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이학년때 쯤인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적이 있다.
사실 우울증이 발현될만한 결정적인 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쁘고 밝고 잘 놀고... 교우관계도 좋았고, 성적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뭐 내 우울증의 표면적인 이유를 찾자면 '가난'이었겠지만 한순간에 내려앉은 우리집도 아니었고
철이 들고 난 후에 나는 늘 가난했으므로 확실히 가난은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아무튼 나는 별 이유없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깊은 우울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때 내 머리를 지배했던 생각이 '나는 가치없는 사람이다'라는 것이었다.
어렵게 내 머릿속의 생각을 털어놓고 나면, 다른 이들은 대부분
'아냐, 니가 얼마나 가치 있는데!' 같은 표면적인 위로를 건네거나
'나이트에 가서 남자들을 만나면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걸?'같은 시시한 조언을 하곤 했다.
어떤 것도 내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때 내가 했던 게 바로 '봉사활동'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시간이 어쩌다 맞아서, 장애인 아동 시설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장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기에 별 편견 없이
별 힘들일 거 없이 시간은 잘 지나갔다.
내 상식으로는 전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하루에도 몇건씩 벌어졌고
그리하여 내가 봉사활동을 했던 몇주간은 늘 돌발, 예측불허 상황이었다.
쳇바퀴 돌듯 단조로운 일상은 나선처럼 꼬여갔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내 '가치'를 찾아갔던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나처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봉사활동을 해보기를 권했다.
그런데
@ 출처 : 보아 앨범 자켓
얼마 전 보아의 인터뷰를 보고 나의 그 생각이 얼마나 불순했는지 깨달았다.
"자신과 누군가를 비교하여 무의식적으로라도 우열을 느끼는것이
자신을 잃는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말이, 정말 섬광처럼 가슴을 내리쳤다.
나는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우열을 느끼고,
'아, 나는 몸이 건강해서, 부모가 있어서, 가난하지만 대학에 다니니까, 그래도 괜찮구나'하고
나를 다독여왔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들 보다 나으니까 내가 도와야지'하며 우열을 느끼고
자신을 얻어왔는데, 반대로 나는 얼마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던가.
사실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낫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은
남들과 비교하여 내가 못났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과 같다.
왜, 나는 그들이 원하지도 않았던 '비교'를 내가 우위라는 이유로 일삼고 있었을까.
실제로 우위도 아니면서.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말았으면 하는 것처럼
그들은 누구도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동안의 내 봉사활동은 불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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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