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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전화를 놓쳤다.
단톡방에 대답을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도 안 받으니
이번엔 문자를 보낸다. 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부회장질 못해먹겠다고
투정이다.
내일 주말에 도담삼봉을 다녀오기로 했다고 공지가 뜬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여지껏 답을 안 보냈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일 년에 봄, 가을 두 번씩 만나는 코흘리개 친구들이다.
봄에는 고향에서 모이기에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빠져나오지만
가을 모임에는 버스를 대절해서 하루를 온전히 비워야하니 노환이
있으신 어른을 모신 내 입장에서는 엄두를 못 낼 일이다.
그래도 성의는 보여야겠기에 회비를 입금하고 약간의 찬조금을 함께
보내며 즐겁게 다녀오라고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어느새 서운함이
모여 온다.
수십 년 세월을 건너 모임을 갖기로 하고 졸업하던 6학년 교실
자기가 앉았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처음엔 얼굴과 이름이 연결이
되지 않아 명찰을 달고 서로를 확인하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데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언제 만나도 반갑기도 하고 무엇보다 허물없이
편안하다. 봄이면 학교 뒷동산에서 도시락을 먹고 진달래를 꺾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수업이 끝난 적도 있었고 근처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으면 짓궂은 남자애들이 여자애들 옷을 숨기고
달아나서 입술이 새파랗게 되어 떨면서도 부끄러워 못 나오고 울던
얘기들이 점점 높아지는 웃음소리를 자아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중학교까지 함께 다니고 고등학교부터 헤어졌지만
일부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일찌감치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이면
서울로 유학을 갔다. 어쩌다 방학에 만나면 뭔가 알 수 없는 거리감에
서먹하기도 했었다.
그 유학파들이나 다른 사정으로 전학을 갔던 친구들이 졸업한 학교에서
모임을 갖지 않고 하나하나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시절 추억에 사로잡혀 살았다는 말에 감동했다.
우리는 그 친구들을 연어라고 불렀다. 그렇게 돌아온 연어들은 하나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잘 어울리고 있다. 대부분 모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며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연어가 부회장을 맡으면서 모임 때마다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성의를 보이며 어느 때보다 끈끈한 우의를 보이고 있다.
내일 떠나는 친구들 잘 다녀오기를 바라며 건강하게 오래 오래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