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의 여러가지 꿈 중 한가지를 이루었습니다. 바로 저의 이름을 건 '강연'인데요.
그 동안 센터 봉사활동이나 그린캠프 등에서 해봤으나 모두 프로그램에 일환이거나 다른분들과 동반으로 했을 뿐 저의 이름을 건 강연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봉사로 수상도 하고 하면서 저에게 강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저의 이름을 건 저의 강연이요!!
어떤 강연이었냐고요? 대부분이 제가 포스팅 했던 '마음 공부'에요ㅎㅎ
살짝 맛보기만 보여드린다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입니다.
좀 처럼 감당하기 힘들수도있고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죠.
흔히 우리가 말하는 훌륭한 것들은
여러분보다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의해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가지고 사는 대부분의 두려움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의 두려움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대한 걱정때문에 두려움을 더 크게만들기도하며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구속하게 내버려둡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부끄럽네요ㅎㅎ
직장인이지만 늘 ‘강사’를 꿈을 키우던 저에게 저의 이름을 건 강연은 엄청난 의미입니다.
사춘기 시절부터 ‘강사’라는 직업은 늘 저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한번의 목소리로 30명의 귀를 울리고 있는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무대에 서는 것은 그것이 어떤 무대이던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저의 무대 앞에 있는 분들의 시간을 제가 사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리고 저의 목소리를 들어준 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 자나요.
그런데 이 감사한 일을 제가 스티밋 덕분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근데 스티밋 때문이라고?
그런데 제가 '스티밋 덕분에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작년 여름에 스티밋을 시작했습니다. 포스팅한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슬럼프였거든요. 슬럼프라기 보다는 트라우마, 그리고 마음의 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잘 내지 못했으니까요.
친구의 자살
군 시절 저희 사단에는 ‘그린캠프’라는 자살 방지 기관이 있었습니다. 일명 ‘관심 병사’들을 모아 놓고 교육과 치료를 하는 곳인데요, 저는 인사업무 때문에 그곳에 갈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관심 병사’ 한 명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종종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그 친구를 치료해주기 위해 친구가 되었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진심으로 그 친구를 ‘친구’ 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서도 그 친구는 집에서 게임만 하며 사회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도 저에게 도움을 많이 요청 하셨고, 저는 매일 같이 문자와 전화를 하고 주말에는 집에 찾아 가기도 하며 그친구를 사회로 내보내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결국 인쇄업체의 사무직으로 취업을 했습니다. 첫 출근하는 날까지도 가기 싫다고 징징거리던 그 친구.
어릴 때부터 늘 외톨이였던 그 친구는 작은 인쇄소에서도 적응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늦은 밤 전화해서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는 말을 늘 하던 그 친구는 다시 군대에 있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런 부분이 너무 답답했고 심한 말을 해버렸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널 챙겨줘야 하는데! 이제 정신 차리고 사회에 좀 적응해!’
이 말을 끝으로 약 2달간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더 이상 징징대는 모습을 안봐도 되서 좋았습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내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근본적인 성격이 다르고, 삶이 다른 것인데 내가 너무 억지로 사회로 밀어 넣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가 그리워 질 때 쯤….. 연락이 왔습니다. 그가 아닌 그의 어머니에게서…
친구가 자살했다고
화가 났습니다. 너무도 화가 나서 음식도 들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에게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교육하는 것으로도 모잘라 그것을 강요하고 그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요.
'만약 내가 그냥 집에만 있게 두었다면? 그랬다면 집에서 게임만 하더라도 살아는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저의 머리 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으이구 병X아..그냥 그만두지 그랬어! 힘들다고!! 말하지 그랬어!’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의 사진을 보며 수없이 속으로 외쳤습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이미 나에게 수십번, 수백번 힘들다고 못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 보다 저에게 더욱 의지했는데 제가 그 친구의 목소리를 철저히 무시했던 것이었습니다. 힘들다고 나오려는 사람을 발로 차 밀어 넣은 것이죠.
스티밋을 통해 목소리를 내다.
그 사건 이후로 누군가에게 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냥 행사 MC나 이런 것은 껍데기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가능했지만, 저의 가치관을 전달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심지어 다수가 있을 때 의견을 내는 것 조차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조금씩 저의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완전히 저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조금씩 용기를 냈고 스티밋을 통해 저의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공부’라는 컨텐츠로 저처럼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분들, 살아가기 힘든 분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분들에게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분들이 뉴비인 저의 목소리에 반응을 주셨고, 몇몇 분들은 힘을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도 남기셨습니다. 포스팅을 하는 것이 신났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아지며 조금씩 저 자신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보면 ‘마음 공부’라는 컨텐츠는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smartcome아 괜찮아. 너 자신을 찾아. 괜찮아 정말.”
지금은 어떻냐고요?
제 포스팅 보시면 알겠지만 목소리 정말 잘 내고 있죠. 사실 더 길게 쓰고 싶은데 줄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기쁠 때, 슬플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누군가에게 나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곳. 저에게 스티밋은 ’저의 꿈을 이루게 해준 공간’입니다. 스티밋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그때의 상처에 연연해서 오늘처럼 강연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여러분들에게 스티밋은 어떤 존재인가요? 혹시라도 저처럼 남들에게 목소리 내는 것이 두려우신 분이 계신가요? 다른 포스팅도 좋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포스팅 해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