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os to Ferreiros
보라빛 구름 그리고 비... 비가 와서 양말이 젖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사모스 알베르게에서 양말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하나씩 하나씩 야금야금 잘 잃어버리고 있다. 잃어버린 걸 속상해해야 하나? 가방이 가벼워 지고 있다고 좋아해야 하나? 젖은 양말 빨아서 잘 말려 신으면 되니까 가방 가벼워졌다고 좋아하자. 양말이 필요한 누군가가 잘 챙겨서 신겠지.
비는 계속 내렸다.. 드디어 사리아에 도착. 이제 산티아고까지 100KM 남은 건가? 많은 순례자가 이곳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하기도 한다고 한다. 일단 너무 추워서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신다. Sarria. 내가 이곳에 대해 기대를 했었나? 비 오는 날 도착한 사리아는 너무 차가웠다. 비가 와서 더 그런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마치 텅 빈 도시 같은 느낌. 황량함과 쓸쓸함이 차가운 공기를 타고 내 허파로 전해져 온다. 왠지 발걸음을 재촉해서 서둘러 사리아를 나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밀려 왔다.
사리아를 지나서부터는 순례자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난 혼자 룰루랄라 비를 맞으며 걸음을 재촉한다. 순례자가 아닌 보통 사람이 나를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까? 비 맞으며 노래 부르는 나를 보고 괜히 뜨끔!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다. 저 멀리 다른 순례자가 보이지만 너무 멀어서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노래를 부른다. 어디서 이런 음치가 있을까 싶지만 듣는 사람도 없는데 뭐 상관없다. 자연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나의 노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리아를 빠져나온 지 얼마나 지난 걸까... 언제부터 인가 앞뒤로 단 한 명의 순례자도 보이지 않는다.
내 발소리만 들리는 길.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냥 발걸음에만 집중한다. 온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
잔잔하다.
그렇게 내 걸음에 집중하는 사이 언제부터인가 들려 오는 다른 발소리. 들리는 소리로는 한 명인듯하다. 은근히 신경 쓰인다. 앞에 보이면 좀 나을까? 보이지는 않는데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한참을 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뒤를 돌아본다. 젊은 외국 애가 엄청나게 큰 가방을 메고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아. 저 지팡이 소리였구나.
바로셀로나에서 온 쉬에르보와 정말 한참을 갔다.. 알베르게까지 아주 한참을...
나도 너무 힘이 들었고, 쉬에르보의 다리 역시 불편해서 보통 걸리는 시간의 두세 배 정도는 더 걸린 듯하다.
너무 아파서 걷는 내내 아픔을 참느라 애쓰는 쉬에르보. 적당한 약이라도 있으면 주고 싶은데 내가 가져온 것들은 이미 미겔을 비롯해 다른 순례자들에게 모두 돌아가고 남은 것이 없다. 얼마나 간 걸까…
갈증이 나는데 물은 떨어진 지 오래다. 다행히 나헤라 갈 때의 그 뜨거운 태양은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게 갈증 나는 길에 보이는 사과나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나온 한마디 “먹을 수 있는 사과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사과 하나를 툭 딴 쉬에르보. 썩었다. 바로 휙~ 던져 버리고 다시 시도... 이번엔 지팡이를 이용해서... 그러더니 정말 예쁜 사과를 하나 따서 나에게 준다. 사과를 건네며 환하게 웃는 쉬에르보의 얼굴이 굉장히 밝고 해맑다. 다리가 아파도, 가는 길이 힘들어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쉬에르보.
본인이 먹을 사과도 하나 금방 딴다. 빗물에 젖은 사과를 깨끗이 닦아 한입 베어 문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한입 먹은 사과의 맛에 너무 놀라 쉬에르보와 나는 마치 사과를 처음 먹어본 사람들처럼 소리를 질렀다. 사과의 아삭함에 배의 수분을 함유한 듯 시원하고 마치 복숭아처럼 달콤하다. 감동의 맛. 갈증을 단숨에 날려 보내준 사과 하나의 에너지로 우린 또 가던 길을 계속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