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구두
어느 삶이나 후회는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일을 하게 된
나는 아들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아들과 놀고 싶은 시간에 고객의
얘기를 들어야 했다.
문구점을 했던 나는 일주일에 몇 번씩 도매시장을 다니고 가게에서
직접 판매를 하고 납품도 다녀야 했다. 한 번은 연 이틀을 두고
물건을 하러 다니느라 아들 얼굴도 잠들었을 때나 겨우 보게 되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음 날에 외숙모님께서 세상을 뜨셔서
저녁에 세브란스병원 영안실로 문상을 가야했다.
며칠 만에 보는 엄마가 또 외출차림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자
아들은 울먹거렸다.
“엄마 또 서울 가?”
그러더니 신발장을 열고 하얀 구두를 꺼내 발 앞에 놓아준다.
“엄마 그러면 이 구두 신고 가...”
아들의 말소리까지 어느새 눈물이 흘러넘쳤다.
울고 있는 아들을 품에 꼭 안고 쓰다듬어주며 말 했다.
“엄마 우리 예쁜 아들이 꺼내준 구두 신고 잘 갔다올게.
할아버지 할머니랑 잘 놀고 있어...“
그 말을 하면서 목이 메었다.
만일 내가 다시 돌아오지 못 하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될까...
다음날 새벽 발인을 마치고 일찍 서둘러 오는 길은 혼잡했다.
정차 할 때마다 십년이 지나가는 듯했다. 구두를 꺼내주던
아들의 얼굴이 떠올라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일어서서
밖을 내다보며 애를 태웠다.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에서 집까지 한 걸음에 달려왔다.
대문 여는 소리에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를 부르며 쫓아 나온
아들을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한참이나 그 자리에 있었다.
발뒤꿈치 쪽이 화끈 거렸다.
구두 안쪽에 빨간 얼룩이 생겼고 화끈 거리던 자리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 까만 딱지가 더 오래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