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이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 그렇게 살아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프롤로그에는
“50-60대가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라고 쓰여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다.
(중략) 50-60대란 나이는 자기를 감추고
조용히 구석에 묻혀 살기에는 너무도 젊다.
또 남은 인생이 길다.
이 위기의 시기를 상처받지 않고 견뎌내려면,
더 적극적으로 보람을 찾으려면
가장 먼저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50-60대가
당당하게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을
경험과 사례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보다시피
50-60대의 독자를 위해 쓰여졌다.
현재 중년의 나이를 보내고 있는 작가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독자에게
“우린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나이들어간다고 주눅들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당당하게 살아야 된다”는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어서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뒤돌아 볼 틈이 없다.
더 늦기 전에 앞으로 펼쳐질 노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비결을 얻어야 한다.
그 비결은 우리보다 앞서서
노년을 경험하고 있는 선배들에게서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길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찾아야 한다.”
- 본문 내용 중에서 -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은 이유이다.
“길은 뒤가 아니라 앞에서 찾아야 한다.”그리고 주변에서 노년에 대한 얘기를
해줄 선배가 없다면 책을 통해서라도
간접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1 (p.37)
은퇴하고 조용히, 정말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다면 이런 얘기들이 다 소용없다.
하지만 50대라는 나이가, 아니, 60대, 70대도
그냥 어느 구석에 틀어박혀
조용히만 살기에는 너무 젋다.
조용히 산다고 했다가도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일반인의 심리다.
“60대, 70대도 그냥 어느 구석에 틀어박혀
조용히만 살기에는 너무 젋다.”
이 말을 보면 60대는 그렇다 쳐도
70대가 젊다고? 라고 의아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유발 하라리 작가의 <호모데우스>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20세기에 기대수명이 40세에서 70세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으니, 21세기에는 적어도
그 두 배인 150세까지는 거뜬하지 않을까.
(중략) 그러면 진로는 어떻게 될까?
오늘날 우리는 10대와 20대에
직업 교육을 받고
그런 다음 해당 분야의 일을 하며
나머지 인생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물론 40대와 50대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지만 인생은 일반적으로
배움의 시기와 일하는 시기로 나뉜다.
그런데 150세까지 살게 되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신기술이 끊임없이 요동치는 세계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들은 훨씬 더 오래 일할 것이고
90세에도 자기계발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지 않을까.
지금 당장 150세까지는 아닐지라도
100세에서 120세까지 산다고 하면
70세의 경우 30년 - 50년이나
더 살아야 한다.
30 - 50년을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다.
내가 어릴 때만해도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환갑의 나이가 되면 동네사람들까지
다 불러 모아놓고 잔치를 열었었다.
그때는 그 정도 나이면 오래 사신거라며
축하 잔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환갑이라고해서
큰 잔치까지 벌이는 집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는 "사람이 70살 사는 이,
예로부터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는
시가 있듯이 70살 된 노인을 보기 드물어
환갑만 살아도 큰 경사로 여겨서,
사람들이 환갑상에 놓은 밤·대추를 얻어다가
자손들에게 먹이면서 장수하기를 빌었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길어진 오늘날에는
환갑이 점차 의의를 상실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오늘날,
환갑이 의의를 상실한 것처럼
고희연 또한 점차 의의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2 (p.61)
노안이 된 것을 무척이나 성가셔하고
실망스러워 하던 남편이 어느 날
밝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하느님이 나이 들면 왜 노안이 되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아”
(중략) “나이가 들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섭리지.
나이 들어서는 작은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크게 봐야 한다고 그냥 말로만 하면
사람들이 안 들어 먹을 거 아냐.
그래서 아예 작은 것은 못보고
큰 것만 볼 수 있게 만들어 버린 거야.
그런 하느님의 섭리가 노안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그러니 노안은 곧 가까운 것, 작은 것을
못 보는 눈이 아니라 큰 것,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지.
이런 눈을 부여 받은 것을
오히려 감사해야 하잖아.
역시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해”
“역시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해”를 보니
정철 작가의 <내 머리 사용법>이란
책 내용 하나가 떠올랐다.
“<하느님의 깊은 뜻>
하느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쉽게 눈에 띄게 해 놓으셨습니다.
누가 키가 크고 작은지,
누가 피부색이 검고 하얀지,
누가 얼굴이 예쁘고 못생겼는지,
누가 몸매가 날씬하고 뚱뚱한지.
이런 것들은 한번 쓱 보면
그냥 알 수 있게 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누가 마음이 따뜻하고 차가운지는
금방 알 수 없게 해놓으셨습니다.
오래 만나며 마음을 주고받지 않으면
알 수 없게 해 놓으셨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깊이 감춰놓으신
하느님의 깊은 뜻,
우리는 잘 헤아리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안이나 늙어감 또한
하느님의 깊은 뜻이라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
소중한 것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하루를 덜 억울하게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3 (p.177) <딸에게 주고 싶은 것>
열심히 간직해야 하는 것은
값비싼 것만이 아니다.
살림은 줄이되 세월이 지나면
다시는 구할 수 없는 것은 간직해야 한다.
결혼할 때도 예식비나 장롱, 냉장고 사는 데
많은 돈을 쓸 일이 아니다.
여력이 있다면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는 데는 투자할 필요가 있다.
세간은 망가지면 버리고 새것을 사도 된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을 담은,
추억을 담은 물건은
다시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자녀가 있다면 그들에게
무엇을 기념으로 물려줄 것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몇 달 후 복직을 앞두고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문득 “첫째녀석은 집에 있을 때
자기꺼 사진(돌 이전의 사진)을
몇 번이나 꺼내 보더라” 라고
아빠가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동안 방치되어 쌓여만 가는 사진들이
이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번 기회에 사진앨범을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살, 3살, 4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첫째녀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좋아하지 않을까?
#4 (p.186)
내가 걸어온 그 길들로 인해
오늘의 내가 살고 있다.
다시 시작해도 그 길들을
그대로 걸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모습이니까.
그래도 혹시 내려놓지 못할 회한이 있다면
그 기억으로 미래를 비춰야 한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닥쳐올 미래이니까.
“그래도 혹시 내려놓지 못할 회한이 있다면
그 기억으로 미래를 비춰야 한다.”
이 말이 참 와 닿았다.
그 기억으로 미래를 비춰야 한다니...
마리안느 윌리엄슨은
“과거의 상처는
과거에 연연한다고 아물지 않는다.
현재에 충실할 때에야 치유되는 법이다.”
라고 말했다.
에이미 모린의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책에서는
나쁜 기억이 떠오른다면
그 일로 얻은 교훈만 생각하라고 한다.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면
그 일로 배운 것만 생각한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내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쁜 변화만은 아닐 수도 있다.
잘못된 대우를 받는 동안
자기주장을 하는 법을 배웠을 수도 있고,
연인 관계를 지속하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배웠을 수도 있다.
사람은 가장 힘든 시기에
인생 최고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과거의 상처든,
과거에 후회되는 일이든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과거에만 연연해하며 살아가기엔
그런 상처와 아픔만 기억하기엔
살아갈 날이 충분히 많이 남아있고,
살아가면서 아픔은
그 어떠한 즐거움이나 기쁨으로
메워질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쁜 생각에만 사로잡혀
보내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충분히 즐거움을 줄 수도
행복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5 (p.224)
주변을 돌아보면 건강하게, 아름답게
연세드신 분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가끔 스스로 나이 먹었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거나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질 때면
그런 분들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내가 얼마나 젊고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50 - 60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작가처럼 당당하게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