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낙태녀의 이야기
드디어 남자친구와 잤다. 뭐가 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살을 맞대고 있는 게 좋다. 설렌다. 오빠는 나를 사랑할까? 이거 사랑이지? 나는 벗은 내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내 성기는 나에게 너무나 낯설어. 세상은 예쁘고 늘씬한 사람들이 온통 돌아다니고, 여자는 으레 그래야 한다. 벗은 내 몸은 자꾸 작아지는데, 섹스 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벗고 활보한다. 신기하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다.
언젠가 성교육 시간에 콘돔을 써야 한다고 배웠는데 막상 실전에 오니 덩그러니 놓인 포장지와 얼빠진 나만 있다. 나는 오빠의 성기도 잘 못 보겠어 불을 끄는걸. 그는 몇 번 시도해보다가 그 느낌이 너무 싫다고 한다. 좀 더 나와 가까이 닿고 싶다고, 자기를 못 믿겠냐고 성을 낸다. 실수 한 적 없다고 애원한다. 그래, 다 벗고 있는 순간 나는 늘 진다. 부끄러운 그 상태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를 믿는다. 내가 약을 먹는다.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괜찮다. 여드름이 자꾸 난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근데 내 두통에도 오빠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괜찮아? 묻고는 여전히 콘돔을 멀리한다.
섹스 후 가끔 있던 염증이 잦아지고 없던 불안이 생겨났다. 인터넷이나 이런걸 보면 사람들이 장난으로 보징어래. 나는 거길 제대로 본적도 없으니 냄새도 알 턱이 없다. 만약 그러면 어떨지 수치스럽고 공포스럽다. 오빠도 그렇게 느끼면 어떡해. 강박적으로 박박 씻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한다. 여전히 산부인과에 갈 때면 좀 그렇다. 일부러 한 건물에 여러 병원이 있는 곳을 고른다. 기다린다. 의사의 코앞에 다리를 벌리고 눕는 일은 한평생 적응하지 못하겠지. 헐벗은 내 다리 사이로 바람이 분다. 바람이 질을 뚫고, 자궁을 뚫고, 가슴으로 들어온다. 헛헛하고 춥다. 그 바람은 지갑으로도 들어온다. 검사 한번에 3만원 6만원, 내겐 큰 돈이 훅훅 사라진다. 이 돈이면 며칠 점심값인데. 엄마한테 말도 못한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산부인과를 다니는 딸, 엄마 아빠는 가슴이 찢어질 테니까. 문득 궁금하다. 오빠는 왜 비뇨기과를 정기적으로 안다닐까. 그러고 보니 남자는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괜한 생각을 했다. 산부인과 약을 먹으면 속이 아프다.
생리는 나를 미치게 한다. 바쁜 삶 속 지친 내 몸은 예정일이 제멋대로야. 원래도 딱히 정확하지 않다. 피가 비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아무도 생리가 언제 시작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왜 세상이 그렇게 발전했는데 이건 기다리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거지. 불안해. 초조해. 무서워. 엄마, 엄마. 할 일들이 잠깐 잦아질 때면 어김없이 까만 두려움이 찾아온다.
안하면 어떡하지. 지금 배 아픈 게, 불은 가슴이 임신이면 어떡하지. 미친 듯이 임신 징후를 검색한다. 네이버에는 나 같은 사람이 천지다. 망할, 생리랑 증상이 똑같잖아. 구분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아르바이트는, 학교는, 친구들은, 엄마 아빠는, 앞으로의 내 인생은, 그리고 오빠는 어떡하지. 날 버리면 어떡하지. 아니 그냥 어느 날부터 내 몸이 한 개가 아니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내 삶도 너무 벅차. 친구와 오빠에게 문자를 보낸다. 무서워, 나 생리가 너무 늦는 거 같아. 답장이 온다. 곧 할 거야, 오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날 사랑한다는 너는 어떻게 이 기분을 하나도 모를 수가 있어? 조금 날카롭자 오빠는 눈치를 보더니 웃으며 그럼 내가 책임지지 뭐, 걱정마, 괜찮을거야, 라고 한다. 뒤늦게 친구에게 답이 온다. 야 무서워, 어떡해? 병원같이 가줘? 왈칵, 눈물이 난다.
그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생리 할 일 없을 텐데. 임신할 일도 없을 텐데. 그래서 몸에 어떤 일도 없을 텐데. 가슴이 이렇게 당기고 배가 아프지도 않을 텐데. 갑자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면 두 사람이 되어 있지도 않을 텐데. 그런 걸 상상해본 적도 없을 텐데. 그 몸으로 살 일이 없으니 나와 삶도 다를 텐데. 도망가면 그만인데. 혹은 지금까지처럼 옆에 있는 걸로 그만인데 도대체 무엇을 책임진다는 거지. 애를 낳자는 건가, 낳지 않게 책임진다는 건가. 둘 중 무어라도 다 내게 일어나는 변화인데. 왜 웃지. 어떻게, 웃지. 멍하게 불안을 되짚는 시간 중 다리사이가 불시에 뜨끈해진다. 나는 옷을 버렸음에도 살면서 최고로 안도한다.
거봐, 괜찮잖아. 뭘 그렇게 불안해해. 난 실수 안한다니까. 그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웃는다. 우리는 사이가 좋다. 그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괜찮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해야 할 것이 너무너무 많아. 해온 게, 지켜온 게, 너무너무 많아.
그날. 그는 질내 사정을 했다. 생리 중이라 괜찮을 거라며. 제발 한번만을 외쳤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래, 오빠 말이 다 맞았지 않았던가. 나의 예민함이었잖아.
몇 주 후 본능이 약국을 찾았다. 차라리 환멸이 나을 듯한 무관심한 눈으로 약사가 테스터기를 건넸다. 무려 세 개를 사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동네의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쭈그려 앉았다. 포장지를 까는 손이 덜덜덜 떨렸다. 괜찮아,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았다. 아무도 없었다. 오줌을 눴다. 재판 장소는 지린내가 나는 화장실이었다. 나는 무려 세 번의 사형선고를 받았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머저리인 나는 그날의 행복에 취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믿었다. 내가 먹은 약을 믿었다. 미디어에서 일어나는 일들, 살해, 생명을 버리는 몹쓸 사람들, 이기적으로 태아를 찢는 사람들, 지옥에 불구덩이에 떨어질 년들, 불법. 그런 건 너무 끔찍한 일이잖아. 그래서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은 다 똥처럼 살잖아. 그건 평범한 내 삶과 너무 먼 일로 보여서 그러니 나는 괜찮을 거라 믿었다.
그 때의 나를 죽일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그때로 돌아가 나를 죽일 거야. 죽이고 말거야. 난 왜 잠깐 설득당한거지. 그전까지 늘 괴로워하던 것도 난데, 불안하던 것도 난데, 왜 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나야. 잠깐, 나는 왜 나를 또 경멸하고 있지. 앞으로 경멸받을 것도 난데 왜 내가 경멸하는 사람도 나야? 나는 이제 살인자야? 아니면 미혼모야? 둘 중 무어라도 이제 내 삶은 괜찮은 거야?. 아니 나 내 삶을 걱정해도 괜찮은 거야? 몸을 함부로 놀린 주제에 그래도 되는거야? 난 이제 끔찍한 사람인거 아냐? 잠깐, 오빠, 오빠는 지금 어딨지. 괜찮을 거라며. 곧 할 거라며. 책임질 거라며.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며. 날 사랑한다며. 잠깐만.
그는 한참 있다가 무거운 표정으로 내게 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아무말도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날카로웠다. 깨져버려서 전처럼 오빠를 무디게 대할 수 없었다. 나는 다 찔러버리고 싶었다. 나는 부서졌는데 너는 왜 멀쩡한거야. 그는 내 깨진 면면에 힘들어했고, 때로는 말은 못했지만 불쾌해했다. 이 불행과 변화는 오로지 내 것이었다. 깨진 나조차도 다루지 못하면서 무슨 책임이야, 다시 붙여놔, 제발 다시 붙여줘. 이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일 수 없었다. 다른 생명은 이물감과 공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끔찍했다. 이전까지 왜 난 뭣도 모르고 모성애가 자연임을 동조해 온 걸까. 예전 교수님이 미국에서 논쟁이 된다며 배아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던 생명윤리 시간이 기억이 났다. 세포, 세포. 그래 그게 더 위로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익숙하게 100을 불렀다. 그는 어디서 돈을 구해왔다. 나도 돈을 구했다. 내년 꼭 가리라 마음먹었던 여행 경비. 그는 목이 타는지 계속해 물을 들이킨다. 수술 전까지 나는 물마저 마실 수 없다. 새카맣게 타버린 잿더미 인간이 수술대에 오른다. 흐릿하게 잠이 들었다.
교복을 입은 내가 활짝 웃고 있다. 가족이 그런 나를 흐뭇하게 쳐다본다. 나는 집안의 자랑이야.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좋은 남자가 옆에 온다. 남편과 예쁜 가정을 꾸려 예쁜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가 교복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 나는 미소를 띄고 아이를 바라본다. 천사 같은 아이가 중얼거린다. 응? 뭐라고? 되묻는다. 엄마는 살인자. 살인자! 남편이, 날 바라보는 가족이, 친구들이 나를 손가락질 한다. 이기적이고 더러운 년, 몹쓸 년, 생명을 찢어 죽인 년! 아니야, 아니야, 괜찮을 거랬어!! 나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테스트기를 보고 차마 지르지 못했던 비명을 지른다. 온 몸에서 지린내가 난다. 나는 보징어다. 나는 낙태녀다. 나는, 나는... 배가 활활 타는 아픔과 함께 깬다. 눈물이 범벅된 나에게 남자친구는 말없이 물을 가져다준다.
그와 나는 자연히 헤어졌다. 나는 보상받을 길이 없는 저 일을 잊지 못했고, 그는 마땅히 보상 줄 수 없는 저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나는 선택할 수 없었고 그는 선택했다. 놓아주었다. 수 년이 지나고서야 나는 수면아래서 꽤 많은 이들이 이런 일을 겪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범법자였고, 아픈 이들이었고, 이미 삶이 변해버린 이들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 아무도 만날 수 없던 날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는 올해 결혼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고통은 잊혀지거나 외면받기 얼마나 쉬운가. 수면 아래 있는 이들은 왜 모두 익사하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나 많은 여성이 연애 중 겪는 이야기 입니다. 마음이 아프네요..
낙태법에 대한 생각도 들지만 어떤 다른 대책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