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참 외로웠는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저 소리가 나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은 의사나 판사, 최소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를 준비할 때, 나 혼자만 역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요리였는데, 진로검사를 위한 희망직종란에 무엇을 적었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요리사’ 라고 적었다는 대답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이름난 셰프도 없었을 뿐더러 요리사가 썩 알아주는 직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꿈을 창피해했다.
남들 다 이름난 직업을 목표로 삼는데, 나는 요리가 하고 싶다니. 그런데 어느날 선배 하나가 내게 말했다. 나도 요리가 너무 좋지만 용기가 안나서 못하는데, 넌 정말 멋지다. 전공도 아니오, 경력도 없는 요리가 하고 싶어 여기저기 무료 요리 강연을 듣다가 찍힌 사진이 그 기관의 공식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을 그 언니가 본 것이다.
다른 이들은 전공관련 혹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취업준비를 할 때, 나는 미국으로 조리인턴십을 떠나기로 했다. 여태 문과생으로 지내오다가 갑자기 요리라는 소리에 엄마도 내심 걱정을 하시는 눈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합격률이 거의 100%라는 조리인턴십에서 지원자 중 나 하나만 떨어졌다.
조리인턴십을 지원할 때 실기와 간단한 영어면접을 보았는데, 지원자들 모두 조리복을 입고 온 것이었다. 알고보니 모두가 요리를 전공했거나 주방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조리복과 조리화 착용은 요리사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먼저 시험을 보고 나온 어느 지원자의 조리복을 빌려입고 실기시험을 보았다. 다른 지원자들의 요리는 굉장히 화려했다. 어떻게 주어진 시간에 저걸 다 만들지? 싶을 정도로.
나는 이탈리안 요리학교의 무료강연에서 배운 가지소스와 모짜렐라 파스타를 만들었는데, 모양새는 소박했어도 맛에 있어서만큼은 주눅들지 않았다. 그런데 떨어진 것이다. 이유는 전공무관, 경력 무.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내주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요리를 포기하는 듯 하였으나 약 1년 후 나는 주방의 막내로 들어갔다. 지배인이 나보다 어렸다. 나는 수프를 만드는 법이 무척 궁금했는데 주방 선배들 누구 하나 내게 레시피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자기들도 힘들게 배웠다며, 알고 싶으면 혼자서 알아 내라는 것이었다. 지금 같아서야 네이버에 치면 다 나오는 것을... 그게 뭐라고 다들 그렇게 꽁꽁 숨겼을까. 좋은 대학 나와서 요리한다고 나를 비꼬는 선배도 있었다. 고작 10년 전인데 그땐 그랬다. 엘리트의 길을 걷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주방 사람들 사이에서도 끼지 못한 채 나만 외딴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하얀 까마귀처럼.
보란듯이 세계 제일의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경력도 없고, 학력도 없는 내가 요리사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자, 쓸 수 있는 가장 큰 치트키가 그거였다. 여기만 졸업하면 지금처럼 무시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영어로 자기소개서부터 쓰고 교수님들께 추천서를 받고 모든 자료를 국제우편으로 보내며 준비한 끝에 합격편지가 집으로 날라왔다. 고생길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요리사의 길이 어떤지, 특히나 한국에서 요리사의 길이 어떤지는 너무나 훤했으니까.
입학생 중에는 나 말고도 한국인이 셋이나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페이스트리 전공이었다. 요리 전공을 하는 한국인 중 하나와는 룸메이트가 되었다. 입학 전, 룸메이트가 한국인인 걸 알고는 바꿔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지지 않았다. 그녀는 요리유학을 와서 너무나 행복해했다. 벌써 그녀의 꿈을 이룬 듯 늘 기대에 차있었다. 요리사가 된다니 너무 신나지 않아?
그녀는 요리 경험이 전혀 없었다. 우리 학교에 입학을 하려면 요리경력이 필수였는데, 한국인 유학생들은 요리 경력이 없고 추천서가 없어도 유학원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니가 이 바닥을 알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지. 우리는 고생을 사서 하러 온 거라구.
오늘, 그녀를 만나고 왔다. 나의 단짝이 된 그녀는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우리 모두 ‘경단녀’ 가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요리를 사랑하고, 나는 여전히 요리는 힘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바닥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요리학교에 입학해서도 나는 다른 유학생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인 유학생은 너도나도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에 비해 나는 미슐랭 별 세개는 커녕 한개도 달리지 않은, 내가 너무나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이름없는 현지 맛집에서 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웬 동양 여자아이를 직원으로 쓸 정도의 규모도 체계도 없었던 그곳은 나를 써주지 않았고, 결국 나 역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친구들은 모두 뉴욕에 남든 미국에 남아 요리를 계속 하고 싶어했다. 어떻게든 취업비자를 받거나 연장하기 위해 레스토랑 오너셰프나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나는 나를 잡는 셰프에게 먼저 그만두기를 고했다. 지인들은 또 탄식했다. 남들은 이곳에 남지 못해 안달인데 왜 돌아가느냐고.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일식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나는 일본의 이자카야에서 일하기로 했다.
그 뒤로도 난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일하거나, 꾸준히 일하지도 않았다. 나는 여행을 밥먹듯이 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여행을 밥만큼이나 사랑했다. 그래서 여행을 하며 요리를 하고 싶었다. 한국인 동문들이 셰프로 성공하길 꿈꾸며 경력을 쌓아갈 때,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을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조리 인턴십 실기시험때 만든 가지 파스타 만큼이나 소박한 꿈이었다.
호랑이를 그리려고 하면 고양이라도 그리지만, 고양이를 그리려 하면 쥐도 그릴 수 없다며, 꿈을 크게 가지라던 지인들의 충고가 있었다. 요리유학까지 다녀왔으면 입신양명을 꿈꾸거나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지 않겠냐고.
친구들은 이름난 곳에 취직할 때 나는 주방의 막내로 들어가고, 동문들이 승승장구하며 셰프의 길을 걸을 때 나는 순례길을 걸었다. 어떤 이는 내가 길을 잃었다고 했고, 어떤 이는 남들처럼 살면 두드러기라도 나느냐고 물어왔다. 둘 다 아니야. 나는 그냥 ‘나’ 처럼 살고 싶었을 뿐인데.
물론 나를 멋지다고 부럽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행을 다니는 것만 골라서 부러워한 것이지만. 그렇게 말은 하면서도 절대 나처럼은 살지 않더라. 그것을 그들은 역시 용기가 없어서 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나도 남들처럼 살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사는 거야.
너도나도 잘 빠진 아스팔트 길 위에서 치열하게 달리고 있는데, 나만 저쪽의 논두렁 길에서 홀로 다른 방향으로 걷고 있는 느낌이 줄곧 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불안했고, 외로웠다. 그럼에도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남들의 꿈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당연하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싶은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꿈을 미뤄놓은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다만 나는 외로웠던 지난 날의 나같은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모두가 같은 인생을 살 필요 없는 거라고.
설령 누군가의 성공한 모습이 부러울 지라도 그것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인생의 모습인지는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남들이 가는 핫플레이스에 가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고, 남들이 사는 명품가방이니까 사야하는 사람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내가 더 있어보이거나 잘나가길 바랐던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묻고 싶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누군가는 정말 캐비어나 송로버섯을 좋아한다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이 치켜세우는 고급의 비싼 음식이라고, 혹은 대세라고 해서 그 음식을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가. 물론 먹어본 적이 없다면 한번쯤은 먹어 보고야 싶을 것이다. 하나 무인도같은 곳에 몇 년을 갇혀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가 겨우 구출되어, 제일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정말 캐비어라고 할 것인가. 심지어 아이언맨도 버거킹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다 다르듯이 실은 좋아하는 인생도 다 다를 것이라고. 좋아 보인다고 해서, 남들도 다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정말 그것을 좋아하는가.
요즘은 내가 나온 요리학교에 한국인이 포화상태라고 한다. 요리사의 위상이 높아져서 자신있게 요리사의 꿈을 꾸는 걸까. 아니면 그냥 또 유행인걸까. 하긴, 나 때도 요리사를 꿈꾸며 설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수많은 ‘엄친아’ 들의 명함 속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직업이라고 먼저 주눅든 것은 나였다. 그런 나에게도 물어봤어야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모두가 짬뽕을 시킨다고 짜장면을 포기할 것인가? 나만 짜장면이라고 외로워할 일인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세상 맛있게 먹고 배 두둑히 부르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인생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요리를 하지 않는다. 요리를 그만두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최근에 깨어났다. 다시 곯아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꼭 이렇게 삼천포로 빠지고 만다. 갑자기 공인 영어점수가 필요해 어제 급히 토익을 신청하고 이틀 뒤 시험을 보게 되었다. 만학도가 된 기분인데 그렇다고 하기엔 공부할 시간이 너무 없... 돌아와서 그동안 달아주신 소중한 댓글에 하나하나 인사 드리려고 한다.
모두 잘 지내셨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