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2017.6.30(53,648걸음)
오늘은 몰리나세카에서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까지 걸었다.
어제 우리가 묵은 숙소는 우리 둘만 잔 것이 분명하다.
새벽에 나와 보니 정문이 잠겨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다.
당췌 사람도 없고 문은 잠기고, 한참을 당황해 출구를 찾아보았지만, 잠긴 이 문 말고는 나갈 곳이 없다.
건물 전체에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으니 우리가 알아서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문이 안에서도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불도 어디서 켜는지 몰라서 핸드폰 조명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보는데 정말로 아무도 없다.
다행히 남편이 방키에 알 수 없는 키가 하나더 있었다는 것이 생각나서 다시 방키를 가지고 와서 나머지 키로 문을 열어보니 열린다.
아마도 어제 우리에게 키를 주면서 그걸 설명해주었을텐데 주의깊게 듣지 않고는 아침에 엄청 당황했다.
산티아고 길에 있는 알베르게는 보통 주민들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저녁에 그들도 각자 집에 가서 잠을 자는지 방키와 현관 키를 같이 줄 때가 있다.
일명 호텔이라고 되어 있던 숙소였어서 예상은 못했지만 언제나 기억해둬야 할 사항인 듯하다.
이 호텔은 레스토랑의 음식도 저렴하지만 아주 맛있고, 숙소는 깨끗하고 좋다.
그런데도 마을 끝에 있는 관계로 이렇게나 투숙객이 없는 것은 참 안타까웠다.
어제보니 레스토랑 손님은 엄청 많던데...
아무튼 우리는 이곳에서 잘 먹고 잘 잤으니 기념사진을 남기고 출발하기로.
어제 우리도 한 마을 더 가려고 하다가 맛있는 음식에 끌려 더 걷지 않았었는데, 비를 뚫고 꽤 많은 사람들이 다음 마을까지 걷는 걸 봤었다.
아마도 이렇게 아름다운 성이 있는 이 마을이 전 마을보다 규모도 크고 해서 그렇게들 더 걸어온 듯하다.
성이 크고 분위기도 좋아서, 성을 잘 볼 수 있는 장소에 카페도 많이 있었다.
우리도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일본인 부부가 지나가다가 우리 사진을 찍어 주어 같이 찍은 사진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시크하게 좋은 여행 되라고 인사하고 각자의 길을 나서는 것이 산티아고의 풍경이다.
레옹을 지나고부터 변화된 모습이 많다.
우선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지만 또 다른 변화는 목적지 외에 중간 중간에 있는 마을이 꽤 좋다는 것이다.
초반에 걸을 때는 중간에 있는 마을은 알베르게 외에는 식당도 바도 주민이 사는 집도 거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작은 마을도 예쁘게 꾸며져 있고, 편의 시설도 꽤 갖추어져 있다.
아마도 순례자가 많으니 목적지 마을에 숙소가 없는 경우도 생기니 목적지 전 마을이나 다음 마을에 순례자들이 묵기도 하고, 사람이 많으니 각양 각색의 형태로 여행을 즐기다 보니 조금 걷는 사람도 많고 많이 걷는 사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마을마다 머물기에 적합해서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순례자들의 부담을 많이 덜어준다.
성이 있던 이 마을은 아까 말했듯이 매우 큰 도시이다.
우리도 이 도시에서 할 일이 있었다.
은행을 찾아서 돈을 찾아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여행을 할 때 한국에서 경비를 거의 환전해서 그걸 복대에 넣고 옷 안에 차고 다녔다.
큰 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행 중에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기 때문에, 돈과 여권을 철통 보안을 위지하며 애지중지 가지고 다닌다.
우리도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에는 복대를 차고 다녔다.
여행을 다닐 때 우리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큰 돈은 가지고 다니지 않지만 여권을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복대에 여권과 신용카드를 넣고 차고 다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복대 차는 것이 너무 불편해서 그냥 안차고 다닌다.
게다가 산티아고 길은 여러가지로 안전해서 여권도 그냥 가방에 넣고, 돈도 지갑에 넣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산티아고에서는 경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아서 전처럼 500유로 정도 찾아서 가지고 다녔더니 열흘도 넘게 썼다.
어쨌든 어제 생각지도 않게 밥도 잘 먹고, 잠도 좀 비싼데서 자는 바람에 경비가 떨어져서 은행을 찾아야 했다.
구글 지도는 데이터를 안 쓰기 때문에 볼 수 없고, 맵스미라는 지도로 은행을 찾아야 했다.
한참을 길을 헤매고 있는데, 어김없이 스페인 할아버지가 다가오셔서 도와주겠다고 하신다.
역시나 할아버지는 스페인 말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은행을 찾는다는 말도 겨우 알아들으셨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하시고는 우리를 아예 은행 앞에 데려다주셨다.
너무 고마워 “그라시아스”를 연발했는데, 할아버지는 우리가 은행 일을 보고 다시 산티아고 길을 찾아가는 방법까지 알려주셨다.
도시 중심까지 꽤 많이 걸어온 터라 할아버지의 설명이 꽤 길었다.
하지만 내가 요즘 원체 눈치로 스페인말을 잘 알아듣고 있어서 긴 설명이지만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설명은 “다시 산티아고 길을 찾아가기는 길이 복잡하니까, 저 쪽에 나 있는 길을 따라서 한참을 계속 가라. 한참을 가다보면 반드시 산티아고 길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정말로 우리는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길로 아주 오래 걸었다.
두어 시간을 걸어도 산티아고 길이 나오지 않아서 혹시 잘못 알아들었나 하는 걱정도 되었지만, 스페인 할아버지는 산티아고 길에 대한 자부심이 많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한 터라 믿고 계속 직진을 했더니, 거짓말처럼 산티아고 길이 나왔다.
사실 중간에 한번 다른 아저씨에게 물었는데, 그 아저씨는 영어를 조금 하시는데 “요 옆에 산티아고 길이 있지만 거길 찾아가기가 너무 복잡하다. 그러니 그냥 이 길로 계속 직진해서 가라.”라고 할아버지랑 똑같이 얘기를 하셨다.
계속 주택가라서 적당히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카페도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대형 마트에 들어가서 바나나와 물을 사서 길가 벤치에 앉아서 아침을 해결해야 했다.
이렇게 예쁜 주택가를 두어 시간 걸어가야 했는데, 며칠 비와 바람으로 흐렸던 날씨가 개이면서 예쁜 무지개도 보여주어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도 구름은 쉽게 걷히지 않아서 걷는 내내 구름 그늘로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산티아고 길에서 신기한 경험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워낙 집도 나무도 아무 것도 없는 끝없는 지평선만 펼쳐진 평지를 걷다보니 이렇게 구름이 그늘을 드리워준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로 하늘에 우리와 관계없이 떠 있는 구름이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눈 앞에 구름 그늘이 보인다고 그곳으로 뛰어가 그늘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뛰어가 보면 다시 저 앞으로 그늘이 도망간 것 같다.
그러나 내 머리 위를 지나가던 구름은 살짝 그늘을 만들어 주면 너무 반갑고 시원하다.
아마도 우리나라 여름 더위와 스페인의 여름 더위가 다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구름 그늘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습하게 더워서 그늘에 들어가도 그렇게 시원하다는 느낌이 많지 않지만, 스페인의 여름은 습하지가 않아서 작아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금방 시원함을 느낀다.
그래서 지나가는 구름이 살짝 만들어주는 그늘도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하염없이 걸을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길은 지름길이었다.
그래서 우리보다 앞서간 한국 사람들 보다 우리가 한시간 정도 목적지에 먼저 도착했다.
이쯤 되었을 때 우리는 정말로 걷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초반에는 더위와 배고픔과 다리 아픔으로 지치고 지쳐서 100미터까지 카운트해가며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이제는 다음이 목적지 마을이라는 것을 알면 더 갈까 말까를 고민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직 힘도 남은 거 같고, 전보다 항상 너무 일찍 도착하고, 아직도 걷는 게 재미있어서 마냥 걷고 싶고 그랬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
)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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