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1000팔로워]스티밋에 감사한점 7가지를 통해 아무 이벤트가 없음에도1000팔로워 축하하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의 어머니는 2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계신다. 둘은 남매이다. 실명을 쓸수 없으니 수지(가명)와 지훈(가명)이라고 하겠다.사진은 어머니가 수지 아기때 안아보는 사진이다.
지훈이는 어른 스러울때도 있지만 고집이 굉장히 쎄다. 특히 특정 물건에 엄청 집착하는데 일종의 집착증? 같은게 있다고 한다. 가끔 나도 물건을 빼앗긴적이있다. 무서운 녀석이다.
수지는 굉장히 여우이다. 애기때는 너무 순해서 어머니가 머슴아 라고 불렀는데 점점 커가면서 여우가 되가는것 같다.좀더 크면 애교가 넘칠것 같다.
후원반대
나는 솔직히 처음에 아이들 후원을 반대했다. 아들은 빚을지고 학교를 다니는데 피한방울 안섞인 아이들을 후원하는데 돈을쓴다니..솔직히 조금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물론 성인인 내가 부모님한테 학비를 바란다는게 욕심이지만 야간택배로 돈을 벌던 그당시의 나는 섭섭했다.
마음이 많이 비좁았던 시기같다.
내 마음대로 살아보자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이 상한걸 눈치채신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너는 기댈 가족이 있자나. 밥도 사먹을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자나. 얘네는 가족도 없고, 보호자가 없으면 밥 먹을수도, 공부도 할 수 없어.'
너무도 뻔한 말.. 그냥 예상한 답안이었다.
그리고 다음말에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나도 너 처럼 남들이랑 다르게 내 맘대로 한번 살아보자.'
어머니는 62년생이시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녀는 자기 하고싶은것을 하면서 살지 못했다. 어릴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번돈을 모두 집에 가져다 주었다. 그녀가 휴게소에서 밤낮으로 일해 번돈이 외가집의 밭이되고 논이 되고 터가되었다고 한다. 당시 엄마의 동생이었던 이모는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며 공부해 공무원이 되었다. 엄마도 하고싶었지만 가족들을 위해 포기했다.
그런 그녀가 자기 마음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이제와서..? 가 아니라 왜 이제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첬다.
맞다 그녀는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이고 그럴만한 일을 해왔다. 자식들 다 성인이 되고 이제라도 살고싶은데로 사시겠다는데 내가 무슨 권리로 그것을 막겠는가. 그것도 좋은일을..
어릴적 어머니
외가집에가면 나는 꼭 외할머니랑 잔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다.6.25이야기, 이모, 삼촌,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것이 너무 좋다. 이미 수십번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둠속에서 할머니에게 듣는것은 더욱 좋다.
할머니의 단골 대사는 정해저있다. 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어릴때부터 밭일 하고오면 방에 애들소리가 들려, 그러면 니 엄마가 동네 거렁뱅이 꼬마들 다끌고와서 죽먹이고 있어'
착한 할머니는 투덜투덜 대면서도 반찬을 내주었다고 한다. 등짝을 후리고 못나가게 해도 밭일만 하고오면 그렇게 어린 애들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 어쩌면 어머니의 아이들 후원은 이때부터 예견되어 있던것이 아닌가 싶다.
요양보호사
요즘 어머니는 주방에서 일하신다. 공장에 다니실때보다 더 스트레스도 안받고 좋다고 하신다. 나에게도 좋은점이 하나 있다. 가끔 맛있는 주방음식들을 싸오신다.
그런 어머니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시겠다고 한다.
아마도 그동안 해오신 기부, 봉사의 연장선이 아닐까싶은데 아니시란다. 나이먹어서도 일하기에는 이만한게 없으시단다. 그리고 나중에 당신도 늙어서 누군가에게 신세를 저야할지도 모르기에 미리 덕을 쌓는것이라고 하신다.
진짜 행복전도사는 어머니
포스팅할때마다 행복전도사라고 소개하지만 진짜 행복전도사는 어머니 같다. 어머니로 인해 나도 아이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후원도, 요양보호사 도전도, 행복도 모두 양껏 응원해드리고싶다.
그녀의 인생에 풀보팅 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