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 작가는 작가나 교수보다는
옆집 할아버지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저자소개에 거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작가의 사진이 있었는데
인상이 참 푸근해 보였다.
나에게도 이런 할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근후 작가의 책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에 이어
두 번째다.
첫 번째 책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기에
그의 인생 마인드를 더 귀담아 듣고 싶어
작가의 이름을 믿고 바로 빌려왔다.

이 책은
1부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 (25세까지)
2부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50세까지)
3부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75세까지)
4부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로
구성되어 있다.
“스무 살이든 일흔 살이든 우리는 이미
이 순간부터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 여기서
행복하길 원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입니다.”
책 표지에 쓰여진 말처럼,
이 책은 작가가 각 나이대의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편지글로 담았다.
#1 (p.141)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녀를 키웁니다.
나에게 충분했던 것이 자녀에게 모자랄 수도 있고,
나에게 모자랐던 것이 자녀에게는
넘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부모의 경험이
자녀에게는 또 다른 구속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관심이란,
무엇을 해주는가 보다 무엇을 원하는 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둘째녀석의 두 번째 돌 촬영이 있었다.
일부러 컨디션이 좋을 때로
촬영시간을 잡았는데
생각보다 안 웃는 것이었다.
사진기사님이 나에게
“얘는 뭘 좋아해요?”라고 묻는데
순간 내 머리가 멍해졌다.
‘얘는 뭘 좋아하더라....?’
나는 그래도 두 녀석에 대해
어느정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뭘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나를 보니
그 자부심은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가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너에게 이런 사랑을 주면 넌 만족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무언가를 해주려고만 했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첫째녀석에게 물어본 적도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관심이란, 무엇을 해주는가 보다
무엇을 원하는 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에 사무치는 글귀다.
이 글귀를 보며
나의 육아는 어떤지 자주 되돌아 봐야겠다.
#2 (p.158)
잘 대해준다는 것은 언제나 내 관점보다
상대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당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주장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면 강요와 억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기 전에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또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받아들이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면 알게 됩니다.
#3 (p.192)
어차피 나이란 거부한다고 안 먹는 것도 아니며,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나이는 계속 들어갑니다.
조금 더 젊게 보일 수는 있어도
나이를 안 먹을 수는 없죠.
같은 이치로 정년은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지,
노화로 결정되는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닥치는 현실일 뿐입니다.
정년의 나이가 되면
일에서 물러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누구에게나 닥치는 현실인데도,
내가 늙어서 쓸모가 없어져 나가야 하는구나 란
생각이 더 들 것 같다.
정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정년은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지, 라는
노화로 결정되는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닥치는 현실일 뿐입니다.”
글귀가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p.215) <인생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합니다>
과거는 후회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지금을 비추는 반면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후회가 집착이 되어 내 탓이라는 감정으로
굳으면 더 힘들어집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생각하면 걱정되지 않는 미래가 어디 있겠습니까?
거기에만 온통 매달린다면 이 또한 힘듭니다.
어떠한 경우든 우리에게는
‘지금 여기’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장성오의 <화내는 엄마, 눈치보는 아이> 책에
‘어니젤란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는 라고 쓰여 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결국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걱정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그런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 전엔 항상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에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네’ 라는 위안을 받으려는
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이 많아지다 보면
아무것도 안하면서
괜한 걱정만 하다 보낼 때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행동으로 옮겨보면
내가 상상했던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걱정만으로 보낸 하루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을 하며 지나가는 이 시간도
내 인생의 가장 젊을 시간이었을 텐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