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는, ‘머리속에 마음속에 실제로 손에 든 어느것도, 내려놓고 각을 잡을 필요가’ 없이 언제든 초인종이 울리면 튀어나갈 수 있는, 바로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한다. 줄긋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눈으로 글을 따라서 읽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밥을 먹고 있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gym에서 자전거 패달을 굴리고 있다, 왕성한 다작가로도 유명한 그의 책 어느 것을 골라잡아도 나는 한 며칠 그 이야기 속에서 푹 빠져서 지낼 수 있다.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을 챙기고(?), 바자회 한 켠에 앉아서도... 사나흘 나는 아주 행복했고, 재미있었다.
[아름다운 흉기]는 그동안 작가가 그랬듯, 또다른 전문적인 분야, 스포츠 의학과 선수들의 도핑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그와 관계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가 특유의 스릴 넘치는 필치로 전개된다. 스포츠 닥터인 센도, 그가 ‘만들어 낸’ 비밀병기 타란툴라, 그리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포츠 관련인물들, 다쿠마, 준야, 유스케 그리고 쇼코. 이 인물들이 주축이 되어, 센도가 사망한 그날로부터 타란툴라의 복수극, 그 사건들의 과정 속에서 치밀하게 수사해 나가는 경찰들까지, 잘 짜놓은 판에서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순식간에 결말로 치닫는다.
추리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뭔가를 생각하고 나혼자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냥 눈을 따라 가다보면 마음도 가고 마지막에 가서는 피식 웃음이 난다. 가장 최근에 읽은 동일 작가의 책 [위험한 비너스]때도 그랬지만, 여기저기 심어 놓았던 복선들이, 결말에 다다르다 보면 어느새 떡하니 답을 내 놓듯이 독자들에게서 수긍을 이끌어낸다. 아하~그랬구나!
우리는 모두,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빛을 발하길 원하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는데, 이것만 되면 되겠는데... 도무지 그 지점에 닫지 못한다. 왜일까. 그것은 주변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고, 운이 안 따라줘서도 그럴 만 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능력이 그에 못 미치고 운동선수일 경우에는 내 신체에 어떤 자극을 가해서 내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어한다. 약이다. 나의 의지로, 노력으로 다다를 수 없는 지점으로 다다르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얻기 위해, 내 머리와 심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어떤 곳을 생물학적으로 작용시키는 어떤 물질을 통해 다다르기를 원한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편법을 이용해 최고의 자리로 올랐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올랐다. 지금이 아니라, 예전의 문제가 튀어나와 나의 현재를 위협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과거를 지우기를 원한다. 지금을 침범받지 않기 위해 예전의 것들을 지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현재에 머물며 지금의 영역에 빗장을 채운다.
이것이 [아름다운 흉기]의 그들이 맞닥들인 현실이었고, 그 현실을 영위하기 위해, 그들이 저질렀던 과거를 지우기 위해, 현실을 놓칠 수 없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잘도 그리고 있다. 멈출 수 없는 이야기... 질주하는 그들의 이기와, 거부할 수 없는, ‘그날들’에서 송곳처럼 튀어나온 위협... 타란툴라는 그들의 현재를 위협하는 과거의 치부였고, 그들이 제거해야 할 오늘의 성가시기 이를 데 없는 ‘어떤 것’이었다.
결국에는 다 죽는다. 끝까지 이기적인 인간만이 살아남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이기적인 인간들,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들은, 그들의 이기를 위해 선한 사람들을 위협한다. 어떤 세상은 그들을 닮았다. 아무리 선할지라도, 이기적이고 위협적인 인간들을 당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뻔하고 뻔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이면을 본다. 그 열린 작은 문을 통해 세상을, 이기와 선함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든 강하고 힘있는 것이 약한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야 만다.
‘무례함은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약자가 강한 척 하는 것’이라 쓴 적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주로 나약하다. [아름다운 흉기]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다 나약한 사람들이다. 도핑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그것이 족쇄가 된 삶을 살아가다가 세상에 들통 날 위기가 오자 무너지기 시작한다. 견고하지 못한 성은 적의 공격에 쉽게 무너진다. 그들의 나약한 내면이 입질도 오지 않은 낚싯대의 고요함에 반응한다. 타란툴라는 센도의 아름다운 흉기였다. 과거를 묻어버리고만 싶은 그들에게 그들의 과거 속 치부가 그대로 발현된 타란툴라는 그들에게 위협이었던 동시에 그들이 잊고만 싶었던 오래전 자신들을 침잠시켰던 나약함이기도 했다.
추리소설만 읽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다. 왜 너는 추리소설만 죽어라고 읽느냐고. 그 친구가 말했다.
재미있잖아.
우문현답(愚問賢答)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