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월호 추모행사를 가졌다. 별다른 세월호 참사 추모 계획이 나오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세월호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몇가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학생자치회 쪽에서 추모행사를 기획하였고 4월 16일 아침 담임맞이 시간을 내어달라고 요청을 해 왔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게 아깝지만 자체적으로 이를 기획하여 실시하려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아침 맞이 시간을 내주었다. 나 역시 반 구성원의 1명으로 참가했다. 세월호에 관한 영상을 나누고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해 추모의 편지를 작성하는 순서였다. 아이들은 서로 세월호 사건이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편지글을 완성시켜나갔다. 그 후 추모의 리본을 만들어 중앙현관 앞에 전시하였다. 과연 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와닿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장난도 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해주는 모습에서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4.16 단원고 약전'이라고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된 피해자 중 245명의 삶을 간단한 전기로 엮은 책이 있어 그 중 몇 이야기를 발췌해서 아이들과 읽고 세월호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했었다. 그러던 것이 학생자치회에서 주관하면서 그 아이들이 준비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의 발언 영상을 통해 새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글로 써진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읽어 나누는 것보다 당사자인 생존 학생들의 목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세월호 참사와 피해자를 이해하게 만드는데 더 낫겠구나 싶었다. 처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배 안에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르지 않고 배 밖으로 나와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 대해 당시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은 살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은 죽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나온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말을 잘 듣는 것이 착한 것으로 느끼는 부분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그 후 말을 잘 듣는 것과 착한 것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그런 정보나 지시를 본인의 판단 하에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을 고쳐먹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쩌면 나의 수업을, 교직관을, 교육철학을 흔드는 발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생존자 학생들의 발언을 들으며 참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옴을 느꼈다. 그리고 평생을 그런 트라우마와 살아남은 죄의식 속에서 살아갈 그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세월호 피해자라고 하면 배 안에서 결국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그 학생들이나 유가족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생존자들도 분명 피해자이리라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가 나던 그 4월 말에 우리 학교도 삼천포항을 통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려고 예약을 다 해놓았었다. 이미 답사도 마친 상황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모든 수학여행은 취소되었다. 단순히 배편으로 제주도를 가는 것이 금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단체로 떠나는 여행이 금지된 것이다. 그리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해경이 해체되었다. 아이들이 단체여행을 떠나다 사고가 난 것이니 단체여행을 없애고 해경에 문제가 있으니 해경을 해체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이후 해경은 편성만 달라질 뿐 조직은 그대로 운영되고 사고해역에 처음 도착한 해경 선박의 함장 1명만 법적인 처벌을 받았을 뿐이었고 지휘선 상의 사람들은 오히려 승진을 하기도 했다.(관련기사) 아무리 비상식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던 시절이라도 이건 너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부디 2기 특조위에서 이 부분 관련도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이 극심하였다. 특히 인종분리정책으로 많은 흑인들이 이유없이 죽거나 실종되고 그 사체도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 넬슨 만델라가 흑인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많은 백인들은 반대로 흑인들에게 해코지를 당할까봐 걱정했고 흑인들은 그동안의 일들에 대한 복수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넬슨 만델라는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하고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의 숨겨진 진실을 밝히려 하였고 진실을 밝히는 조건으로 흑백 양측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사면을 해 주었다. 7년 간 이어진 청문회는 TV로 중계되고 2만 2천명이 청문회에서 진술을 하고 6천 여명이 사면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천 여명 실종자들의 죽음이 밝혀지게 되었다. 언젠가 연수를 가서 이 청문회의 한 장면을 본 기억이 있다. 청문회 장에서 2명의 백인이 한 흑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털어 놓았을 때 한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두 백인에게로 향하였다. 죽은 흑인의 어머니로 모진 말을 내뱉거나 따귀를 날릴 줄만 알았는데 두 명을 끌어안고 진실을 밝혀줘서 고맙다고,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아들의 명예를 살릴 수 있다고 하며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머리 속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가족을 잃고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작은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넬슨 만델라가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추구한 최종 목적지는 어쩌면 피해자들의 마음 속 상처에 대한 치유일런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감탄의 마음이 들었다. 단순히 보상 운운하며 진정 그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곪아간다. 혹은 가해자(또는 가해자로 추정되는)에게 응분의 처벌을 법적이든, 개인적이든 가한다해도 그 상처는 치유되지 못하는 수가 많고 다른 처벌 받을 사람을 찾아 헤메는 것이다.(모범시민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러한 것이 잘 묘사되어 납득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그 사건에 관련된 진실이 낱낱히 밝혀지는 것이 남은 피해 생존자나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린 지난 4년을 보내며 그 치유의 시작도 하지 못한 것이다. 제발이니 정치적인 것을 떠나 진실이 있는 그대로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를 위해 우리가 세월호 참사와 그 피해자, 유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