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인이 ‘잘 지내요?’ 라고 물었다. 잘 지내요 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 질문의 마법에 빠져들어 사실 이러이러해서 잘 지내지 못해요 라고 말해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만 바로 마음을 거두고 대답한다. ‘너무 잘 지내요...’
스팀잇을 시작할 즈음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을 경험했었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우울증이라고 결론을 내릴 순 없었지만 그당시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스스로 진단할 수 있었다. 딱히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샤이니의 종현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라는 사람이 왜 우울한지 이유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사람은 신경정신과 전문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우울은 이유가 없다.
나도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불안했다. 내 삶이 아닌 삶을, 상황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듯한 그런 생각으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처음 온 해부터 3년을 지나고 또 3년이 지나고... 길을 꺾어야 하는 골목의 모퉁이처럼 찾아온다.
한국에서 돌아올 때 나는 엄청난 양의 짐을 가지고 왔다. 남편이 먼저 왔기 때문에 우리 셋이 들고 올 수 있는 짐은 화물 60킬로와 기내반입 짐 정도였다. 새벽도착이라 아이 둘을 데리고 기내에 짐을 들고 가는건 불가능해 화물로 보내야 하는데 사 놓은 것, 받아놓은 것이 너무 많아서 매일 매일 산처럼 쌓여가는 짐을 보며 한숨만 쉬었었다. 제일 먼저 엄마가 싸 준 고추가루, 참깨, 참기름, 간장 등등을 엄마 몰래 언니네에 줘버렸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사 둔 그릇세트와 냄비세트도 버렸다. 그러고도 무게가 나가는 신발 몇 켤레도 뺐다.
짐을 싸고 풀고, 싸고 풀고... 출발하는 날까지 박스를 몇개나 만들었다가 다시 싸고 풀고 무한반복하며 무게를 맞춰나갔다. 결국에는 라면 박스보다 약간 더 큰 박스 세 개, 우리 형부가 트렁크에서 빼다가 허리 나갈 뻔한 초대형 캐리어 하나로 짐을 만들었다. 공항에 가서 티케팅을 하고 짐 무게를 재는데, 사진과 같이 딱 56kg... 한국에서 올 때 내 몸무게가 딱 56이었다. 대따 큰 박스 세개에 우리형부 허리 나가게 할 뻔한 캐리어... 무려 5킬로가 쪄서 와서 옷을 입을 수가 없다.
문제는 배가 커져서 매일 허기를 느낀다는 거다. 스테이아웃 하는 보모가 태풍이다 뭐다 해서 계속 안나오니 운동을 매일 갈 수도 없어 한국에서의 먹고자고 싸이클은 계속되고, 그나마 배터지게 사육당하지 않으니 지금은 55킬로가 조금 안되게 빠졌는데... 내가 불편해서 못살겠다.
무려 3개월의 방학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 밤 9시에 힘든 운동으로 마무리하던 내 하루가 방학 3개월동안은 리듬이 깨진 채로 흐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일상 위를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분의 기사가 단독으로 포탈메인에 뜰 때마다 나는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걱정이 됐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그런데 결국에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좋아한 정치인이 있었을까. 감정적으로 밑으로 가라앉은 계기였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일어난 엄청난 일... 말로만 친구들끼리 농담처럼 주고받는 말이 있다. 사기꾼인지도 몰라... 살고 있는 곳이 필리핀이라 모든 사건 사고 자연재해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한국의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인식되어질 때마다, 내가 마치 필리핀인 듯 한 묘한 자격지심이 일었었다. 그런데 실제로 내 공간에 그런 짐승같은 인간이 버젓이 안그런척 살고 있었다. 여기 사는 모든 한인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도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경주여행... 나는 어릴적 부모님과의 유대관계가 거의 없이 자랐지만 언니들하고는 유난히 가까웠다. 언니들과 떠난 경주여행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을 느끼고 돌아왔다. 아... 그랬지... 내게도 가족이 있었지... 언제든 돌아가서 안길 수 있는 내 가족이 있었지... 언니들이 너무너무 보고싶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 않다 않다 않다 않다...
그저 가족이 그립고, 좋아하는 정치인을 잃었으며, 짐승같은 것들과 한 공간에 있었던 것에 충격을 받고 불쾌함과 불결함을 동시에 느꼈을 뿐이고, 엄청난 무게의 짐과 동급이 되서 예쁜 옷을 못입고 있고, 좋아하는 운동도 못하고 약간의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