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출장 온지 5일째. 정신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그런데 밤만 되면 몰려오는 공허함. 이게 당최 무슨 현상인가.
솔직히 이번에 출장 오게 된 프로젝트는 나에게 선택권이 있었다. 참가를 안 해도 되는 프로젝트였지만 내가 선택해서 오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에게 차였고 마음에 안 드는 남자가 자꾸 들이대는 것도 싫어서 일본을 떠나보고 싶었다. 다른 곳에 있으면 뭔가 새로운 마음이 들 것 같아서. (새로운 만남도 기대해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왠걸 일 로또를 맞아버렸다.
몸이 많이 지쳐서 침대에 쓰러져서 잤으면 좋겠는데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올 때는 유튜브의 무료 별자리 타로점술사들이 하는 말을 자장가처럼 들으면 잘 수 있지. 아 근데 진짜 같은 별자리인데 왜 이리 하는 말들이 다 틀리냐고요. 전 남친이 돌아온다는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사랑이 나타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둘 다 아닌거 같아요...그냥 일만 하다 이번달 지나갈거 같은데요...) 마음이 심란해져서 더 잠이 안 오게 되었다.
오늘은 그래도 일이 일찍 마무리되어 베이징덕 먹방을 한 후에 호텔에 와서 프로젝트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려고 회사 컴퓨터에 로그인했는데 어라 한국인 매니저 오빠가 온라인이었다. 나에게 마치 메두사와 같이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놀리는 오빠다. 나를 항상 약올리는 오빠지만 왠지 반가웠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항상 그러는 것처럼 메신저에서 투닥투닥 대화를 나누다가 나중엔 카톡으로도 대화를 나눴다. 이성적인 관계는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익숙함이 따뜻함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일까?
솔직히 커리어를 위해서 홍콩오피스에 옮겨서 일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너무 외롭게 느껴져서 한 때는 다시는 안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던 일본이 Home Sweet Home이 되어버린 것일까? 고층빌딩들이 빽빽한 홍콩의 풍경이 너무 낯설어서일까? 일본에 빨리 돌아가서 나한테 메두사라고 놀리는 매니저 오빠도 보고 싶고 나를 찬 연하남도 보고 싶다. 일주일이 긴 시간이 아닌데도 왜 이렇게 느끼는 걸까? 심지어 연하남의 얼굴이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가 이런 남자와 정말 사귀었다고? 마치 굉장히 옛날에 일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어서 보고싶기도 하지만 그냥 지나가버린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갑자기 있는 공간이 바뀌어버리면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 일본에 돌아가자마자 한국출장을 가게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내 마음이 또 어떻게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