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에 대한 성경 속 이야기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해져 있는 이야기이다. 이 바벨탑을 짓기 전에는, 모든 인간이 하나의 언어로서 소통을 하였다고 창세기 11장 첫머리에 등장을 한다. 그러다 야훼가 바벨탑을 높게 쌓아서 하늘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여, 사람들의 말을 서로 다르게 만들어버리면서 뿔뿔이 흩어져버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의 머리수준이 하느님이신 야훼의 머릿속을 감히 넘볼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야훼의 깊고도 깊은 속을 어떻게 알겠냐만은, 도대체 그 먼 옛날에 탑을 쌓아올려본들 얼마나 높게 쌓아올릴 수 있었길래, 감히 야훼께서 분노하시어 이를 경계하고 무너뜨리려 하셨을까?
정말 그렇지 않는가? 하느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겠다고 탑을 조금 높게 쌓았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는 " 감이 이 미천한 인간군상들이 나에게 도전을 해 오다니? " 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면서 발끈해 가지고는, 거의 인간의 머리수준에서는 도무지 이해도 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성내심으로 탑을 무너뜨렸다는 것이 아주 아리쏭한 것이다. 더구나 그냥 탑만 무너뜨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간들의 언어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버림으로써 뿔뿔히 흩어지게 만들어버리고 다시는 도시를 건설하고 탑을 쌓아올리지도 못하게 끔 만들었다고 하니, 이건 정말 죄 하나 지었다고 해서 죄값을 치르게 하는 것도 어느 정도이고 분수가 있는 것이지, 도무지 형평성과 합리성을 상상할 수도 없는 징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 물론 그 창세기 시대의 오묘한 하느님 역사의 시대를 살아보지를 않아서 어떻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알 수는 없는 것이니, 감히 어줍잖은 인간의 머리 수준으로 신성모독과 같은 성경속의 거룩하시고도 거룩하신 역사스토리를 폄훼하지는 못하리라. 그런데 오늘날 현대적 문명속에서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이신 야훼에게 한 번 분명하게 따져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오늘날의 도시들은 최소한 1천만명 이상이 모이는 곳이 수두록하고, 마천루라고 부르는 높이가 300미터 ~500미터 고층건물들이 등장하는 이 시대에는 과연 어떻게 인간들을 벌하실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더구나 지금은 우주왕복선을 이용해서, 하늘높이 올라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늘을 뜷고 올라가서 하느님께서 기거하신다고 전해져 내려오던 하늘나라 이상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또 뭐라고 응징을 하실 것인가?
물론, 이 바벨탑 이야기는 성경속의 신화적인 이야기이고 은유적인 비유이지만, 한 편으로는 아주 상징적인 교훈적 내용도 포함되어져 있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전설속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다. 특히 탑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하느님의 벌로서 다른 언어로 구분이 되어져 버렸다는 것은 아주 상징성이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이 바벨탑의 상징적인 의미는, 각자의 의식 속에 쌓아올린 혼자만의 높은 탑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자신만의 도그마, 스키마라고도 할 수 있는 혼자만의 독선과 아집, 고집스러운 편중된 사상과 이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일상중에도 우리들은 흔한 말로서, 나의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게 느껴지면 " 저 사람은 말이 안 통한다" 라고 상대방에게 핀잔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은 따지고 보면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어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식 속에 쌓아올린 혼자만의 완고하고 굳건한 바벨탑이 너무 높아서 무너지지를 않기 때문에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인데, 이것을 남 탓으로만 돌리는 아둔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완고한 바벨탑을 쌓아올리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리고 어떻게 바벨탑을 쌓아올린 사람을 만나더라도 막히지 않고 시원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만국언어소통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바벨탑이 높게 쌓아올려진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높이의 비슷한 모양의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하고만 원활하게 말이 통하게끔 되어져 있는 것이다. 일명 유유상종이고 끼리끼리 문화라고 하듯이, 고급아파트입주민과 임대아파트 입주민의 의식수준이 서로 다르고 문화 취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르게 어울리고 서로 다르게 대화를 하려고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현대에는 이 바벨탑을 각자가 더 높이 쌓으라고 강조를 받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니, 이것이 참 아니러니 하다. 그것을 나만의 실력쌓기요 나만의 스펙이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바벨탑을 쌓다보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혼자만의 완고한 바벨탑 안에 더 갇히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 놓고는 모든 사람들과 원만한 대화를 할 수 있는 대화의 능력이 갖추어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아주 모순적인 것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말이 아주 잘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아올리지 않은 사람이어서, 어떠한 바벨탑이라도 다 올라가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바벨탑을 쌓은 모든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를 향해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를 않으니" , " 말 귀를 알아듣지를 못해" ,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네" 라는 한탄을 하지도 않는 법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아서 그 안에 갇혀있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뜻을 잘 받아주지 않거나 이해를 잘 하지 못하면 자신 안의 문제점을 바라보지는 못하고서, 상대방을 향해서만 " 저 인간은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이네" 라는 말을 내뱉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