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하는 피라미 쏭블리입니다. :)
3월, 새학기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학부모 상담, 공개수업, 학기초 적응활동 등등. 그 중에서도 아이들의 장래희망 조사는 빼놓을 수 없죠. 며칠 전 저희 반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장래희망 그리기를 했습니다. 2008년생 아이들의 꿈을 보고 있자니 제가 11살이었을 때 그렸던 장래희망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우리 반 친구들의 꿈
초등학교 시절, 저희 반에서 가장 많았던 희망 직업은 선생님, 간호사, 과학자 였습니다. 여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칠판 앞에 서 있거나 주사기를 들고 있었고, 남학생들은 비커와 삼각 플라스크를 들거나 청진기를 매고 있었죠. 공부를 잘한다 싶은 친구들은 변호사나 판사 등의 법조인이 되겠다고 하기도 하고, 포부수준이 높았던 몇 명은 외교관이나 대통령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꿈은 만화방 주인, 수퍼 주인, 문방구 주인..... 어릴 때부터 넘치던 물욕.. -_-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옆에 잔뜩 쌓아두고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단순..)
여전히 앞서 언급되었던 직업들은 모범생이라 불리는 아이들의 단골 장래희망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그 모양새가 달라졌습니다.
변화된 성고정관념: 여성 과학자 & 남자 요리사
저희 반 학생 중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 두 명은 모두 여학생입니다. 이제는 비커와 메스 실린더를 잡고 싶어하는 여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활동은 남성들의 것이라는 모더니즘적 고정관념이 조금씩 무너지면서 여학생들의 꿈도 더 넓고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그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각종 쿡방이 유행했던 시기에는 요리사를 꿈으로 적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냉장고를 부탁해 라는 프로그램에서 남자 요리사들이 요리 경연을 펼치는 모습을 보고 요리사를 꿈꾸는 남학생들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여전히 과학자가 되고픈 여자아이들은 연구실 속 모습만 그려낼 뿐, 렌치나 드라이버를 들고 엔지니어가 되려고 하는 건 모두 남학생들 입니다. 반면에 발령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의 세월동안 한 번도 간호사가 되겠다는 남학생을 본 적은 없습니다. 성별에 따른 진로 장벽은 여전히 두툼하게 존재합니다.
꿈도 유행을 따라간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보통 그 시대에 가장 선호되고 화제가 되는 직업이 되기 마련입니다. 1990년 대에는 ‘사’자가 들어가는 의사 변호사 판사 등이 그러했습니다. 너도 나도 가난한 시기에 공부 열심히 해서 개천의 용이 되어 가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직업들이었죠.
오늘 우연히 본
님의 글을 보니 공무원과 공기업 취업을 꿈꾸는 아이들도 늘어난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취업난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알겠냐마는 어른들의 불안과 걱정이 어린 아이들의 꿈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겠죠.
1990년대의 획일적인 분위기와 달리 요즘의 장래희망 트렌드는 굉장히 다양하고, 유행에 맞추어 빠르게 변화합니다. 앞서 말한 쿡방 열풍도 요리사라는 장래희망 트렌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에는 국가적 이벤트였던 평창올림픽으로 인해 갑자기 쇼트트랙 선수나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꿈이 바뀐 아이들도 있구요.
무게 중심은 상당히 위태로워 보이지만 태극기만큼은 잊지 않고 그렸으니 참 대견합니다.
슈퍼스타 K 나 K 팝스타가 오디션 열풍을 일으켰을 때부터 연예인을 장래희망으로 택하는 아이들도 많아졌습니다. 프로듀스 101과 믹스나인 등 그 뒤를 잇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겨나면서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배우나 가수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 장래희망에 연예인을 적어내는 친구는 굉장히 드물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을 아티스트 보다는 딴따라로 보는 시각이 컸으니까요. 바른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공부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꿈을 꾸는 게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직업도 시대에 따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입니다.
새로운 직업의 등장
새로운 유행과 기술은 전에 없던 직업을 만들어냈고, 아이들은 제가 꿈꾸지 못했던 꿈을 마음에 품게 됐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튜브 크리에이터 입니다.
아이들은 더이상 TV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핸드폰과 컴퓨터, 태블릿 PC 등 ‘스크린’ 과 ’인터넷’ 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곳은 최고의 오락공간이 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도티, 악어, 양띵, 잠뜰 등의 유투버들의 방송을 매일같이 봅니다.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이 주된 소재죠. (그나마 이 정도는 다행이고, 신XX이나 철X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를 가지고 방송하는 유투버들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를 제재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깊이 우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패러다임의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 때의 아이들은 무엇을 꿈꾸게 될까요. 지금 인기를 끄는 직업들은 사장되고, 현존하지 않는 직업들이 새로운 인기 직종으로 떠오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장래희망의 결정 요인 = 경험
앞서 시대가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호사를 꿈꾸는 남학생들을 찾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들이 남자 간호사를 접한 경험이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더불어 미디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라도 남자 간호사라는 직업을 의미있게 경험하지 못한 것이죠.
결국 아이들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신들이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접하게 되는 직업을 내재화하고 선호하게 됩니다. 매일 보는 선생님, 미디어에서 멋지게 비춰지는 연예인, 자신에게 즐거움을 선물하는 유투버들이 그 예입니다.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경험시킬 것인가가 아이들에게 어떤 꿈을 꾸게 할 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진로 경험과 직업에 대한 이미지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