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행하는 피라미 쏭블리입니다. :)
몇 년 전, 정말 딱 이맘때 다녀온 여행이 있어서 사진을 꺼내봤습니다. 당시 저와 햇님군은 방학을 맞아 친한 한국인 언니네 부부와 5월의 자이언 캐년 하이킹을 떠났거든요.
미서부에는 유명한 캐년이(발음 주의) 크게 세 곳이 있습니다.
-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Grand Canyon National Park.
-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 Bryce Canyon National Park.
-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 Zion Canyon National Park
세 곳 모두 미서부 여행에서 사람들이 자주 찾는 코스지만 일정이 짧은 경우에는 보통 그랜드 캐년을 택하기 때문에 자이언 캐년과 브라이스 캐년이 생소한 분들도 많으실 거에요. 저도 그랬거든요.
5월의 자이언 캐년
I-15 고속도로를 타고 라스베가스 방향으로 가다가 국도를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가니 저 멀리 자이언 캐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세련되고 북적거리는 미국 동부와 달리 미서부의 와일드한 매력은 운전 중에 가장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하나 하나가 모두 색다르고, 거친 느낌이에요.
입구를 지나 주차장에 다다르면 여기부터는 차를 두고 셔틀을 타고 들어가야 합니다. 무료 셔틀이 자주 오니까 방향만 잘 확인해서 올라타면 끝입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하늘로 치솟았던 날.
온몸으로 햇살을 받았습니다.
온 세상이 초록초록🌿
버팔로 버거를 먹다
저희 부부와 언니네 부부는 자이언 캐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근처의 조그마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파란 벽과 아기자기한 장식이 마음을 끄는 곳이었어요.
아침을 건너뛰고 먼 길을 온 저는 너무 배가 고파서 들어가자마자 메뉴판을 번개같이 스캔했습니다. 무려 버팔로 버거가 있더라구요. 자이언 캐년 주변에서는 버팔로 고기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먹어볼 기회가 생겨서 정말 기뻤습니다. 당연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주문을 완료했죠.
식사와 샐러드가 나오자 언니네 공주님도 반가움에 버둥거렸고, 저도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마구 흡입!!
버팔로 버거는 일단 일반 버거보다 크기가 좀 더 컸고, 고기가 질긴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야생 버팔로의 허벅지가 떠오르는 식감이랄까요. 딱히 특별한 소스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치즈가 듬뿍 녹아든 패티가 맛있었습니다. :)
그렇게 식사 후 버스에 탔습니다.
덜컹덜컹
울렁울렁
창 밖으로 붉은 퇴적암이 멋지게 솟아 있었지만 제 속은 자꾸만 어수선해졌습니다.
흡!!!!!
뭔가가 식도를 노크하는 느낌.
습습 후후
호흡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참다가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번개처럼 하차했습니다. 버팔로 버거와 더불어 그 전에 마신 스벅 커피까지 모두 화장실 변기에 웩웩...
속을 비워내고 바람을 쐬며 걸으니 나중에는 기운을 차려서 내려왔지만 국립공원 화장실에 영역 표시를 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제 버팔로 버거는 꼭꼭 씹어먹기로...)
온 가족과 함께 할만한 하이킹 코스
갓난아기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셔틀을 타고 가장 마지막 포인트에서 내려 하이킹을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된 하이킹보다는 쉬엄쉬엄 산책하는 느낌이었죠. 제가 체하는 바람에 이대로 집에 돌아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소화와 기력회복에 도움이 될만큼 적당한 코스였습니다.
공기도 좋고, 온 세상이 파릇파릇해서 걸으면 걸을수록 저는 힘이 솟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5월의 자이언 캐년은 꽃 가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한 번 바람이 불면 눈이 내리듯 꽃가루가 날리는 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덕분에 봄이면 항상 알러지에 시달리는 햇님군은 유난히도 그 날 힘들어 했죠.
감탄이 절로 나는 기암괴석과 웅장한 풍경을 편안함 속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자이언 캐년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동굴과 강을 건너고, 바위 사이를 통과해야 하는 하이킹 코스도 있습니다.
연신 재채기를 했던 불쌍한 햇님군
저희도 계곡 근처에 앉아 잠시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언니네 아가에게는 첫 하이킹이었을텐데 계곡 물에서 참방참방 잘 노는 모습이 너무 예뻤죠.
아무래도 부담 없는 완만한 코스여서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저희 일행만 해도 아주 어린 아기가 있었구요. 산 속 동물들을 귀엽다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좋아하는 아이들은 천사처럼 귀여웠습니다.
사슴이 좋은 이유
지나가는 아이들도, 멋진 풍경도 좋았지만 사실 저의 눈을 가장 사로잡았던 건 바로 곳곳에서 만난 사슴들이었습니다.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사슴을 멀리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차마 다가가지는 못한채 카메라로 가까이 당겨보고.
그 맑은 눈망울과 보드라운 털의 질감을 뷰파인더 속에서나마 느꼈습니다. 그랜드 캐년에서도 그랬고, 옐로우 스톤에서도 그렇고 어딜 가든 저는 사슴이 참 좋더라구요. 제가 살던 동네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도 근처에 사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새벽에 도로 한 가운데에서 유유히 걷는 사슴을 마주한 적도 있죠. 운전석에 앉아 있던 저를 빤히 바라보던 사슴은 "이 시간에 잠 안 자고 뭐해?"라고 물어보는 것 같았어요. :-) 어쨌거나 저는 사슴만 보면 유난히 마음을 뺏겨 멍하니 바라보곤 합니다.
이다지도 마음이 끌리는 것은 제게 사슴이 참으로 연약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생물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풍경도 보고, 버팔로 버거도 먹어보고, 좋아하던 사슴도 보았던
날씨 좋던 5월의 어느 날,
자이언캐년에서의 봄나들이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