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닐때였습니다.
(특정학교의 이름을 거론하기가...그냥 간단히 부자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였습니다. )
1980년 초반에 학교내에 엘레베이터와 급식실 그리고 영어시간을 위한 랩실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등록금도 엄청나게 비쌌지만 최고의 시설에서 공부하기를 원하셨던 당시의 부모님 덕분에 저는 해당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저학년 일 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친구들과 놀기에 바빠 세상을 살아가며 배우게 되는 것들에 관심이 없었던거죠.
그리고 고학년이 되어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쟤는 검은색 승용차로 기사아저씨가 데리러 오는구나' (나는 30분을 걸어 다니는데..)
'야~ 쟤네 아빠는 썬그라스를 끼고 학교에 오는구나' (텔레비젼에 나오는 사람들 처럼..)
당시 부모님은 시장에서 잡화상 가게를 운영하시며 저와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셨죠.
물론, 한국이 성장일로에 있었던지라 네식구 먹고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다가...다른 아이들과의 알수없는 무언가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지던 어느날 저를 좋아하는 같은반 여자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었습니다.
(제가 이래뵈도 반장이니까요)
반짝이는 검은색 자가용을 얻어타고 도착한 친구의 집에서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무려 삼층집.. 그리고 거실마루에 커다랗게 차려진 신기한 생일상과 생일파티용품들...친구들은 앞다투며 친구에게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ㅇㅇ야 생일 축하해~"
"내 선물도 받아~"
주인공인 친구가 하나하나 선물 포장지를 뜯었습니다.
그리고 뜯겨나간 포장지를 보며 제 마음도 뜯겨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선물들이 하나같이 커다랗고 비싸보이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가 준비한 선물은 거울달린 작은빗이었죠.
그날 친구에게 깜빡하고 선물을 가져오지 못했노라고 내일 주겠다고 말하고
집에 일이 생겨 가봐야겠다고 미안하다며 길도 모르면서 그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상대적빈곤으로 인해 최초의 충격을 받은 날 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절대로 친구들에게 내 생일이 언제니 우리집에 오라는 초대장 같은 것은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것이 어린마음에 쪽팔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은 모두 니케를 신고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때 알파벳을 배운지라 저도 떠듬떠듬 영어를 읽을 줄 알았습니다
N.I.K.E 니케
그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니케를 꼭 신어야겠다고'
그날부터 엄마에게 졸랐습니다. 제게도 니케를 하사해 주시라고.
그런데 제 손에 돌아온 신발은 '까발로'였었습니다.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였었는지
다음날 니케는 아니지만 까발로를 신고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새신발을 신은 저를 발견한 친구는
"어~ 너 새신발 샀네"
"이거 무슨 상표야? 처음보는건데"
"아~ 이거 니케샀는데 같이 온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릴)
인터넷이 없던 세상에서 제 말은 잠깐 통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아이들은 알았죠. 제게는 니케가 없다는 사실을..
그날 알았습니다. 제가 구하고자 했던 신발은 사실 '니케'가 아닌 '나이키'였다는 사실을.
모두들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은 다를수밖에 없겠지만
너무나 다른 세상의 사람들과 같이 보냈던 초등학교의 기억은 제게는 마냥 좋기만 하진 않습니다.
빈.부.격.차
이 네 글자가 주는 의미를 저만의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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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저는 초등학교 동창회에 반장답게 당당하게 참석하고 있습니다.
꽤 많은 친구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으로 지금도 내놓라하는 자리에 있기도 하지만 또나름 평범하게 살아가는 친구들과 함께
저만의 방식으로 그들과 같이합니다.
지금도 나이키를 니케라고 불렀던 제 에피소드로 친구들은 저를 놀려대고 있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가치는 니케와 같은 외형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시간이 지난 어느날 그들의 입에서
"네가 스팀잇의 소철이었어?"라는 말을 듣게되는 날이 올거라 생각합니다.
스팀잇은 나를 표현하는 곳 이지만
제겐 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곳 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