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부모는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김선현의 '너에게 행복을 선물할게
(하루 10분 엄마 미술관)‘라는 책에 인용된 문구다.
이 문구가 너무 와 닿았다.
그래서 이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용된 글만 봤을 때
이 책은 아이를 키우며 가져야 할
부모의 가치관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늙어감이 결코 우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잘 늙어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1 (p.21 - 22) <뭐가 그리 억울한가>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뜰 때마다 신기하다.
주위에는 밤에 자다가 세상을 떠난
동창이나 선후배가 많다.
나또한 내일이 반드시 예약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와! 눈떳구나! 하하하’ 하고
쾌재가 터져나온다.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간다고 억울해 하지 마라.
제대로 살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나이 들었다고
후회하지 마라.
누가 뭐래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살았고 일했고 즐겼다.
지금 내 나이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 더 급하다.
내가 쓸 수 있는 인생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다.
눈을 뜨면 쾌재가 터져나온다니...
아직은 살 날이 더 많은 나에게 이 말은 충격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당연히 눈 뜨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기에 더 그랬다.
눈을 뜨는 것조차도 나이가 들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고
어떠한 것이라도 당연하게만 느끼지 않는다면
고마울 일들이 참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영옥의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나이와 행복의 관계를 조사하면
늘 60-70대 노인들이 더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왜?
노인들은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좋은 소식을 들어도 지나치게 요란 떨지 않고,
불행한 일이 일어나도 모든 것이 지나가리라는 말을
되새기며 기다릴 줄 안다.
살아갈 시간이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시간 시야는 확실히 좁아진다.
노인들이 행복한 건 그 때문이다.
시간 시야가 좁아진다는 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는 말이
왜그리도 와 닿는지...
그러고 보면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은 것 같다.
#2 (p.62)
나이가 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보인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고
젊은 날을 아쉬워하는 것은
바로 그런 깨달음의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젊은 날에 알았다면
정말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완벽한 삶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내 답은 ‘아니오’다.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청년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청년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의 가장 큰 미덕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미래가 있다는 것 두 가지다.
그 무지함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된다.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다르게 행동 했을까?’
내 대답은 ‘아니오’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정답을 알고 돌아간다해도
나란 사람은 아마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과거라는 건
내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좋게 또는 나쁘게 해석되는 건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던 일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 무지함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그렇기에 오늘도 앞을 향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는 용기가 된다.”
달려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3 (p.103)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쏟아 부은 정성을 희생으로 여긴다.
아이를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하면서
억울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인이 되어 홀로 자신의 생활을 해
나갈 때까지 돌보는 것이 부모의 도리다.
이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지 희생이 아니다.
그리고 자녀는 나의 분신이 아니다.
자녀는 자녀가 가진 인격 수준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독립적인 단위다.
#4 (p.134)
부모 자식과의 관계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우리는 내가 느낀 것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어긋나면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고
오해를 품게 된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모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상대의 감정에 이입해 생각하는 것이 공감이다.
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배려다.
법륜 스님의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의
<착각,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마음의 작용> 편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내가 그리고 있는 상대의 모습,
이것은 허상입니다.
내가 ‘이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상대의 모습은
내 생각 속에만 존재합니다.
남편이 10시에 들어오면 10시에 들어오는구나,
술 마시고 오면 술 마셨구나, 하고
실제 있는 그대로 보면 되는데,
그것을 자기가 원하는 기준대로 보니까
다 틀어져 보이는 겁니다.
(중략) 술 먹는 행위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각자 보는 입장에 따라 좋고 나쁠 뿐입니다.
상대방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보는 자기의 문제인 거에요”
그러고보면 내 맘대로 그림을 그려놓고..
상대방이 내 생각대로 해주지 않으면
괜히 서운해하다가 미워하는 감정마저
비집고 올라왔던 것 같다.
원하는 게 있으면 상대방이
당연히 내 맘을 알아주겠거니 생각했는데
이제는 원하는 바를 표현해야겠다.
되도록 말로 말이다.
문자는 상대방의 표정과 어감을 알 수 없기에
오해의 소지가 많으니까.
내가 댓글에 ‘ㅋ’'ㅎ‘를 많이 붙이는 이유도 그러하다.
‘진심 즐거워요~, 농담이에요~’하는 의미로
많이 달기도 하니
너무 헤헤거린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주시길 바란다.^^;
#5 (p.305)
사회에서 영원한 자리는 없다.
직장인도 정년이 있고
무림의 고수도 칼을 꺾을 때가 있으며
밀림의 왕 사자도 이빨이 무뎌지면
젊은 사자에게 자리를 내놓는다.
그게 패배는 아니다.
자연계의 이치고 흐름이다.
회사에 다닐 때 농담인지 진담인지
‘나는 딱 10년만 채우고 관둘거야’,
‘난 45세가 되면 명퇴해야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의 위치에서는 내 맘대로 관두거나
계속 일하거나 하는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년의 나이가 되어
선택의 여지없이 곧 회사와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아~ 후련하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하는 동안에는 힘들어 관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막상 정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면
후련한 마음 보다는 내 가치가 없어진 것 같고
허탈한 생각이 더 들 것 같다.
이것이 자연계의 이치고 흐름인 줄 알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 퇴직 후의 삶에 대해
준비를 한다면 좀 덜 우울하려나.
되도록이면 정년이 늘어 더 붙어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녀석을 낳고나서 늙고 있음을 느낀다.
첫째녀석을 낳았을 때만해도
잘만 보면 싱그러움이런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언뜻봐도 아줌마다.
늙어보이고 늙는다는게 두렵고 싫었다.
노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단순히 약하고 힘없는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늙는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수 있겠구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는지가
중요한 것이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