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루토에 와서부터는 하루에 20킬로 이상 걷지도 않는데 몸은 매우 피곤하다. 아마도 복잡한 관광지 탓일 것이다.
일찍 숙소에 들어와 있다가 출출한 생각에 뭔가 먹을 거리를 사러 다시 나왔다.
포루투갈에서는 슈퍼가 잘 안 보인다. 호텔 카운터에 물으니 작은 슈퍼가 있다고 해서 알려준 대로 찾아가는데, 꼬불꼬불 가는 길에 주의깊게 안 보면 그냥 스쳐지나갈 정도로 작은 슈퍼가 하나 있따.
여기서 포루투갈 와인인 포루토 와인을 샀다. 다른 와인과 달리 돗수가 19.5도로 높다.
정어리 한캔과 땅콩을 사서 호텔에 들어와 먹었다. 소주 정도의 돗수가 되는 술을 와인 먹듯 먹으니 금방 취한다.
그래서 꽤나 술을 잘 마시는 우리 둘이 이날 이 포루토 와인 한병을 다 못 먹었다.
이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남편이 홀짝홀짝 집에 오는 날까지 마셨다.ㅋ
대부분 스페인 말만 하는 스페인 사람과 달리 포루투갈 사람들은 영어도 꽤 잘한다.
텔레비젼에 영어 채널도 많고, 관광객도 많이 와서 그런진 잘 모르겠지만 조그만 슈퍼 아저씨까지도 영어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를 대부분한다.
그래서 스페인보다 의사소통은 쉬워 관광하기는 좋았지만, 생각보다 물가도 안 싸고 복잡한 포루투갈이었다.
와인이 돗수가 높아서였을까, 은근 취기가 올라오면서 갑자기 달라진 여행 속도에 몸도 지치고 어제까지 걸었던 산티아고가 벌써 그리워져, 친구들의 SNS를 둘러보았다.

느리게 걷는 독일인 옌스의 페이스북에서 반가운 얼굴을 봤다.
미국 유타에서 온 에릭과 폴라이다. 이들은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는 커플이다. 둘다 예쁘장하게 생긴 신혼 커플이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같이 걸어왔는데, 레옹부터 보이질 않아 궁금했었는데, 뒤로 쳐져 걷고 있었나 보다. 천천히 걸어 우리보다 많이 뒤쳐진 옌스와 함께 걷는 걸 보면...
폴라가 내가 베드 버그에 물렸을 때 며칠 동안 나만 보면 베드 버그의 대처법에 대해서 계속 말해줬던 기억도 난다.
추운지 커플 핑크 남방 위에 두터운 자켓을 입었다. 폴라의 발바닥에 잡힌 물집은 괜찮은지, 에릭이 자꾸 무릎이 아프다고 했는데 걷는데 힘들진 않았는지 여러 가지로 궁금했다.
곧 그들도 산티아고에 도착하겠지?
정말 너무 오래 보이지 않아 집에 갔는 줄 알았는데, 뒤따라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뻤다. 꼭 완주 하시게~
그리고 이번에 안 건데, 외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면 꼭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해야 나중에도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다. 옌스가 우리와 페북 친구를 맺고 계속 연락이 되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소중한 일이었다.

산티아고길 초반에 오는 사람들은 이 해바라기를 본다고 한다. 완전 부럽다.
우리가 지날 때는 꽃몽우리만 있었는데, 이렇게 활짝 일제히 펴서 힘들게 걷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단다.
와~ 나도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가 보고 싶다.
산티아고는 어느 시기에 걷었는지에 따라 다른 기억을 갖게 되는 길이다.
우리가 걸었던 6월은 태양이 뜨겁게 높게 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비도 오지 않는 시기였다. 보리와 밀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어서 황금 들녘을 볼 수 있는 시기이다. 매일 더위와 갈증으로 맥주도 물처럼 느껴지고 콜라가 생명수처럼 느껴지는 시기였다.
우리와 다른 시기에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멋진 광경을 보며 걸었을 것이다. 해바라기든, 양귀비든, 눈덮힌 길이든, 비 때문에 질척한 길이든, 나름 힘들고 나름 추억할 수 있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한국인 젊은 친구인 공석찬씨가 첫날 생장에서 출발하는 설렘을 담은 사진에서 또 반가운 얼굴을 봤다.
이들도 에릭과 폴라이다. 우리와 만나기 전의 그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예쁜 커플이라 이 사람 저 사람 카메라에 잘 담기나 보다.
그들도 얼굴에 설렘이 가득하다.
폴라는 어리둥절한 얼굴이고 에릭은 약간 얼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재밌다.
그래도 그들도 산티아고까지 걸어오고 있다.
아마 우리도 처음에는 이렇게 어리둥절해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첫날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걸어온다.

한참을 친구들의 SNS을 보면서 꿈같은 산티아고 길을 회상했다.
겨우 이틀만에 이렇게 한없이 그리워지다니....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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