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17 짜르의 분노
-1905년 러시아 제국.
짜르황제는 숲에서 여우 사냥을 하다 시바노마 사령관으로 부터 급한 연락
을 받고 허겁지겁 궁으로 돌아왔다. 각 부처 장관들도 한자리에 모여 왕을
알현했다. 사령관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전한 비보는 다름아닌 발틱함대
에 관한 내용이었다. 동쪽 끝에 모여 살고 있는 일본군 놈들을 깨끗히 처리
하고 거기다가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라고 보낸 세계최강, 발틱 함대가 무
참히 깨지다니. 더군다나 일본연합함대는 제각기 이해관계가 다른 놈들이
한데 뭉쳐서 만든 오합지졸이라 손쉽게 해치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막강
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발틱 함대가 무너지면서 세계최고임을 스
스로 자부하던 러시아 해군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 뿐만아니라 회
계함 나히모프호에 실려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까지 함께 위험에 처하
게 되었다.
현재 러시아는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일본과 제국주의 전쟁을 벌이
고 있었다.나히모프에 실린 금괴는 프랑스에서 빌려온 것으로써 일본 열도
를 일시에 제압 한 후 식민지 건설을 위해 쓰일 자금이었다.
일본내에 세워진 식민지에 곧바로 자금을 투입시켜 군사력을 강화시키고
이웃나라 조선까지 먹어치울 요량이었다. 이렇게되면 동북아는 물론이고
나아가 태평양일대를 모두 먹어치면서 러시아제국은 방대한 식민제국을 세
울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식민지에서 막대한 자원을 뽑아
프랑스에 진 빚도 갚고 동북아와 태평양 전체를 제2의 러시아 제국으로 만
들 계획이었다. 막대한 양의 금을 재원으로 삼아 일본열도에 제2의 러시아
정부를 세워 세계정복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터에 오히려 일본에
금을 빼앗기게 생겼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경직된 얼굴을 한 재
무장관이 입장해 짜르 앞에 읍소했다.
"폐하 부르셨사옵니까."
"장관께서도 발틱함대가 참패한 소식을 이미 들었을 것이오."
"소인도 그일 때문에 밥이 넘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발틱함대에 실려있는 금괴를 우리가 잃었을 경우 제국에 미
치는 영향이 어떠하리라 생각하오?"
"끄응.."
재무장관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5천톤에 가까운 금괴를 일본에 빼
앗길 경우 러시아제국의 재정은 파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단기간에
회수 가능할 것이라 여기고 프랑스에서 끌어온 자금이라 만에 하나라도 잃
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질것이 뻔했다. 무엇보다도 금괴를 빌려준 프랑스에
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인들은 벌써 한참 전에 남미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어 놓고 자원을 마
구 약탈해 엄청난 부를 쌓아 놓았다. 러시아에 빌려준 5천톤의 금괴도 모두
남미에서 현지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약탈해 온 것이었다. 문제는 러
시아가 프랑스에서 빌린 금괴에 대한 이자를 매년 꼬박꼬박 내야 한다는 것
이다. 굳이 현대식으로 따지자면 5거치, 10년 상환을 약관으로 정했다. 향
후 5년 까지는 이자만 내면 된다. 그러나 그후로 10년이 지나기 전까지 이
자를 포함 원금까지도 완납해야만했다. 이 모든 계약은 발틱함대가 일본을
접수한 후 식민지로 삼았을 경우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일본에 대패한 현상
황이 난감 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채무를 무기로 프랑스가 트집을 잡아
올 것이 눈에 선했다. 자칫하면 아버지가 어렵게 세운 짜르시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가뜩이나 요즘 짜르의 폭정에 못견뎌 여기저기서 국민
들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었고 국가의 재정상황도 최악으로 치닿
고 있었다.집구석 잘 돌아간다.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은 다른 신하들도 모두 조용히 침묵했다.왕이 괴롭다
는듯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소리쳤다.
"뭐좀 좋은 생각 없나?"
재무부장관 트왈로브 스키가 입을 열었다.
"뾰족한 수가 없는걸로.."
"이런썅, 뾰족한 수 말고 좋은 수 말이야."
재무장관은 깜짝놀랐다. 나이도 저보다 20살이나 더 많고 그래도 한나라의
장관인데 왕의 체통을 져버리고 이렇게 쌍욕을 해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여태 이 왕궁에서 먹은 짬밥이 얼마인데 어린놈이..)
짜르2세는 러시아 역대 왕중 가장 다혈질의 인물이었다.그래서 화가 한번
나면 앞뒤 안가리고 때려부수거나 폭언을 일삼았다. 왕은 고개를 숙인채 조
용히 찌그러져 있는 재무장관을 비롯한 다른 장관들을 한심하다는듯 쳐다
보며 말했다.
"네놈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따박따박 월급 받아먹으면서 하는일이라
곤 밥먹고 똥싸는 일뿐이지? 해군제독이라는 작자는 쪽빠리한테 개박살이
나요, 명색이 장관이라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대책이니 아이고 내팔자야."
짜르는 눈앞이 깜깜했다. 이럴땐 정말 왕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 유유자적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었다.진심이니?
"시바노마 총사령관은 아직 도착전인가?"
황제를 불러놓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사령관이었다. 전날 여자끼고 진탕
술마시며 놀아난 사령관의 행적을 잘 알고 있는 시중이 안절부절해 하며 무
마시켜려 했다.
"곧 도착 예정이랍니다 폐하."
"총사령관 이거 대체 뭐하는 놈이야.오기만 해봐라 당장 죽여버릴테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관광부 장관이 보다 못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여러 신하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디 왕의 체통을 지키옵소서 폐하."
"아아 맞아 내가 왕이었지. 시발 내가 오늘 니놈 지옥관광 시켜줄께."
짜르는 드닷없이 옆에 서있는 호위병의 칼을 빼앗아 관광부 장관의 목에 깊
숙히 찔러 넣었다.
"푸헉.."
모두들 경악했지만 감히 짜르황제의 행동을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러시아제국의 황제인 것이다. 하느님과 동기동창생이고 부처님과는
형,아우하며 맞장뜨는 사이였던 것이다. 하늘아래 유일무이한 절대 지존인
것이다. 왕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관광부 장관을 향해 폭언을 가했다.
"시발놈의 관광아,제국이 통째로 날아가는 판국인데 체통이 다 뭔개소리냐.
지옥으로 보내줄테니 나라돈 그만 빨아쳐먹고 지옥관광이나 해라."
왕은 관광부 장관의 목에서 칼을 빼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관광부장
관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살벌한 공포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건 그냥 단순한 왕의 지랄병이 아니었다.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고 온갖 사치와 향락에 빠져있는 신하들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엄
중한 경고였다.
"다음엔 어떤 새끼를 관광보내줄까.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