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귀족이나 대부호의 초상화나 종교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들에게 인정 받는 것이 대가의 반열에 오르는 길이었죠.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1년, 고야 作.
그러나 고흐는 지배층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를 거부했습니다.
그의 재능이면 충분히 입맛에 맞는 걸쭉한 작품들을
뽑아낼 수 있었음에도 말이죠.
저는 그가 그의 예술세계를 저버리면서까지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쓰기 싫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르조나[Persona]
고대에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용어로서,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쓰는 사회적 가면 또는 사회적 얼굴을 의미한다. 페르조나는 성 정체성이나 자아 정체 성 또는 직업 같이 사회가 규정하는 나에 대한 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개인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기 성격의 한 측면을 페르조나로 강조하기도 하고, 전 생애 동안 많은 페르조나들을 사용하는데, 여러 개를 동시에 사용하기도 한다.
출처: (정신분석용어사전, 2002. 8. 10., 서울대상관계정신분석연구소[한국심리치료연구소])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그의 예술적 고집이 후대에 빛을 발하게 되었지만,
만일에 그가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이른바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좀 더 했더라면
그때의 반 고흐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어디에든 존재하지 호불호
누군 큰 그림을 보라지만
큰 그림들이 주는 뜬구름들이
나의 정밀했던 표현과
세계를 난도질하려 해여
나의 열정이 행여 돈이 덜 된 거라도
그게 실수라고 말하지마
난 내 길을 갈거라고
너도 망설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사람 일이 말야 당장 내일도 말야
어찌될지 모르니까 그냥
코끼리스텝 끼리끼리스텝 끼리
스텝으로 가야지
코끼리스텝 끼리끼리스텝 끼리
스텝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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