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잃어버리는 것’ 이 두려워
먼저 ‘잊어버리는’ 겁쟁이
그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냉정히 뒤돌아버리는
거짓말쟁이
아주 오랜만에 뉴욕에서의 사진을 들춰보았다.
하드디스크가 망가지면 사진들이 다 날아갈 것이기에
온라인 어딘가에 업로드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때도 참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구나.
도쿄에서의 시간도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떠남과 동시에 멀리하고
새로운 여행길에 나서게 되겠지.
페루에 가고 싶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싶다.
다이빙 자격증을 따서
바닷속도 들여다 보고 싶다.
하지만 우선 한국에 간다 .
한국에 가면 냉면을 먹고 싶다.
양념돼지갈비와 짜장면도 맛있겠다.
일년이 넘게 내버려둔 머리도 가볍게 정돈하고 싶다.
왠지 걱정되지만 건강검진도 받아야겠다.
아침에 혼자 걷고 돌아와선
엄마와 산책을 한 후 문제 몇가지를 내어 드리고
물리치료를 다녀와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엄마와 수영을 해야지.
수영을 다녀와서는
고민과 정성을 들여 저녁식사를 차리고
개인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오랜만에 피아노를 칠 생각이다.
Turkish March 를 완주하고 싶다.
밤에는 역시 티비나 영화를 보며 기분전환을 해야지.
일본어와 영어는 잠시 접어두고
프랑스어에 집중하고 싶고,
프랑스 비자와 남미여행에 관한 것도
여름이 가기 전에 잘 알아봐야겠다.
아마도 가을 몇 개월정도 일할 시간이 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600만원을 모을 수 있을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일을 구하면 좋으련만.
혜언니와 조와 내 친구들을 만날 것이고
아마 호와 원이도 만나게 될 것이다.
홍과 영이도 보게될테고
라, 현이, 경이등도 보게 되겠지.
쯔케멘이 가장 먹고 싶어질 거다.
맥도날드의 새우버거와
라이후와 마루에츠의 연어회와 초밥도
세븐일레븐의 달걀 오니기리도.
깔끔하고 정확한 대중교통과
늘 최선을 다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과
깨끗이 정돈된 거리 생각이 나겠지.
참 이뻤던 꽃과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길고양이들도.
떠나기 전에 좋은 곳에서 스시, 이탈리안,
모던한 일식 등을 맛보고 싶다.
어디가 좋으려나.
2014년 6월 9일
도입부분 보고 노래 가사인 줄. 4년 전 네이버 블로그에 써놓은 것이다. 블로그에 올려둔 사진이 있어 ‘저녁식사’ 로 검색했는데 찾는 사진은 나오지 않고 까맣게 잊고 있던 일기가 등장했다. 계속 검색을 하려다가 <한국에 가면> 이라는 제목 때문에 글을 열어 보았다. 언제 이런 일기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국에 가기 전에 썼겠지만서도.
일본에서의 삶이 퍽이나 좋았나 보다. 행복한데 그리워할 자신은 없다고 써놓은 것을 보면. 한국에 가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나 보다. 무얼 해야지, 무얼 해야지 조잘댄 것을 보면. 내가 쓴 게 맞긴 한가 보다. 먹고 싶은 것, 맛있었던 것, 먹어야할 것을 저리 적어 놓은 것을 보면.
냉면을 먹었고, 머리 기장을 잘랐고, 친구들을 만났다. 엄마와 수영을 했고, 건강검진을 받았고 400만원을 모았다. 페루도 다녀왔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었고, 프랑스에도 살았다. 저 중에 하지 못한 것은 Turkish March 완주와 스쿠버 다이빙. 여전히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그건 모르겠다.
이제서야 짐을 싸고 있다.
하루에도 기분은 수십 번씩 바뀐다.
도피를 해보려 스팀잇에 들어왔다가도
마음만 더 복잡해져서 나간다.
나는 이 곳에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2018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