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며 생각했다. 앞으로의 내 여정을 책으로 엮으면 좋겠다고. 여행을 하며 요리를 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신통하게도 정말 그렇게 되었지만, 책은 커녕 일기도 잘 쓰지 않았다. 그땐 사진도 얼마 찍지 않았다.
현재에 충실한 것이라 생각했다. 기록을 남길 시간에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고. 이제와 그럴싸하게 말하는 거지, 실은 일하느라 지쳐 다른 무엇을 할 여유가 없었다. 쉬는 날이면 자느라 바빴으니까. 무엇보다, 정작 나는 독서도 안하면서 책을 쓴다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책은 뭐 아무나 쓰나.
왜 그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쓰고 싶으면 쓰는 거지. 남들이 다 하고 싶어한다고 해서, 나도 하고 싶단 착각을 하지말자는 것까진 좋았다. 다만 그런 식으로 내 꿈을 줄여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욕심부리지 않으면 쉽게 행복해지니까.
지금도 열렬히 책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럴 깜냥이 되지 않는다며 애초에 꿈꾸지 않는 걸 수도. 그런데 최근 스팀잇에서 누군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들으면 왜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되는지. 실제로 책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니. 스팀잇에서 그게 가능하구나.
스팀잇에 인생... 까지는 아니어도 인생의 일부를 거는 사람을 종종 목격한다. 이곳에서 판을 벌이고 뭔가 해보려는 움직임을 볼 때마다 응원은 듬뿍해도 그 열정과 가능성에 대해선 알 수 없었다. 실패와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로 ‘어차피 안될거야’ 하고 마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한창 스팀잇에 뜸했던 사이, 내가 모르는 저편에서 또 다른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정체는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몇 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길래 뒤늦게 관심을 갖고 보는 중이다. 이름하여 ‘스팀시티’. 그런데 이 글을 쓰는 도중, 그쪽 행사에 음식으로 참여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글의 흐름으로 봤을 땐 하기로 했다고 해야 할 것 같지만, 고사하고 말았다. 왜 하필 애증의 요리였을까. 나는 <냉장고를 부탁해> 도 보지 못하는데. 변명이다. 전에 스팀잇 관련 영어번역 일을 부탁받았을 때도 자신이 없어 사양하지 않았던가.
‘눈앞의 이득보다 스팀잇의 더 큰 가치를 보는 사람만이 스팀잇에 남을 것’ 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무어냐고 물은 적이 있다. 정확히는 스팀잇의 더 큰 가치는 무엇일까요. 소회를 풀거나 소통하는 것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분명히 있을텐데 말예요. 라고 물었다.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가치가 내게도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알고 싶었던 가치나 가능성은 스팀잇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보려는 사람에게 있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면 뭔들 빛나지 않을까. 그런 사람에게 스팀잇은 꿈이 현실이 되는 곳인지 모른다.
더이상 꿈꾸지 않게 된 건, 여지껏 꿈만 꾸는 데 그쳐왔기 때문이다. 제 인생을 걸게요. 라고는 여전히 말할 수 없지만, 실패를 무릅쓰는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최선을 다할 용기를 내고 싶다. 아주 오랜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