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온지 어언 5년차가 지나고 그동안 무수히 많이 든던 질문인 "제주도에서 뭐하고 살아?", "제주도에서 뭐먹고 살래?" 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귤 팔아서 먹고 살아요!"
제주도로 이사간다고 하면 대부분 귤농사를 떠올리곤 하는데, 귤농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선 제주도의 높은 땅값을 감당하면서 농사지을 땅을 구해야 하고, 한 평생 농사를 지어보지 못한 사람이 갑자지 농사를 짓는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제주도로 이사왔을 때는 원격근무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기업 블로그에 브랜드 웹툰을 연재중이었다. 그래서 딱히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었기에 제주도 귤을 팔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는 아는 농장도 없었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제주도에 산지도 5년이 지나가고, 주변에 귤농사 짓는 분들도 많이 알게되었고, 아르바이트로 귤농사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던 차에 작년 한해 상인들이 귤값을 제대로 안쳐줘서 농부분이 직접 판매하려다가 다 팔지 못해서 창고에서 모두 썩히고 귤을 다 버렸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저희가 한번 판매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귤 파는 삶이 시작되었다.
사업자를 먼저 낼까? 판매를 먼저 할까?
귤을 팔기로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고민은 사업자를 내고 시작해야 하나? 쇼핑몰도 만들어야 하나? 등등 이었다. 뭔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필요한 부수적인 서류들과 사이트가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아직 한번도 귤을 팔아본 적도 없고, 사실 하나도 안 팔릴 수도 있으니 우선 페이스북에 귤을 판매한다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몇몇 지인분들이 구매의사를 말씀해주셨고, 처음 귤 판매를 시작한 일주일 동안 7명 정도가 귤을 구매해주셨다. '역시 온라인으로 장사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사업자먼저 안내길 잘했네.' 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잘 판매해야지 농장에도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에 계속 판매글을 썼다. 처음에는 페이스북 메세지로 주문을 받고 주소를 물어보고 일일히 수동으로 일을 하다가 구글 설문지를 활용해서 주문서 양식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일일히 상품설명을 하고 주소를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한달 정도가 지나자 처음 주문해주셨던 지인과 가족들이 홍보대사를 자처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우리 귤을 소개해주시기 시작했다. 전화와 문자로도 귤 주문이 오기 시작했고, 카드결제를 하고 싶다는 분과 현금영수증 발행을 요청하는 손님도 생겼다. 그 시점에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했다. "어썸제주" 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내고, 로고도 만들었다. 그리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했다. 이렇게 간단히 한문장으로 쓰니까 굉장히 쉬워보이지만 사실 통신판매업 신고도 해야 하고, 준비해야할 서류들이 많다. 번거롭긴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
가격을 얼마로 해야 할까?
두번째로 든 고민은 귤을 얼마에 팔아야 할까? 였다. 귤 한박스에 대한 가격은 암묵적으로 정해진 가격들이 있었고 소비자들은 그 가격보다 비싸면 비싸다고 느꼈다. 더 싸게 팔아야 할까? 더 비싸게 팔아야 할까? 대형 쇼핑몰에서는 말도안되게 저렴한 가격으로도 판매되고 있었고, 또 어떤 브랜드 쇼핑몰들은 엄청 비싸게 판매하고 있는데도 항상 완판을 하고 있었다.
싸게 많이 파는 것보다 가격이 어느정도 있어도 우리를 믿고 주문해주시는 소수의 고객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일반적인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판매량이 많지 않았고, 다양한 상품구성과 가격을 실험하면서 일반 상품보다는 약간 비싸고, 브랜드 상품보다는 약간 저렴한 가격 접점을 찾았다.
가격을 정할 때는 무조건 싸게 하면 많이 판매하고도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배송 과정 중에 파손되는 비용도 생각해야 하고, 고객의 단순변심으로 인한 환불걸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그러한 비용까지 계산한 이익률을 적용해야 한다.
매출은 순수익이 아니다.
어느정도 판매가 안정화 되었을 때, 매출금액을 보면서 '우와, 이제 우리 부자되었다.' 라는 착각을 했었다. 매출은 순수익이 아니다. 상품 판매가격 그대로 매출이 잡히지만 실제로 내가 번 돈은 아니었다. 농장에 귤값을 보낸 이후에 쇼핑몰 수수료와 카드사 수수료를 제하고 남은 돈이 진짜 내가 번 순수익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개인자영업자분들이 왜 카드사 수수료, 배달앱 수수료를 가지고 힘들어하는지 몰랐었는데. 내가 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해보니 몇 백원, 천원 떼어가는 수수료가 정말 컸다. 가끔은 할인쿠폰을 사용하는 고객의 경우 상품을 판매하고도 수수료를 빼고 나니 오히려 손해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스타트업에서 자신의 스타트업 매출이 엄청나게 많다고 말하고 J커브를 그렸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눈가리고 아웅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출 J 커브 그래프는 그 이전에 판매량이 적으면 나중에 조금만 많이 판매가 되어도 그릴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계속 J 커브를 그리면 성장하고 있느냐? 이다. 그리고 단순히 매출만 많아진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순수익이 남고 있느냐도 중요하다.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지?
초반 한달간은 지인들의 판매로 어느정도 판매가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부터는 지인이 아닌 고객들이 구매가 이어져야 계속해서 장사를 할 수 있다. 상품이 엄청 좋아서 입소문이 나면 좋겠지만 엄청나게 특별한 상품이 아니고서야 첫번째 구매고객이 두번째 구매고객까지 소개가 이어지고 그 이후의 연결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이제 마케팅을 해야할 때가 되었다.
먼저 우리 제품(우리 귤)의 차별점을 생각해보았다. 우리 귤이 다른 농장의 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리 귤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못난이 귤이고 껍질이 두꺼운 대신 싱싱하고 새콤한 맛이 강했다.
그럼 우리 귤을 좋아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 고객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고객을 발견하고 연결될 수 있을까? 건강에 좋은 귤이고 신맛이 강하니 임산부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귤", "임산부귤", "임신선물" 등의 태그를 달고 임산부 선물로 좋은 귤이라는 장문의 글을 작성했다. 그 글을 읽고 임신한 아내에게 귤을 사주려고 검색하고 주문한다는 남편분의 문의가 왔다!
감동고객의 장문의 리뷰, 그리고 주문 폭주!
그런데 알고 봤더니 임산부 남편인줄 알았던 그 고객분이 사실은 여자분이셨고 인터넷에서 임산부가 시킬만큼 새콤하고 싱싱한 귤을 찾고 계신 고객이었던 것이다. 때마침 어썸제주의 귤을 발견하게 되었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모습과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귤을 만나게 되었다는 기쁨에 정말 장문의 감동 리뷰를 남겨주셨다.
그리고 그 리뷰 덕분에 여성고객분들의 주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몇백건의 주문이 들어오고 불과 이틀사이에 천건이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 정말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지만 밤을 새서 주문서를 정리하고, 배송준비를 했다.
하지만 날씨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기쁜 마음에 잠이 들었지만 그 다음날 제주도에는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설마...설마... 하는 마음에 귤농가와 통화를 했고, 대부분의 귤들이 눈을 맞고 얼어서 냉해를 입어 도저히 고객분들에게 보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속상한 상황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몇백명이 넘는 고객분들께 일일히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 안내를 드렸다. 워낙 많은 주문이 몰렸었기 때문에 한분 한분 안내 연락을 드리는대만 하루 온종일이 걸렸다.
일장춘몽을 경험했다. 그 이후로 성공이나 실패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진상고객은 없다.
처음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할 때, 많이 걱정했던 건 진상고객을 만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었다. 요즘 인터넷도 워낙 많이 발전했고 이곳저곳에서 갑질, 진상 사건들이 연일 뉴스에 나오는 상황에서 혹시 나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매번 주문 고객분에게 전화가 오면 가슴이 두근두근 했었다. 어떤 손님은 귤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도 하셨었고, 또 어떤 손님은 귤이 너무 많이 터져서 왔다고 불만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손님들이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셔서 나도 항상 솔직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 있었고 귤이 많이 터진 경우에는 새로운 귤을 한박스 더 보내드렸었다. 그럼 사실 그 주문건에 대해서는 한박스 손해를 보는 것이지만 그렇게 피드백을 받은 손님께서는 그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주문을 해주셨다. 마지막에 계산을 해보면 총합에서는 더 많이 판매된 것이기 때문에 이익이었다.
한번의 판매에서 세세하게 이익을 남기려고 하지 말고, 전체 사업에서 이익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고객분께서는 귤 하나가 터져서 왔다면서 터진 귤에 웃는 표정을 그려주시고 이런 리뷰를 남겨주셨다.
"귤 하나가 터져서 왔는데, 집에서 먹을거라 상관없어요."
센스가 넘치는 사진과 동시에 구체적인 피드백도 줄 수 있는 리뷰여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판매하는 사람도 구매하는 고객도 이렇게 서로 유머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존의 택배기사분들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바뀌어서 택배기사님들도 상품을 더 안전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배송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제 귤, 천혜향, 한라봉 모든 귤 판매가 끝이 났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는 것도 "귤을 사세요!" 홍보하는 글이 아니라 작년 겨울 처음 귤 판매를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차분히 기록하는 것이다. 올해는 더 성장하길 기대하며 어떤 점을 더 배워야할지 무슨 준비를 할지 생각해본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귤토큰 발행!
사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어떻게 하면 차별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데, 귤이라는 상품은 이제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상품을 통한 차별화가 아니라 유통 거래결제수단에서 차별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팀잇이라는 암호화폐 기반 커뮤니티에서 암호화폐로 귤을 판매했다. 스팀달러, 비트코인 등등 다양한 암호화폐로 귤을 팔았다. 사람들은 암호화폐로 실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해했고 암호화폐로 귤을 판매하는 농장은 많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차별점이 될 수 있었다.
암호화폐로 귤을 판매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암호화폐 1개를 가지고 있으면 귤 1개와 교환할 수 있는 귤토큰을 직접 발행했다!
귤은 겨울철에만 판매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물론 여름에 판매하는 하우스감귤이 있지만) 귤토큰은 겨울철이 되기 전에 먼저 귤을 선주문하고 예약금을 걸어놓는 시스템이다. 귤이 없을때에도 어썸제주는 귤토큰을 판매할 수가 있다. 그럼 실제로 귤이 수확되는 겨울철이 되면 마케팅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고객을 확보해둔 셈이 되는 것이다.
귤토큰의 구매자분들은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하듯이 리워드로 귤을 받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고, 중간에 귤토큰을 마켓에서 사고 팔 수도 있다. 만약 겨울에 귤 가격이 귤토큰 구매시점보다 많이 오르게 되면 귤토큰으로 미리 구매한 것이 이익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 될지 계속 궁리하고 있다. 귤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담은 전자책을 만들어볼 아이디어도 떠올라서 어떻게 실행하면 좋을지 계획중이다. 앞으로도 누군가 내게 "제주도에서 뭐하고 계세요?" 묻는 다면 자신있게 답하겠다.
"제주도에서 귤 팔아요."
p.s. 귤토큰은 스팀엔진 https://steem-engine.com 마켓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