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간의 신병 훈련단 생활은 7년만큼 길었다. 하루가 갈때마다 달력하나에 곱표를 쳐 가며 퇴소하는 날만을 기다렸다. 사회에서 묻은 때를 벗겨내고 군인이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새벽마다 기상하는 것만해도 곤욕이었다. 디아이라고 불리는 교관들은 공포 그 자체였고, 훈련은 누구하나 열외없이 강도높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긴 7주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 실무부대로 헤어졌다. 헤어지던날 7주간 정든 동기들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펑펑 쏟는 해병들도 많았다.
군생활을 모두 글로 풀자면 대한민국 어떤 남자가 책 몇권을 못 써내랴.
정말 많이도 혼나고, 맞기도 정말 많이 맞았다. 부대에 모든 사람은 나보다 높은 사람일때니 어디에 숨을 구석도 없었다. 친하게 잘 지내는 맞선임들도 있는가 하면 정말 무서운 선임들도 있었다. 하루하루 매분매초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해병 이병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를 드러내고 웃어도 안되고, 음식을 먹으면서 맛을 봐도 안된다. 밥은 가장 늦게 먹기 시작해서 가장 빨리 먹어야하고 선임들의 츄라이(식판)도 다 설거지를 해야했다.
선임들의 빨래도, 근무 준비도, 취침 준비와 침구류 정리도 모두가 이병 몫이었다. 물론 노련한 일병 선임들도 함께한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해병 이병은 정말 불쌍하다. 해병은 늘 보급이 모자란다. 내가 짬이 좀 찼을 때는 새벽 근무를 마치고 컵라면 하나를 후임과 나눠먹거나 내껄 포기하고 후임에게 주기도 했다. 이등병은 콧물을 찔찔 흘리고 있고 군복은 작업과 노동으로 인해서 땀과 흙 투성이다. 정말 지저분하고 불쌍하다. 인간이 그렇게 불쌍해질 수 없다.
문득, 위로휴가때가 떠오른다. 흔히들 백일휴가라고 부르는 휴가인데 이병 3개월차 정도에 나가는 휴가다. 새벽에 일찍 일어났는데 주계에서 맞선임 두명이 내 군복을 다리고 있었다. 치고박고 근무가 끝나자마자 내 군복을 다렸기 때문에 밤새 잠도 못 잤다고 한다. 해병의 군복은 다림질이 칼이다.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리고 온갖 기법과 몸무게를 다 동원해서 정말 칼처럼 다린다. 맞선임들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내가 휴가를 나간다고 내 군화를 털고, 군복을 밤새도록 다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밀려오는 고마움과 무언지 모를 복받침에 눈물이 맺혔다.
아침이 되니 선임들이 다 일어나서 나에게 용돈을 챙겨줬다. 2만 몇천 원밖에 안되는 돈이었지만 선임들이 있는 돈을 다 긁어서 모아준거였다. 나가서 차비라도 하라고. 밖에서는 해병의 악습이라하며 해병의 기를 꺾지 못해 안달이지만 해병들끼리는 해병들만의 정과 의리가 있다.
그 무섭던 선임들이 늘 후임들을 향해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 후임들은 정말 하나같이 다 잘 생겼다.(웃음)."
후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전역을 한지 15년이 돼 가지만 아직도 길거리에 빨간명찰을 단 청년들을 보면 내 직속 후임 같고, 동생같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고 잘 해주고 싶다. 그리고 여러 얼굴들이 떠올라 그리움과 복받침이 몰려온다.
이번에 사고를 당한 해병들에 대한 기사를 보고도 그랬다.
아직 한참 젊은 나이인데 얼마나 억울할까. 그들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