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이 또 출장을 갔다. 꼭 나혼자 아이들이랑 섬에 남겨진 기분이다. 워낙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 뭐 그러려니 할 때도 되었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에게 엄청 의지하는 삶을 사느냐.
그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직장생활을 하고 수입을 따로 관리할 정도였고, 여기 와서도 항상 늦는
사람이고, 아이들의 학교 일, 집 알아보고 계약하는 일, 중고 가구 사서 차에 싣고 와서 집에 배치하기 등등, 거의 모든 일을 내가 알아서 하고 처리하는 편이다. 거의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고, 사업을 시작하고 부터는 주말에도 가끔 회사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서 남편의 부재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해 졌는데...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에 잠시 일어나서 아이들 봐주고, 집에 와서 잠만 자 주는 것 만으로도 남편이 우리 옆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의 안정이 되는 것 같다.
겁이 많아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해외에 나와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고, 아이들이 자라고, 이 아이들이 스스로의 인격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내는 하나의 또다른 인격체가 되고 나니, 그 아이들을 내 마음 속 내 인격에서 독립시켜야 할 시간이 되고, 또 서서히 그렇게 하다보니, 내가 내 팔로 감싸 안고 내가 따로 신경을 써서 관리해야 할, 또다른 독립체가 있다고 생각하니, 더 그러하다. 서서히 내 삶의 모습이 가닥을 잡고, 그 속에 있는 내 아이들, 그리고 내 가족... 잃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에 생긴 욕심과 두려움...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 이 곳에는 우리 네 사람 말고는 가족이 없다. 내가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애들 데리러 못가거나 둘 중 하나가 아파서 한 밤중에 응급실에라도 가야 할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실제로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작은 아이가 열이 나서 한 밤중에 큰 애를 학교에서 가까운 친구네로 피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밤을 새고, 아침에 출근한 보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큰애 데리고 학원 가고 어디가고... 힘든 날들이었다. 뭐 그런 일이 있으면 그정도 부탁하고 도와줄 친구들은 있지만, 남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편이고, 내 가족의 범위가 딱 이만큼 이라고 생각하면,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이 범위 안에서 나가면 리듬이 깨지고 문제라도 생기면 희생이 필요하게 된다. 일주일이다... 아무일 없이 잘 지내보자.
2.
예전에 인터뷰 본 곳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내가 최종 합격 되었다는 소식.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뛸 듯이 기쁘다거나, 행복하다가 아닌, '징글징글하다' 였다.
엄마라서 행복하고 엄마라서 안되는 일에 속상하고
작년 11월에 원서를 내고, 1월에 서류 합격 통보받고 인터뷰 보고, 꼬박 두달 후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인터뷰 다음에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뽑혔거나 했으면 연락이 왔을텐데, 하며 계속 긴장 상태가 유지된 탓이리라. 어제 인사과 매니저랑 pre-empoloyment 최종 면담을 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서류를 기입하고(외국인이라 이나라에서 발급하는 서류가 하나도 없어서 전부 가입하고 발급 받아야 하고, 워킹퍼밋, 워킹 비자등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서류를 작성 했다.) 1분도 안쉬고 면담에 들어갔다.
뭐랄까. 나는 벌써 영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 들었다. 일할 곳이 병원 이니만큼, 서류의 반 이상이 메디컬 관련 서류였는데, HIV 관련 오리엔테이션 전에 작성한 서류에는 심지어 이런 질문도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몇명의 섹스 파트너가 있었으며, 최근 12개월 안에 관계한 남자(혹은 여자)와 콘돔을 꼈는지 아니면 안 꼈는지... 그 질문들에 답을 하고 있는 동안은, 내가 입사지원을 하고 있는지 범죄자 취조를 받고 있는지도 헷갈렸다. 나중에 필리핀 친구에게 들어보니, 병원이라 더 세세하게 들어갔을 수도 있는데, 필리핀이 HIV위험 국가라서, 모든 단체나 기업에서는 HIV관련 교육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다들 그렇다고...
최종 면담을 하는 인사과장은 또 처음부터 시작하는 듯 했다. 이미 인터뷰 때 했던 질문들과 대답들, 그리고 메모들... 업무 시간이 처음 인터뷰 때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분명히 9 to 5라고 했는데 9 to 6라고 했다. 그 한시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엄마에게는. 그렇게 또 한시간 이상을 질문에 대답하고, 작은 아이 데리러 갈 시간이 이미 지나서, 엄마들에게 부탁하는 메시지를 계속 보냈다. 학교 로비에서 노는거 좀 봐주세요. 늦을거 같아요. 밥 좀 먹여주세요. 이제 가요... 정말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학교로 가는 택시 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3.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일을 시작하는게 불가능할 것 같아서, job offer에 대해 듣자 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빛의 속도로 이력서를 고치고 자기소개서를 써서 보냈다. 여기 와서 대학원을 다닐 때도, 둘째를 가지고 한국어를 가르치러 다닐 때도, 나의 목표는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내 이력서를 채울 이야기가 필요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후일을 도모하는 수단이었지 목표는 아니었다. 그런데 내 인생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고, 나는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 막연하게 이제 나도 뭔가를 해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즈음, 우리 큰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장래 희망이 뭐야? 이미 인생의 중반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에게 얼마나 부적절한 질문인지 이 아이는 몰랐을 테지만, 그 질문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또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덧붙이는 아이의 천진한 물음... 엄마는 그렇게 나이 많은 어른인데, 왜, 아무것도 안됐어?? 그리고 나의 대답은 나를 더 슬프게 했다. 그러게... 엄마도 모르겠어. 나중에 니가 좀 알려줄래?? 보통의 엄마들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한 생각은.
나중에,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지... 였다.
4.
분명히 하고 싶었던 일이기는 하나, 인터뷰 때 그들이 끝없이 물고 늘어졌던,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면서 일을 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한국 사람들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현지 병원을 이용하는 한국인의 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병원 측은 그들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 사람을 필요로 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람을 충원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외국인'일 경우는, 그들의 salary breakage 안에서의 공급이 불가능하다. 즉, 더 '얹어줘야'하고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뽑아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요구한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고객 중 VIP방문 시에는 언제든 튀어와라., 우리가 필요할 때 상시로 reachable 해야 한다. 즉, 너는 이제 우리 손 안에 있다. 그러니 숨쉬는 것도 우리한테 허락을 받아라... 그리고 서류 중에 업무 시간에 대한 내용이 따로 포함되어 있었다. weakend, holiday에도 업무가 진행될 수도 있음!!
5
그날 오후 신체검사를 하고 모든 서류작업을 마무리 해야 했지만 나는 신체검사를 받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생각한 급여수준에 못 미치니 내가 인터뷰한 분들과 그 부분에 대한 상의를 했으면 한다. 그 이후에 입사를 결정하고 싶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휴일이고 나발이고 내 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standby 하라는 개소리는 아직 받아들일 수 없으니 좀만 기다려봐, 나 생각 좀 하게... 아마 그들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줄 것이다.
6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지금같이 남편이 출장이라고 가면 어떻게 하나. 기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고 간다 해도, 친구들에게 부탁을 한번씩 한다고 해도... 갑자기 애들이 아프거나 하면 어떡하나...
7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일은 지금 당장 보다는 나중을 위한 가교 역할이기를 바랬어.
그럼 해.
근데 시간도 늘어나고 엄청 혹사 당할거 같아
그럼 하지마.
좋은 기회잖아.
응, 그럼 해.
월급도 작아.
그럼 하지마.
생각 좀 해보고 말해.
응
.... 생각해봤어?
지금 하는 중이야.
...........
말해봐.
혼날까봐 말을 못하겠어.
항상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