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구천을 떠돌고 있을 우리의 기억이 아닌 기록들이 과연 남아 있을까?
다시 모인다면,
아마 모두 반가워는 할것이야.
어디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대학로 민들레영토!
이제 그 자리에는 커다란 커피숍이 들어서 있고.
그때 했었던 말,
'내가 천막이라도 쳐서 같이 할 거야. 우리 민들레 영토 같은 곳을 꼭 만들자. 내가 꼭 만들거야."
함께 했던 이들의 가슴에 머리에 남아있는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천막'은 그냥 내 가슴속, 내 머릿속 우리들의 공간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강렬하게 기억하자며 생체기록을 해서 그런가?
뭔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천막' 용어가 자주 사용되었던 것 같다.
- "아파트 앞에서 천막이라도 쳐서 동네 임산부들 산전산후 교육과 간호하면 되잖아요.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어요."
- "우리 천막치고 봉사활동 할까?"
- "난 이다음에 돈 없으면 천막이라도 쳐서 너네하고 같이 할거야, 알려주고 듣고 할 거야."
몇 개월 전부터,
나는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다시 간호사를 위한 활동을 조심스럽게 재시도하고 있다. 물론 또 안 될 수 있지만,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이,
전에는 없었던 마음이었는데
너무나 갑자기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신 2014년 1월 새벽........................
내가 내 아버지도 간호하지 못했으면서,
내가 내 아버지에게 따뜻한 밥 한 상 차려드리지 못했으면서,
대한민국 임산부영유아 간호에 대해 고민하는 한심한 나를 보면서,
책은 봐서 뭐 하나......
글은 읽어서 뭐 하나......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서 뭐 하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현실화 되었고,
다 소용없다,
부질없다,
인생의 허무함을 알았고,
내가 했던 일이 뭔가 싶기도 했고,
이어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참 세상이......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눈물 나고, 하늘이 맑으면 맑아서 눈물 나고, 바람이 좋으면 좋아서 눈물 나고,
아등바등 살면 뭐 하나 싶은 생각에 '그냥 던지자, 하지 말자, 버리자' 했다.
그리고 나를 존재하게 했던, 나를 살게 했던 간호사 세계를 완강하게 거부하며 철저하게 외면하며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자주 만났던 하이데거에 몰입하며 죽음과 불안... 세계-내-존재.....
나는 내가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간호사 세계로 스스로 규정하였다.
나에게 간호사 세계는 증오라고 표현하는 단계를 넘어서 버린 무관심과 외면의 대상이 되었다.
그랬던 내가 스팀잇과 함께 다시 간호사 세계로 돌아왔으니,
간호사로서 나는 죽었다 태어난 것이거나 아니면 죽음 앞에 가보았거나......
이곳 스팀잇에 있는 나는, 때가 되어 가던 길을 돌아서 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발길은 나를 기억하는 한 사람에 의해서다. 나는 버린 기억인데, 누군가가 기억한다는 것이 위로인지 괴롭힘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의 돌아섬은 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짚고가야한다. 왜냐면, 그도 알아야 하니까. (물론 알고있겠지만.)
버텨줘서 고맙다.
이 말이 얼마나 눈물 나게 하는 말이던지, 나보고 버텼다고? 내가? 과연? 나는 버렸는데...... 나는 이제 가진 것도 없는데...... 사람도, 마음도 아무것도 없는데 버텼다니......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지지 않는 말, 함께 일했던 동지들이 했던 말, 그리고 지금도 하는 말 "ㅇㅇ스럽다."
2000년도와 여전히 변화 없이 살아지는 우리 한국간호사들,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무엇을 위해 간호하는지 모르며 살아지고 있는 내 후배들을 위해서 나는
- 죽기 전에 매일 하고 싶은 일은, 우리 후배간호사들을 간호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 죽기 전에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간호사를 간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싶다.
- 죽기 전에 바람이 있다면, 간호사가 간호사를 아프게 하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시도, 혹은 실마리라도 보는 것이다.
내게 간호사, 한국간호사는 이름 그 자체로 나에게 종교이고 신념이다.
그냥 내가 가는 길이다. 내가 나에게 정해준 가야 하는 길이며, 나라도 가고 싶은 길이다. 다 꺼져가더라도 후~하고 불면 살아날 수 있는 불씨라도 되고픈 마음, 누군가 아주 큰 지혜와 힘을 가진 이가 꺼져가는 불씨를 와락하고 살려낼 수 있을 때까지 버텨주는 불씨라도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르는 삶......
내가 급하고 바쁜 이유도 이러한 마음으로 핑계를 돌리고 싶음이다.
간호와 사회.
간호사와 시스템.
간호는 국민건강 측면이나 국가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행위이다.
사회와 국가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없는 이들, 간호사이다.
과연 이들을 돌보는 이는 누구일까?
돌보기만 하는 자, 간호사.
간호사는 국민이 될 수 없는 것일까! 간호사는 국민이 아닌가? 왜 간호사는 죽어도............ 자기의 죽음으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함에도......
보상보다는 희생을 먼저 떠올려야하는 간호사라는 직업!
무얼해도 간호사이니 그럴 수 있다는, 그렇게 해야 한다는 조직신념을 한결같음으로 100년을 이어오는 숭고한 구조!
건강하지 않은, 행복하지 않은 간호사가 과연 건강한 간호를 기운 나게 하는 간호를 펼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내가 하려하는, 간호사 간호를 간호사만을 위한 지엽적인 사고라 평가할 수 있겠지만, 간호사는 최일선에서 국가의 기반인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이로서, 말 그대로 국민건강 지킴이다. 그러한 간호사가 죽음으로 혹은 질환으로 고통받고있다. 그런데도 간호사를 위한 법, 규제, 대안에 대해서 조목조목 이야기 할만한 것이 없다. 보건의료에서도 간호는 sub이며, 의료인 그룹에서도 간호사는 sub, 주류가 아니다. 이 주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복잡한 역학관계가 나설 수 있으니, 나는 국가적 차원에서 간호사 돌봄체제가 갖출 필요가 있다고 정리하겠다. 그러나 그일을 국가도 사회도 하지 않으니 그 중요성을 알고 있는 간호사가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얼마 전, 스판 단톡방에서 여러 분야의 커뮤니티를 구현하려 한다?는 운영자의 이야기를 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립언론이었으며, 그 외에 여러 부류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역시 간호는 없었다. 스팀잇 생활을 하면서도 스팀사회 안에서 나 그리고 간호사로서의 나의 위치를 비교확인하였다. 내가 내린 결론은 자.력.갱.생!!!!!이다.
결국 간호사인 내가 인지하는 문제는 우리 간호사의 문제이니 주체인 간호사가 해야 함이 옳으며, 누가 되었던 간호사가 주체적으로 활동하면 된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우리 한국간호사에 속한 간호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간호사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나가야겠다는 다짐을 또 하였다. 이번에는 외면하지 않고 페스츄리 겹처럼 차곡차곡 채우는 중이다. 나는 우리 한국간호사에게 도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것을 주변에 도움을 받아 켜켜이 채워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들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경험을 최대한 후배들과 할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또 주체가 되어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들이 살아나갈 세계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가 아니다. 이제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다. 이제 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해줄, 그러면서 그 한계를 보완해 국민건강에 이바지하는 간호사를 위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줄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니다 받을 것이며 해달라고 할 것이다. 예전에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의 부족함이 결국 간호 조직의 발전을 방해했고, 간호사가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았다.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한국간호사의 건강하고 행복한 간호사 여정을 위해서 나의 수많은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갈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다. 스팀잇과 함께!
나에게 6월은 아픈 달이다. 아픈 6월을 간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