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bookkeeper에요. 너무 게을러져서 며칠에 한 번 포스팅 하는 것도 잘 못했네요. 다들 화요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출장 갔던 신랑이 아침 아이들 등교 준비 하느라 눈물이 쏙 빠질라고 하는 순간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화요일 온다고 해서 화요일 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 오다니. 아이들은 소리지르며 달려들어 아빠 보고싶었다고 말한 뒤 아빠의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장 다녀온 아빠 = 싼타 클로즈 할아버지
의 공식이 좀 통하는 편이라...
저는 신랑을 보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금요일에 온다고 가놓고선, 그 무시무시한 아빠 없는 주말 보내기를 하게 만들더니, 눈물이 쏙 빠지게 바쁜 아침에 들이닥쳐서 아이들이 계산되지 않은 시간 안에서 그 십분을 허비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야말로, 밤에 자기 전에 일분 일초 까지 계산해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는데 아빠의 선물보따리 때문에 그 계산된 시간이 뒤죽박죽이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순간적으로 아이들의 아침 밥상을 봅니다. 다행히 오늘 아침에는 미역국을 끓여 놓았습니다. 김이 솔솔 나는 미역국...
우리 신랑은 한 끼 안 먹으면 큰일 나는 사람이고, 저는 배가 안고프면 하루종일 밥을 안 먹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조건 밥을 먹어야 하는 시댁의 분위기에서 자란 신랑이고, 한 끼 안먹어도 되고, 과자 하나 먹어도 배부르면 몇 끼 정도 건너 뛰어도 되는 집에서 자란 저였기에 신혼 초,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한다는 사실에 신랑은 적지않은 충격을 받는 듯 했습니다.
그래도 바쁘게 서로 직장 다니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서로서로 많이 양보하고 적응하며 살았는데, 필리핀에 와서 제가 따로 일을 하지 않고 주부로 살고 있으니, 신랑은 저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할 것을 원하는 눈치입니다. 저도 뭐, 안그래도 먹을거 없는 곳에서 아이들 식사는 제대로 해서 먹이려고 노력은 하는 편이지만, 워낙에 요리하는걸 싫어하고, 아니 해도 맛도 없고, 비싸게 장봐서 요리 해봐야 한끼 먹으면 없어지고, 또 요새 필리핀에도 배달 음식 하시는 한국분들이 많아서 여의치 않으면 시켜 먹을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엄한 요리가 아니라면, 등뼈찜 등등의, 돼지 갈비, 갈비탕 등등의 음식을 시켜서 제가 한 척 하고 지나가는 일이 많습니다. 그게 훨씬 더 경제적이지요.
하루는 신랑의 지인분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 지인분의 아내 되는 사람이 저에게 같이 요리학원을 다니지 않겠냐고 하는 겁니다. 저는 기겁하면서, 아니 집에서 요리하는 것도 싫은데 돈을 내고 요리를 하러 가자구요? 나의 대답에 그자리에는 웃음꽃이 폈지만 저는 보았습니다. 남편의 얼굴에 스친 그 당혹감과, 저로 인한 창피함을...
그런 저를 알기에 신랑은 주말이면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합니다. 신선한 야채를 사와서 다듬고 자르고 아이들 먹이는 일을 낙으로 여기는 사람 같습니다. 아니면 본인이 해서 먹는 음식이 그렇게 좋은지도 모르지요.
저는 좀 아침에 애들 콘플레이크나 샌드위치 만들어서 먹이고, 점심 싸 주니까 그거 먹으면 된다 하는데도, 애들이 이 더운 나라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며, 하도 그래서 거의 매일 아침 뜨끈한 국물을 상에 내놓습니다. 아이들도 아침부터 차려 줘봐야 국 몇번 떠 먹고 마는 수준인데 꼭 그렇게 아이들이 잘 먹고 가야 마음이 놓이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애들 스팸이라도 구워주고 라면이라도 끓여주면 기겁을 합니다. 뭐 큰 일도 아니고, 또 그 마음이 어떤지 잘 알기 때문에 저도 아이들 음식 할 때는 꾀나 신경 써서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출장 간 일주일 동안은, 집 가스렌지에 불을 킨 적이 없습니다. 우하하하하하하...
물론 점심 도시락은 만들었지요. 아침은 주로 빵이랑 우유를 먹였고, 저녁은 거의 나가서 사먹고 시켜먹고, 심지어 주말 아침에는 다같이 컵라면을 먹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신세계에 온 듯, 매일 아침마다 컵라면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일주일을 김과 스팸, 라면을 적절히 곁들인 식사를 한 아이들은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기름이 졸좔 흐르고 있어요. ㅋㅋ
어제 오랜만에 장을 보고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먹이려는 찰나에 신랑이 들어오자마자, 제가 눈으로 아침상을 좇은 이유를 아시겠지요? 엄청 착하고 순한 신랑인데, 음식에는 깐깐합니다. 어디 가서 밥 먹으면, 저는 왠만하면 다 먹고 뭘 먹어도 맛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맛없으면 진짜 맛없는 음식인 겁니다. 그런 저에 비해 신랑은 꼭 맛있는 밥집에를 가야 합니다. 그리고 시켜서 맛이 없으면 음식을 다 먹지를 않습니다. 전 시킨 음식이니 아까워서라도 싹 싹 긁어 먹는 편인데도 말이죠.
글을 쓰면서도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합니다. 남들은 생일되고 하면 한 상 차려서 내놓고 생일 축하도 해 준다는데, 저는 제 손으로 요리를 해서 그렇게 생일상을 차려 준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로 바쁘니 주로 밖에서 해결했고, 여기 와서 처음에는 나도 이제 요리를 해 보자 하며 아는 애 엄마 따라서 찜기 사서 백설기도 만들고김치까지 담아보기도 했는데, 맛도없고 재미도 없고, 차라리 그 돈과 노력을 다른데 들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야 하는 요리는 저는 거의 못합니다. 한국 음식이 거의 다가 진득하게 불 위에서 끓이고 지지고 볶는 음식이 많다보니 보통 제가 하는 요리는 순두부찌개, 김치.된장찌개, 미역국, 북어국, 콩나물 국 등등, 후다닥 해 먹을 수 있는 국 종류와, 카레라이스, 소불고기, 돼지불고기 등등의 시중에 나와있는 소스를 이용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종류의 음식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전 우리신랑 생일 날 제가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대접해 보려고 여기와서 같이 운동하는 농구쟁이들 부르고 자리를 마련 했는데, 혹시 요리할 생각이면 하지말아 달라고, 본인이 부탁한 적도 있습니다. ㅋㅋㅋ
우리신랑 가장 불만은 냉장고에 반찬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 여기서 살면서, 이나라 음식문화, 즉 일식일찬의 음식문화에 이미 적응을 해서, 이래저래 반찬을 많이 만들어 놔 봐야 먹지도 않고, 자기는 와서 밥을 같이 먹지도 않으면서,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처럼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련을 못 버립니다. 아니, 반찬 이것저것 안 집어먹어도 잘먹고 잘 크면 되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커도 지 입맛에 맞는 반찬 나중에 젓가락으로 못 집어 먹을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고지식하게 그러냐고 말을 해도, 애들이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해야 되는데 너무 편향적으로 식습관이 형성 된다고 걱정을 합니다.
그래도 오랜시간 한국에서 일하고 온 신랑이니 오늘 밤에는 뭔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날치알을 사 왔어요. 그나마 잘먹는, 날치알 야채 돌솥 비빔밥을 만들어 주려구요.
요런 비주얼이 나오면 참 좋겠으나, 시금치나물도 없고, 고사리 나물도 없는데 어떡하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