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의 ‘먹고사니즘’
지난 편에 이어, 차마 묻지는 못하지만 다들 궁금하실 갤러리의 수익에 대해 잠깐 더 이야기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대부분의 “먹고 살기 힘든” 영세 갤러리를 비롯해서 아트페어나 미술가의 재벌이라 불리는 소수 경매회사 까지, 거의 모든 미술품 유통경로를 통해 미술품 중개인, 흔히 말해 화상들은 어떻게 수익을 낼까? 수수료는 모두 차이가 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내가 가장 잘 아는 갤러리를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다.
예를 들어 1000만원 짜리 그림이 있다고 하자. 물론, 상위 2.4%에 해당하는 갤러리에게 이정도 작품은 그리 비싼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1억 미만의 매출을 자랑(?)하는 영세 갤러리에게 한달에 1000만원 짜리 작품 한점, 혹은 100만원 짜리 작품 10점을 파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1만원 짜리 상품 1000개를 파는 것과는 좀 다른 관점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럼 이 1000만원 그림을 판매하면 갤러리가 가져가는 수익은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화랑들은 작가:화랑의 수익구조를 50:50으로 설정하고 있다. 본인의 경우는 그래도 작가를 걱정해 주는 화랑이라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60:40, 작가가 조금 더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요즘은 70:30까지 해 주는 화랑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소수 작가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앞에서는 관행이니 따르겠다며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만 뒤에서는 “갤러리들은 작가의 등을 쳐 먹고 산다”는 오해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말 작가의 등을 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달에 1000만원 작품을 판매하면 갤러리에 돌아오는 매출은 4~500만원이다.(한달 천만원 매출이면 일년이면 1억2천인데,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편의를 위해 사용한다.) 이것은 물론 순수익이 아니다. 본인이 보유한 건물에서 갤러리를 운영하지 않는 이상(아, 여기서 잠시 2.4% 상위 갤러리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그렇게 되기까지는 대부분 부동산 투기 혹은 투자라는 과정을 통해 자본을 마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세라는 피하지 못할 고난을 겪어야 한다. 갤러리라는 특성상 콜렉터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당연히 고급 상가거리나 문화예술 거리쪽에 자리를 잡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다면 그에 따라 월세가 올라가게 된다.
정확히 얼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500만원 이라고 치는 매출에 월세를 내고, 직원 월급을 주고, 콜렉터나 작가의 지인을 초대하는 오프닝 파티를 열고, 전시 할 때 마다 벽에 페인트도 칠하고, 작품이 팔리면 운송업체를 불러 운송도 하고, 가슴아프게 단골 손님이 구매를 하면 할인에 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대체 업주는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금수저가 운영하는 화랑이 아니라면, 대부분 투잡이라는 미명으로 다른 일을 하여 손실을 메꾼다. 아니면 국가나 문화재단에서 시행하는 전시지원사업에 손을 벌린다.(이 또한 경쟁률이 만만치 않아 당첨(?)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갤러리가 이런 현실인 것을 잘 아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가들 역시 투잡에 쓰리잡을 뛰어 재료비 대고 작업실 임대료 내고, 가족이 있을 경우 부양도 해야하고... 먹고 살기 더 힘들면 힘들었지 수월하지 않고 팍팍하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나오는 것을... 가슴 아프지만 이해한다.
이 자리를 빌어 갤러리의 수익률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작가 분이 계셨다면, 조금은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란다.(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음반에 대한 저작권료와 비교해 본다면 어떠실지...) 대단한 자본을 가지고 문화사업이나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 이상, 40~50%정도의 수익을 가져가지 않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지점을 말이다. 그나마 일년에 1억 미만의 매출을 올리는 화랑이 전체의 80%에 달한다는 것을 보면, 한달에 천만원 작품 판매조차 넘보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셨다면 충분히 이해하실 것으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작품의 판매가 어렵고 사람들이 그림을 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자리는 어디인가
‘환쟁이’라는 말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낮춰서 부르는 말로, 작가 자신이 자신을 ‘환쟁이’라고 하지 않는 이상, 타인이 작가에게 이런 칭호를 쓴다는 것은 자칫 실례를 범할 수 있는 말이다. ‘글쟁이’처럼 말이다.
조선시대 중기부터 사용된 말로, 재주나 기술을 가진 사람을 낮춰 부를 때 ‘쟁이’를 붙였다고 하는데, 이는 아무래도 학문을 했던 사대부나 양반들이 장인이나 기술자들을 낮춰 부르면서 생긴 풍습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양반들이 그림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툭하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으며, 즐겨 그린 그림의 장르 중에 문인화(흔히 보는 옛날 동양화 중 사군자나 수묵으로 그려진 작품들)라는 것이 있었다.
조선 최고의 문인화로 꼽히는, 우리가 잘 아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같은 경우, 그림 크기는 23x70cm 정도지만, 전체 원본에 붙여 써 있는 발문(작가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적는 글과 이후로 그림을 보거나 소장하게 된 다른 문인들이 자신의 감상평을 적은 글. 세한도의 경우 중국문인 16~17명과 한국의 문인 몇 명이 썼다고 한다)의 길이가 15m 가까이 된다고 하니, 그들의 관점에서 그림이란 문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과 재능의 옵션이고 글을 잘 모른 채 그림만 그리는 이들을 기술자로 간주하여 낮춰 부르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포스팅을 몇 개 해도 모자를 터라 더 실력있는 분이나 다음기회를 기약하기로 하겠다.)
이러한 풍습은 근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어 아이들이 공부는 안하고 그림을 그리면 부모가 “너 환쟁이 되려고 이러냐?” 하는 꾸중을 했다고 한다. 70년대 경제성장이 주 이슈였던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쟁을 치르고 난 마당에 먹고사는 것이 쉽지 않았던 환경에서 별다른 변화가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중섭, 박수근 등 전후에 활동했고 고인이 되어서야 유명 화가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절절한 가난이라는 짐을 벗어나지 못했다.(아니면 김환기나 백남준처럼 금수저로 부호의 자제이던가...) 전쟁통에 다들 목숨을 부지하기도 바쁜데, 감히 어떻게 미술품이라는 것을 구매할 생각을 했겠는가 말이다. 물론 당시에도 간송같은 부호들이 국가의 유물이 일본이나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재를 털어 구매하여 그나마 지켜냈지만(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당시에도 전업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험난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는 사회 전반의 구성원들의 ‘먹고사니즘’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술 작품을 사고파는 일은 일부 상위계층에게 있어 부의 축적이나 상징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일반 직장인들에게 인테리어 용 복제품이 아닌 미술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만한 것을 사 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미술 작품은 너무 비싸다?
내가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은, 미술 작품의 가격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천만원짜리 갈 것도 없다. 여기 백만원짜리 작품이 있다고 하자.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이 마음에 드는 기색이 있어 조심스레 구매를 권유하면 10에 9명은 손사레를 친다. “아유.. 너무 비싸네요. 제가 평범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걸 사겠어요.” 권유를 한 사람 입장에서는 쑥스럽기도 하고, 이곳에 차마 쓰지 못할 정도로 부정적 반응이 심한 경우 마치 사기라도 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갤러리라는 곳을 방문하는 분들 중 꽤 많은 경우(뭐 수치로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최소 30~40%는 되는 것 같다) 직장에서 과장급이라는 그녀의 팔에는 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가방이 들려 있고, 중소기업 대표라는 그의 손목에는 백만원짜리 명품시계가 채워져 있으며, 주말이면 백만원짜리 골프채 세트를 들고 필드로 향하고 끝나면 한번에 백만원을 지불하는 술자리에 참여하기도 한다.
결코 명품가방을 들거나, 골프를 치러 다니거나, 하룻밤에 백만원씩 하는 술값을 지출하는 분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출은 가치의 문제다. 그림이 정말 그들이 사지 못할 정도로 비싸서 못사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만한 지출을 감수하며 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결국 미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의 문제라고 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쓰고 싶은 곳에 쓴다. 10개월 할부로 세일하는 명품가방을 사서 들고 다니는 것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신진작가의 작품을 사서 벽에 걸어두는 것 보다 훨씬 가치 있게 쓰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술이 무슨 ‘개밥의 도토리’냐고 묻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바로 이런 대답을 해 드리고 싶다. 명품이라는 이름하에 수백 수천개 씩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내는 공산품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미술작품을 비교했을 때 당연히 명품을 사서 친구에게 자랑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사회, 이곳에서 미술은 개밥의 도토리일 수 밖에 없다.
얼마 전 님의 블로그에서, 우리 사회의 비주류 문화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나 소위 말해 B급 문화라고 불리는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대한민국의 사회에서 미술, 좀 더 크게 봐서 문화예술이라는 분야가 받는 평가가 과연 주류 대중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B급 대중문화가 받는 평가와 뭐 그리 크게 다를 것이 있냐는 것이다.
내 표현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사회의 미래를 반영한다는 교육계의 현실을 한번 둘러보자. 그런 의미에서 최근 몇 년 간 대학의 구조조정 과정을 관심있게 살펴보셨는지 묻고 싶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