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방문하면 도시가 비교적 낮은 건물에 비해 도로가 큼직 큼직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구 27만의 중소 도시가 갖출수 없는 도로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도로를 먼저 닦고 구획정리를 마친 것같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군산의 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군산은 1876년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이 개항해야 하는 5개의 항구 중 부산, 인천, 목포에 이어 4번째로 개항된 항구 도시입니다. 1899년 일본의 강제에 의해 개항된 이래 1945년까지 일제 수탈의 중심지였습니다.
일제는 자신들의 부족한 쌀을 이곳 군산에서 충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항구로 옮기기 위해 넓은 도로를 만들게 됩니다. 또한 쌀을 헐값에 사기 위해 선물 시장이 발달했고 합법적인 수탈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관, 거래소 등이 지어졌습니다.
개항이 되면서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항구를 중심으로 한 평지에는 일본 상공인들이 대부분의 땅을 점유해 살았습니다. 조선인들은 인근 야산에서 움막을 짓고 살며, 일본인들의 소작농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한 해 일본인들이 군산항을 통해 수탈해 간 쌀은 300만석에 달했습니다. 조선에서 생산된 1,670만석 중 890만석이 일본으로 보내졌는데, 군산항을 통해 가져간 것이 60%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조선에서 생산된 쌀의 절반 이상을 일제가 수탈하는 바람에 조선 사람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군산에는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슬픈 역사의 기억임에 분명하지만, 이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당시 군산에서 포목상으로 큰 돈을 벌었던 히로쓰 가옥, 일본식 건물 형태를 띠고 있는 동국사, 군산세관 등 유서깊은 역사적 장소가 많습니다.
히로쓰 가옥 전경1
히로쓰 가옥 전경2
동국사 가는 길
동국사 대웅전
일본식 종이 설치되어 있는 종각
군산 세관 옛 건물
군산 유명빵집 이성당
황제 해물보쌈
한국 GM군산공장 사태를 보면서 군산의 슬픈 역사를 떠올렸습니다. 잘 해결되어 아무도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