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70~80년대생 중 어릴적 삼국지에 깊게 빠져 보지 않은 분을 찾기란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삼국지연의는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친 문학입니다. 아니, 사실 중국보다 훨씬 인기가 좋은 것이 바로 삼국지입니다. 그리고 원작자의 의도대로 많은 분들이 촉나라의 팬이 되었고, 유비, 제갈량, 관우, 조운 등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죠. 물론 이후론 조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말입니다.
저 역시 순진하게(?) 촉나라를 참 좋아라했었습니다. 이문열 삼국지만 3번을 정독했고 수많은 게임 등을 통해 인물과 무기 등을 외우고 PC통신을 통해 (인터넷 아님 주의) 삼퀴라 불리는 삼국지 퀴즈에 열을 올렸죠.
그러다 성인이 되어 삼국지 유적을 찾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비가 죽은 백제성을 갔고, 오늘 소개하는 당시 촉나라의 수도이기도 했던 바로 성도
바로 이 성도에는 유비의 묘가 있습니다. 제갈량 공명을 모시는 무후사와 함께 말이죠.
이 곳에는 제갈량과 함께 유비, 관우, 장비의 형상이 있고 중국인들도 이 곳을 찾아 그들을 기립니다. 중국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삼국지 자체의 인기는 우리나라보다 시들합니다.
아래는 제갈량이 각종 전술과 국정을 홀로 고민하던 바로 그 연못, 공명원의 모습입니다. 저도 이 곳을 걸으며 그 간의 고민들에 대한 고민을 해보았지요.
그리고 유비의 묘는 상당히 큽니다. 당시에 광각렌즈와 카메라를 가지고 가질 않았던 게 아쉽기도 했지만 있었어도 다 담기 힘들었을 것 같네요. 묘 주변에 쳐진 돌담 때문에 드론이나 항공샷으로만 전체를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비의 사후,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였으나, 당연히 유선에게 황제 자리가 넘어갔고, 유선은 제갈량에 의지하여 정치를 했습니다. 위 정벌을 위한 두번째 출사표를 올린 제갈량은 결국 위나라를 정벌하지 못하고 오장원에 지는 별이 되었지요.
이후 촉한이 멸망당하고 대부분의 후손들이 몰살당했으나, 유선의 동생인 유영의 손자 유현이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여행은 2014년 가을에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재구성한 것으로 제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던 링크도 남겨봅니다.
무후사 후기 https://jino.me/2710
유비의 묘 후기 https://jino.me/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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