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상상력이 '무슨무슨 학' 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분야에 한정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연히 도구를 갖게 된 순간부터 도구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새롭게 통역해주고 접속하게 해주었고, 의자는 우리가 앉아 쉬면서 사냥에 지친 몸을 이끌고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는 원시 시대의 선조가 그런 의자가 생겨남에 따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크게 확장되었다. 쉼의 의미가 숲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도 작동하게 됐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물의 등장이 이전 관계망을 확장해 주면서 다양한 창조와 융합이 이루어져왔고 다양하고 이질적인 지식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접속하는 모든일들이 공자의 시대부터 르네상스의 다빈치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서로를 들여다보며 번역해주는 즐거운 사유 양태가 이어져왔다. 다빈치에게 천체를 관찰하는 일과 인체를 관찰하는 일, 그리고 그것을 그림이나 조각,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지식이 창조와 융햡을 근간으로 자연스럽게 창출됐다는 뜻이다. 그러다 전문화와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지식이 각자 울타리에 갇히게 된다.관료주의가 득세하고 이분법적 세계관이 등장하는 17~18세기부터라고 볼 수 있는데, 따라서 지식의 분절화는 길게 봐도 400여 년 밖에 오래지 않을 수 있다.
관료주의? 관료제를 뜻하는 '뷰로크라티즘Buraucratism'은 뷰로Bureau,즉 책상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측 '책상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산업화와 함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자, 밀집 형태로 바뀌어가는 사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각자 책상에 주어진 일을 즉시즉시 처리하는 시스템이 점차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게 유리하다고 본 것고, 실제로도 효과를 많이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넓은 스펙트럼의 지식과 깊은 성찰을 바로바로 현실에 적용하고 풀어내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고 대응 속도 또한 늦기 때문이다.거기에 합리적 세계관을 자처하는 근대 과학적 사고가 효율성과 속도를 강조하면서 관료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라오는 일만 처리하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것만 공부하면 되는,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책상 위를 들여다보거나 간섭하는 행위는 마치 큰 잘못이거나 불필요한 일처럼 여겨지는 시간을 살게 되었다.
물론 관료주의가 가져다준 효과도 크다. 생산성이 높아졌고 경제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세상이 급변하는 유례없는 다양성과 복잡해진 이 세계를 관료주의 패러다임으로 끌고 가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예전부터 있었지만 잠시 잊고 있었던 창조와 융합의 패턴으로 사유하고 궁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 결과 현재 인문학이 과학과의 사이에서 경계를 느슨하게 하면서 지식과 융합하려는 작업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지성의 네오 르네상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동안 우리는 중요한 변화의 환경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4차 산업 혁명이다. 아직까지는 실체가 없는 형국이라 차분한 접근과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미 빅데이터나 사물인터넷이니 인공지능이나 하면서 많은 기술들이 소개되어 왔고 각각의 주제는 미래의 이런 저런 청사진들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선정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다 이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는 용어, '4차 산업 혁명'이 등장했고 지금까지의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즉 정보소통기술이 산업 전반 그리고 우리 일상의 삶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혁명적 환경을 말하며, 새로운 지식의 창출과 생산이 일반화되는 사회구조를 전제로 해야 하고, 산업과 사회 측면에서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정교화, 효율화, 지능화, 융합화의 상황을 고민해야 한다.
즉 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데이터가 공유되며, 생상과 소비의 간격이 허물어지고 또한 새로운 융복합 기술들이 실제로 적용되고, 전에 볼 수 없었던 비즈니스 모델들이 생겨날것이다. 이런 과정은 관료주의하의 사회가 생상할 수 없었던 전 인류적 가치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인류에게 익숙한 개념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앞으로는 개개인의 삶에 근거한 맞춤형 생산, 맞춤형 소비로 변할 것이고, 여기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의 기술이 우리 삶 구석구석 밀접히 연관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술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그들과 어떻게 공존하고 진화해야 할 지 부지런히 고민해나가야 한다.
인문학과 기술은 인관과 세계를 통찰하는 지성적 운동이다. 이들이 만나 창조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건강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실현하는 일로 수렴되어야 한다. 테크놀러지의 어원인 '테크네 Techne'는 서로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꼬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뜻한다.단순히 공학적 지식과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을 함께 만나게 해서 창조적인 일을 실현하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시켜 새로운 기술적 환경이 급격하게 구축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테크네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 가치를 디자인하라, 김진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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