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처음으로 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국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친구의 말을 듣고
“나 기억을 잃어버렸어~” 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나는 서로 낄낄대며 웃고
다시 수업은 시작 되었다.
국어선생님은 수업시작과 동시에
나의 대답을 가지고 지적을 하기 시작했다.
“기억은 잃어버리는 게 아니고
잊어버리는 거지!!”
그러면서 ‘잃다’와 ‘잊다’의 사례를
몇 가지 들어주셨다.
선생님의 말씀 이후로 1시간이
인생에서 참 길게 느껴졌다.
나는 수업시간 내내
선생님 얼굴도 못 쳐다보고
‘아...그냥 까먹었다고 말할 걸...
왜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말해가지고....’를
되뇌이며 자책과 반성만 거듭하고 있었다.
내가 한글 맞춤법에 대해
잠재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때부터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맞춤법보다는
이기호 작가의 <세살버릇 여름까지 간다>의
책에서처럼 한글을 이용한
신선한 표현이라든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책에서처럼
한글의 의미를 풀이해주며
한글이 주는 감동을 전해주는 책이
참 좋았다.
‘우리말 선물’
이 책 또한 내가 모르고 있던 한글에 대한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 같아
읽어보기로 했다.

"우리말에는 선조들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야말로 보물이고 선물인 셈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 보물을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잘 느끼지 못합니다.
마치 공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좋은 생각이 담긴 우리말 표현을 되새기며
이 세상이 행복한 곳이라는 진리를
깨닫기 바랍니다.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기 바랍니다.
제가 우리말을 통해서 깨달았던 즐거움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 작가의 말 중에서 -
#1 (p.15, 18) <사랑, 너를 생각한다>
옛날 우리말에서 ‘사랑한다’는
‘생각하다’라는 의미였다.
우리 선조들은 사랑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았다.
사실 사랑하면 그 사람이 생각이
계속 나게 마련이니 ‘사랑’은 ‘생각’이
맞는 듯하다.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사랑의 기본은 생각이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연인이나 자식이 생각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부모님 생각이 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렸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무슨 색을 좋아하시는 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력이 좋은 첫째녀석은
한 번 얘기하면 보통 잘 기억해뒀다가
가끔 나를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엄마는 무슨 색 좋아해?” 라고 묻기에
“엄마는 핑크색 좋아해”라고 했더니
핑크색만 보면
“엄마가 좋아하는 핑크색이다”라고 말한다.
“공룡메카드에 나오는 공룡 중
엄마는 어떤 걸 좋아해?” 라고 묻기에
“엄마는 돌고래사우루스가 좋아”
(첫째녀석이 알아듣기 쉽도록
안킬로사우루스는 꼬리에 뿅망치를 달고 있어
뿅망치 사우루스로,
옵탈모사우루스는 돌고래를 닮아
돌고래 사우루스로,
파라사우롤로푸스는 뿔이 뒤로 길게 나있어
망치 사우루스라고 부른다.)
그 이후로는 장난감 가게에서
옵탈모사우루스가 보이면
“엄마가 좋아하는 돌고래사우루스다”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어린 녀석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기억하고
그 물건을 볼 때마다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양가 부모님께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꽤 됐음에도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
잘 알지 못한다.
으레 이것을 좋아하시겠지..
이게 필요하겠지 지레짐작하며
사드리곤 했다.
문득 사랑에는 관찰도 필요하구나 싶었다.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부담이 될 것 같으면
무엇이 필요한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등
말씀을 잘 안 하신다.
분명 음식점을 갔을 때
잘 드시던 음식이 있었을 테고,
길을 가다가 무언가를 보며
‘저거 지금 필요한데’라는 눈빛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들을 그냥 흘려보낸 건 아닌지...
첫째녀석을 보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어떤 자식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도 하게 된다.
#2 (p.20) <아름답다, 나답고 자기답다>
‘아름’을 중세 국어에서 찾아보면
‘개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그 사람답다, 나답다.’이다.
자신의 가치를 잘 발휘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귀한 생각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원래 자기다운 게
가장 아름답다는 거다.
자신을 가장 가치있게 만드는 게
아름다운 것이다.
#3 (p.34-35) <시간,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내는지 고민하라>
시간이라는 말은 때 시時와 사이 간間,
때와 때 사이를 뜻한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간은 절대적이지 않아서 그 사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에 따라서
지나가는 속도가 전혀 다르다.
(중략)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싫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시간은 참으로 괴롭고 더디게 흘러간다.
또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한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은 그 한 시간 동안에 하는 일이 많고,
어떤 사람은 하릴없이 흘려 보낸다.
누군가에게 한 시간은 너무도 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지겹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한 시간은 의미있는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시간은 의미있는 시간인가?
무의미한 시간인가?’
이진이 작가 <하루일기>의 ‘시간의 가치’편을 보면,
“1년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세요.
한 달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찾아가세요.
한 주의 가치는
신문 편집자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1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1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1000분의 1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육상선수에게 물어보세요.
운동선수의 1초를 생각한다면...
기차를 놓친 사람의 1분을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 보내는 이 시간들도
누군가가 놓친 1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지금 이렇게 여유롭게 낮잠으로
보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시간이란 잃어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기가 쉽지 않다.” 라는
글귀가 나온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가장 절실히 느끼는 건
시간의 소중함이다.
아이가 자고 있는 한두 시간이라도,
아이가 홀로 탐색을 하고 있는 몇 십분이라도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모른다.
이 시간을 잠으로 보내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TV를 보며 지내면
왜 그리도 아깝게만 느껴지는지..
그 짧은 시간도 알차게 보내려고
틈틈이 책을 읽거나
어제의 육아일기를 쓰거나
공부를 하려고 한다.
아마 육아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지나갈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육아를 하면서 느끼는
감사한 점 중 하나다.
#4 (p.139-140) <동정,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하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의 뙤약볕.
등이 90도로 굽은 할머니가
두 팔 가득 박스를 안고 걷고 있다.
할머니가 지고 가기에는 보기만 해도
힘겨워 보이는 커다란 박스를.
길가다 이런 풍경을 마주친다면 어떨까?
자신도 모르게 그 할머니가 안됐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동정하는 마음이다.
(중략) 동정의 한자는
같은 동同, 감정 정情이다.
동정은 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동정이란 말은
측은지심(불쌍히 여기는 마음)보다는
‘나라도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는
공감의 느낌이 더 맞을 것 같다.
본문 내용 중
<독선, 나만 착하고 옳다고 생각하다> 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독선, 독선적인 사람하면 먼저
안 좋은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독선은 원래 좋은 말이다.
혼자 착한 게 독선이니까.
그런데 독선이 왜 나쁠까?
자기만 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독선이 나쁜 게 아니라
나만 착하고 나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알고보면 글자 자체는 좋은 뜻임에도
안 좋은 이미지를 뒤집어 쓰고
안 좋게 활용되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5 (p.237-238) <고통, 고통과 고통 사이에 행복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통이 없는 인생은 없다.
이 고통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살 수 없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생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고통과 고통의
사이사이에는 즐거운 일들이 있다.
하루 종일, 일년내내 고통스럽기만 한
사람은 없다.
정말 끔찍하고 괴로운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웃을 일이 있고
즐거운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을 못하고
지금 이 순간 너무 고통스럽고,
내일도 이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하면
당연히 살 수가 없다.
(중략) 고통이 행복을 넘어설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 하자면
우리 인생의 51퍼센트가 고통,
49퍼센트가 행복이라고 하면
나는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 우리 인생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을
말해보라고 하면 최소한 절반 이상은
행복일 것이다.
오늘은 이 사람을 만나서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즐거울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나를 위로해주고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더 많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 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더 오래, 더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온통 불행한 것처럼 생각된다.
서천석 선생님의
<서천석의 마음을 읽는 시간> 이라는 책에서,
“삶에서 불행은 한꺼번에 들이닥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불행한 일이 벌어진 순간에도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은 존재합니다.
경기에는 졌지만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길수도 있고,
친구에게 좋은 선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팀에서
스카우트를 제안받을 수도 있고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던 가수가
새로운 음반을 내는 것도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위안을 받고
그 상황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크기의 고통을 받으면
누구나 똑같이 괴로울까요?’ 연구편에서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삶의 질은 큰 차이가 납니다.
고통을 누구나 겪게 되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길 때
우리는 고통의 와중에도
작은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항상 좋을 순 없겠지만
인생에 더 많은 좋은 순간들을
남기기 위해
과거와 미래가 어떻든
지금 웃을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인생이다.”
결국 글배우의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다> 의
글귀처럼
인생이란 항상 좋을 순 없겠지만
안 좋은 순간 보다는
좋은 순간들을 일부러라도 더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그렇게 무사히 보내다보면
불행하다는 느낌도, 고통도
어느 순간 시나브로 사라져있지 않을까.
<내일, 오지 않은 내일보다 오늘이 중요>
오늘, 어제, 그제, 모레, 글피......
때를 나타내는 순 우리말이다.
그런데 내일이라는 말만 한자어로 되어 있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라는 말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우리에겐 오지 않을 내일보다는
늘 현재가 중요하다.
- 본문 내용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