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어떤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게 되는 기본적인 원인은 그 대상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음'에서 기인한다. 단지 분위기와 소리만으로 관객의 심연 깊숙한 곳의 공포까지 찌르는 동양의 공포영화가, 피가 솟구치는 좀비를 떼거지로 출현시키는 서양의 공포물보다 더 무서운 까닭이다. 공황장애가 두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공황장애는 파악 가능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심장이나 폐의 어느 부위가 상처가 약간 생겼다던지, 어딘가의 뼈의 골절이 생겨 깁스를 하는 것이라면 그게 백만배는 나을 것이다. 공황장애는 실체 없는 상대 앞에서 허공에 주먹을 날리지도 못한 채 언제나 매번 KO당하는 꼴인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렇듯 실체없는 것을 구체적인 형상으로 그려내는 훈련을 할 것이다. 공황장애에 하나의 인격을 부여하고 내가 그려내는 형상 속으로 매번 가둘 것이다. 때문에 '너'는 예고없이 나를 찾았다가 떠날수는 있을지언정 '너'는 무한하거나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똑똑히 각인시켜 줄 것이다. 너는 이렇게도 생길 수 있고 저렇게도 생길 수 있지만 언제나 '구체적 형상'으로서만 존재한다. 공황장애라고 꼭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될 필요는 없다. 차라리 나는 너를 가끔 귀엽게 그려버릴 것이다. 아무리 고통을 퍼부어준다고 해도, 그때마다 나는 너의 형상을 떠올리며 요롷게 저롷게 그릴 상상을 할 것이다.
오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다. 간단한 약 처방을 받고 한 알을 집어삼켰다.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내 안에 있던 녀석은 잠시 떠나있는 상태인데, 언제 또 엄습해올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참.. 지금 상태가 괜찮으니까 공황장애? 라는 단어가 백만광년 떨어진 개념처럼 느껴진다. 물론 주욱 이대로 우주가 가속 팽창하듯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성격이면 좋으련만. 오늘 밤이 어제와 같다면 꽤나 괴로울 것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불현듯 만난 사이비신도처럼, 잠시만 머물렀다 스쳐지나가길 바란다.
아티스트의 공황장애 극복기 2탄_ 형태 부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